내가 애플의 주주다. 주주총회에 나갔는데 CEO가 그동안의 경영성과를 보고하고 있다. 결론은 크게 손해는 보지 않고 훌륭히 현상유지를 잘 했다. 애플의 주주로서 CEO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그냥 그저그런 중소기업이 아닌 것이다. 삼성과 중국기업들 등쌀에 수도 없이 망해나가는 고만고만한 IT기업들이 아닌 것이다. 세계최고의 기업 애플의 CEO가 되어서 고작 현상유지만 하고 있다? 아예 아무것도 안했거나, 뭔가 해보려 했는데 겨우 본전치기나 했거나, 그런 정도라면 굳이 높은 연봉에 스톡옵션까지 약속해가며 CEO로 영입할 이유가 없다.

 

내가 왕이다. 적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있는 것 없는 것 다 털어서 100만이라는 대군을 만들어 전장으로 내보냈다. 그랬더니 대장이라는 놈이 그 절반이 조금 넘는 적을 상대로 지지 않고 잘 버티고 있다며 보고를 해 온다. 적이 너무 강한데 다행히 무너지지 않고 전선을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너지지 않고 잘 버티는 정도는 100만의 대군을 전장으로 보내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기라고 대군을 만들어 보내놨더니만 이기지 못하고 지지는 않았으니 잘했다는 지휘관에 대해 왕인 나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국민의힘이 새누리당이고 자유한국당이던 시절에도 지금보다 훨씬 적은 의석으로 민주당은 그놈들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잘만 견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뭘 마음대로 하려 하든, 혹은 어떤 법안과 정책을 정면으로 막아서든 크게 밀리지 않으면서 의도한 바를 잘 지켜내고 있었다. 그 정도만 있어도 자유한국당이 원하는대로 더 나빠지는 것을 막는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면 그런 민주당에 정권을 쥐어주고 180석이라는 압도적인 의석을 몰아준 것은 과연 어떤 것을 기대하고 그리했던 것인가? 그냥 못하지 말라고? 더 나빠지지 말라고? 

 

한 편으로 이낙연이 안타깝다는 것은 이낙연의 지지율이 가장 높았을 무렵에는 아직 현정부의 개혁에 대한 낙관론이 지지자 사이에 남아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문재인 대통령이 어느 정도 개혁을 이루어 놓으면 이낙연이 이어받아 안정적으로 관리만 하면 된다. 그러기에는 이낙연보다 나은 적임자는 없다 봐야 한다.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안에 모든 것을 이루기에는 남은 시간도 주변의 여건도 너무 아쉽기만 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의 뒤를 이어 더 강하게 개혁을 추진해 나갈 사람을 요구하는데 이 점이 이낙연의 보수성과 부딪히고 말았다. 이낙연의 장점은 관리라는 말 그대로 더 나빠지지 않도록 현재를 유지하는 것이다. 크게 문제가 생기지 않게끔 더 욕들어먹지 않게 실수만 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상황이면 이낙연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다. 문제는 지금 상황이 그러한가.

 

그동안 민주당이 언론의 비난을 듣지 않으려 몸을 사려 온 결과인 것이다. 어째서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 투표해 온 대부분 중도층 서울시민들이 등을 돌리고 만 것인가. 등을 돌린 정도가 아니라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심판한다면 온갖 추문과 의혹으로 둘러싸인 국민의힘 후보에 표를 몰아주고 있었다. 한 마디로 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 나은 게 무어냐는 힐난인 것이다. 오세훈이 나쁜 놈인 건 알겠는데 과연 민주당에 그를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따져묻고 있는 것이다. 보여주지 못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고 의회권력까지 가졌을 때 과연 국민의힘보다 얼마나 더 나은 현실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나아진 것이 없다면 차라리 겨우 국민의힘이나 막아서던 시절로 돌려놓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는 것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자신들이 힘을 가지면 어떻게 할 것인지 그동안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박용준이나 금태섭, 조응천 무리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이 의미없는 이유인 것이다. 국민의힘이 강한 이유는 그들이 권력을 가지면 무엇을 할 것인지 사람들이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정의당과 한겨레 등 자칭 진보들마저 이번 선거에서 오세훈을 지지하며 나섰던 이유였다. 국민의힘이 권력을 가지면 반드시 문재인을 죽여 줄 것이다. 이낙연과 이재명, 박영선, 추미애 등 민주당의 유력인사들을 남김없이 도륙내 줄 것이다. 노무현과 한명숙에게 그랬던 것처럼. 약속하지 않아도 어느새 자연스레 믿게 된다. 아무리 사람들이 욕해도 한다면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마저도 감수하고 국민의힘을 지지할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러면 민주당은 무언가? 그냥 욕먹기나 싫어할 뿐 민주당의 이름을 걸고 무언가를 하는 것에는 무척이나 주저한다.

