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과 김학의 모두 피해자라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다. 더구나 김학의의 경우는 증거까지 확실했고, 피해자 또한 다른 누군가를 앞세우기보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직접 증언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박원순은 수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진 바 없음에도 범죄자로 낙인찍혔고 김학의는 검찰의 1차 수사결과를 이유로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무고한 시민이 되어 있었다. 혐의라는 것도 박원순은 성추행이었던 반면 김학의는 권력과 폭력을 사용한 다수의 피해자에 대한 집단강간이었다. 어째서 이런 논리가 자칭 진보 자칭 여성주의자들로부터 나올 수 있었는가.

 

어이가 없는 것이다. 아직 혐의가 확정적이지 않다며 박원순을 위해, 아니 최소한 박원순에 대해 안좋은 소리는 않으려 차라리 침묵을 선택하려는 이들에게마저 2차가해라며 그 시신에 침을 뱉기를 강요하고 있었다. 가족에게마저 온갖 모욕과 조롱과 비난을 퍼붓고 있었다. 박원순에게는 인권이란 없다. 시민의 당연한 권리조차 인정되어서 안된다. 가족간의 천륜조차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 그러면 김학의는 어떤가? 명백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덮어주고, 심지어 출국금지가 된 상황에 대해 수사하려 했다는 상황조차 의인이라며 포장해주고 있는 것이다. 김학의는 보호받아야 하는데 박원순은 아니다. 자칭 진보도 자칭 여성주의자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결같다.

 

박원순이 잘못 살았다는 증거인 것이다. 계속 검사를 했어야 했다. 검사를 그만두더라도 전관을 이용해 돈을 더 벌었어야 했다. 수 천억 재산에, 대형 로펌의 임원이거나 혹은 보수정당의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었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모욕을 겪었을까? 아마 그랬다면 광화문 한복판에서 백주대낮에 아무 여성이나 붙잡고 강간해도 진정한 여성주의자로서 존경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을 차별하고 착취하고 억압하는데 앞장섰어도 참된 노동존중의 진보인사라며 찬사를 들었을 것이다. 하필 민주당 당적을 가진 것이 김학의만도 못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김학의에 온정적인 기사를 쓰게 해주지 않는다고 젊은 기자들이 편집국을 들이받고 모든 언론이 그런 한겨레를 지지해주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선배기자들도 그런 젊은 기자들을 꾸짖기보다 승복하며 타협하고 있었다.

 

물론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인정받아야 한다. 용인받아야 한다. 누구에게? 자신들의 주인에게? 이 나라의 정당한 주인들에게. 길들여진 개인 것이다. 목줄 묶인 개처럼 항상 누군가를 바라보고 허락부터 구해야 한다. 그래서 박원순이 더욱 잘못 살았다는 것이다. 노무현은 단지 수사만 받았어도 세상에 다시 없는 죄인이 되었는데 유죄판결까지 받은 이명박은 그 공과를 평가하려 하고 있다. 그것을 한겨레는 객관이고 공정이라고 당당히 주장한다. 자칭 진보 모두가 그런 논리에 동의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므로 김학의는 연민과 동정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박원순은 비난과 조롱과 증오와 혐오의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 그동안의 행적들에도 불구하고.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진보이고 정의이고 여성주의인가.

 

심지어 김학의를 출국금지시킨 것이 청와대까지 위험하게 만들 중대한 범죄라 이야기한다. 박원순을 비난하지 않는 것이 피해자에 대한 중대한 2차가해인 것처럼 김학의라는 범죄자를 도망치게 내버려두지 않은 것이 정권차원에서 책임져야 할 심각한 죄악이라 주장하는 것이다. 어째서 이렇게 다른 것일까? 새삼 다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저들의 정의란 어디에 있는가. 저들의 진보와 여성주의란 무엇을 위한 것인가? 김학의보다 박원순이 악한 정도가 아니다. 김학의를 도망치게 내버려두지 않은 청와대가 무협의 결론을 냈던 검찰보다 더 악하다. 똥버러지들이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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