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나 다를까 언론이며 정치권이며 여성주의자들이며 아예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을 기정사실로 놓고 온갖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나도 단지 가정만 했을 뿐 죽음의 원인이 반드시 그것이라고 밝혀진 것도 아니다. 더구나 사람이 반드시 죄가 있어야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너무 억울하고 기가 막혀서 어쩔 수 없이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다. 최숙현 선수는 무슨 죄가 있어서? 성폭행을 당하고도 오히려 자신이 죽음을 선택해야 했던 어떤 여성과 그녀의 자매는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더구나 실제 죄가 있더라도 성추행이 죽음보다 더 무거운 죄일 것인가? 만일 성추행이 죽어서도 씻지 못할 죄라 여긴다면 더이상 여성주의자들과 할 말이 없다. 이미 사람이 죽었는데 이 위에 도대체 무슨 죄를 더 묻겠다는 것인가. 죽음을 추모하지 않는다는 것과 죽음을 모욕하는 것과의 차이를 진정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가. 그래서 여성주의자인 것이다. 인간이란 여성이란 주의에 종속된 수단이고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이 밝혀진 것도 아니다. 아니 아예 수사조차 시작되지 않은 사건이다. 설사 유죄라 할지라도 그 형벌이 죽음에까지 이르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죽음조차 부족하다고 모욕과 조롱과 비난을 퍼부어대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된 머릿속인가.

 

만일 실제 그 고소 자체가 원인이 되어 불행한 선택을 했다면 아마 지금 상황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싶다.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모든 언론에 의해 자신은 난도질되고 그동안의 모든 삶까지 부정되고야 말 것이다. 더욱 자신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혐의로 가장 추악하고 파렴치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냥 성추행으로 끝나고 말까? 지금도 이렇게 범죄를 예단하고 그의 삶까지 부정하는 이들이 이렇게 많은 상황인데. 과연 얼마나 박원순 시장의 진심이 전해져서 최소한 진실을 다투어 볼 수라도 있는 것인가. 원래 무고하다면 더욱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책임을 강요당하는 사실을 견디기 힘들어서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떻게 예단하는가.

 

아무튼 고소한 전비서에게도 그래서 묻고 싶은 것이다. 지금 상황을 바랐었느냐고. 죽어서 세상에서 사라졌으니 이제 속이 시원하냐고. 그래서 아직 더 부족한 것이 남아 있느냐고. 당연히 아니라 말할 것이다. 그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보편적인 상식이고 감성일 테니까. 오히려 당황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오히려 자신이 더 충격받고 상처받지 않았을까 걱정까지 된다. 그러면 당사자도 아닌데 저리 미쳐 날뛰는 놈들은 도대체 어디의 누구인가. 그러니까 묻는 것이다. 여성주의자들의 분노는 진정 피해자만을 위한 것인가. 

 

당연히 김지은 씨도 안희정 전지사로부터 당한 일들이 너무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워서 끝내 법과 여론의 심판대에 그를 세웠던 것일 게다. 박원순 시장을 고소한 전비서 역시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 뒤늦게 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한 것일 터다. 그런 사정까지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안희정 전지사는 재판 결과 성폭행 사실이 인정되었으니 유죄판결을 받고 복역하는 중이다. 그런 때 피해자가 더이상의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지켜주고 들어주라고 미투가 시작되었던 것은 아닌가. 여론재판을 하자는 것일까. 여성주의자가 수사관과 판사가 되어서? 과연 누구를 위해서? 그 과정에서 혹시라도 무고한 일을 당하는 이가 있다면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더욱 엄정하게 수사기관의 수사와 재판의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것이다. 다만 피해자들에게 그동안 너무 가혹했던 사회분위기 만큼 피해자의 편에서 최대한 지켜주며 살필 필요는 있는 것이다. 딱 거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그것을 넘어가면 오히려 또다른 억울한 피해자만 만들고 말 수 있다. 나는 수사관도 재판관도 아니고 모든 사실관계를 다 꿰뚫고 있지도 못하다. 하지만 그동안 그랬었는가 하는 것이다. 여성주의자든, 언론이든, 당연히 정치권이 그럴 리는 없다. 그래서 남는 것은 무엇인가. 그 과정에서 무고한 희생자가 생겨난다면. 그것이 과연 피해자를 진정으로 위하는 길일 것인가. 그런 불신이 쌓이고 쌓여 언제부터인가 미투란 말도 의미를 잃기 시작한다.

 

아무리 크고 무거운 잘못을 저질렀어도 그 책임을 묻는 방식은 사회적 합의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빵 한 조각을 훔쳤다고 20년을 감옥에 산다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남의 물건을 훔쳤다고 팔을 자르고 목을 매다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 형벌일 것인가. 오로지 여성에 대해서만 근대 이후 성립된 이같은 대전제들이 너무나 쉽게 무시되고 만다. 절대 타협이 불가능한 지점이다. 그것을 고집하는 한 여성주의와의 공존은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묻는 것이다. 지금 당신들이 분노하는 것은 피해자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여성주의란 신앙과 권력을 위한 것인가? 그것은 이성과 합리와 정의라는 엄정한 근거 위에 성립하는 것인가? 인간은 대상인가? 목적인가?

 

과연 박원순 시장은 무고한가? 아니면 실제 혐의와 연루되어 있는 것인가? 알 수 없다. 누가 알겠는가? 죽었다고 예단하는 것도 불가하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고 모두가 유죄라면 억울해서 다시 일어나고 싶을 이들이 꽤 적지 않을 것이다. 죽음은 단지 죽음일 뿐. 확실하게 밝혀진 사실도 아님에도 예단을 가지고 비난하고 조롱하고 모욕하고. 기정사실로 여기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도외시한다. 누가 빈소를 찾아가 엉엉 울며 통곡이라도 하라던가. 나도 않고 있는 짓거리를. 그래서 여성주의는 안되는 것이다. 여성조차 없는 그들만의 신앙이란. 추악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