 

언론이 민주당을 우습게 여기는 이유인 것이다. 언론이 나서면 얼마든지 민주당을 흔들 수 있다. 언론이 마음놓고 흔들 수 있으니 더이상 민주당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가짜뉴스로 선동하고, 사실을 담합하여 은폐해도, 민주당에 불리한 기사만을 선별해서 쏟아내면 민주당은 지레 겁먹고 언론에 굴복하게 된다. 그 첨병에 있던 놈들이 박용진, 금태섭, 조응천, 김해영 등의 무리들인 것이다. 언론이 좋아하니 옳고, 언론이 싫어하면 나쁘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은 게 무엇인가? 철저히 언론에 농락당하며 선거에서 참패한 지금의 현실인 것이다. 과연 이미 국민의힘이 있는데 박용진 조응천 무리들의 뜻을 따른다고 언론이 민주당의 편을 들어줄 것인가 말이다.

 

그래서 결단해야 하는 것이다. 언론은 민주당의 적이다. 민주당의 반대편에서 민주당을 망치고 민주당의 적을 살리려 언론이라는 자신들의 정체를 이용하려는 놈들이다. 언제까지 저놈들에 놀아나야 하는 것인가. 적에게 칭찬받는 것은 배신자고, 적으로부터 원망과 증오를 한 몸에 받는 것이 훌륭한 아군인 것이다. 과연 지금처럼 언론에 지레 겁먹고 굴복하면 자기 지역구라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민주당이 개혁을 포기하면 박용진 역시 당적을 바꾸고서야 다음 총선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민주당이 힘을 잃으면 박용진의 의석도 국민의힘을 위해 아쉬운 한 석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몇이나 지금 의석을 지킬 수 있을까?

 

첫째는 언론개혁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고, 둘째는 언론과의 싸움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언론이 기사로 쓰지 않을 수 없게끔 확실한 무언가를, 민주당에 정권을 쥐어주고 의석까지 몰아준 효능감을 국민들이 몸으로 실감할 수 있게끔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욕먹지 않으려는 태도가 잘못되었던 것이다. 적을 만들지 않으려는 태도가 이런 결과를 가져 온 것이다. 무리하더라도 대중이 바라는 바를 선제적으로 짚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괜히 이재명의 지지율이 높은 것이 아니다. 과연 이번의 패배를 계기로 삼아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주저앉고 말 것인가.

 

다시 말하지만 중도층이 바라는 것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애매한 중간이 아니란 것이다. 그런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보수든 진보든 자신들이 지지할만한 무언가를 확실하게 보여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닌 그래도 더 나은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 것이다. 이낙연이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다. 180석 의석으로도 정국을 스스로 주도하지 못했다. 그러고 이제와서 언론탓을 하고 있다. 언론이 그런 걸 모르고 있었단 것인가. 언론개혁을 해야 할 때 언론이 자기를 좋게 써주는 것에 취해 눈치만 보고 말았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못하지 않는 정부와 여당이 아니란 것이다. 차라리 못하더라도 무언가를 확실하게 하려 하고 이루어내기도 하는 그런 힘있고 실력있는 정부와 여당을 바라는 것이다. 그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민주당에 미래란 없다. 지지자들에게도 미래따위 없다. 이번 선거에서 보지 않았는가. 민주당에 유리한 증언을 했다는 이유로 모든 언론이 달려들어 그 신상을 캐고 협박까지 일삼는다. 그게 지금 민주당 정치인들의 등에 지워진 책임이란 것이다. 패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패배로부터 무엇을 배우느냐가 중요하다. 크게 기대따위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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