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못한 사람이 있을까? 처음 바른정당이 분당해 나왔을 때도 흔히 하던 말이었다. 그동안 당에 대한 지지에 힘입어 손쉽게 정치하던 사람들이다. 북한과 지역주의, 그리고 무엇보다 거물정치인들의 등뒤에 숨어서 기생하며 정치해 오던 사람들이다. 한 마디로 자기 손으로 직접 먹을 것을 구하고 머물 곳을 찾는 풍찬노숙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확고한 이념이나 정치적 신념이 있어서 그런 어려움을 기꺼이 견딜만한 동기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의 행보에서 보았듯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전혀 없는 정당이다. 그런데도 지금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바른정당을 유지한다는 것이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차피 처음 바른정당이 만들어진 것부터 정치적 명분과는 상관없는 이해타산의 결과였다. 대통령 박근혜가 국정농단을 저질렀다면 여당인 당시 새누리당 역시 그 책임을 함께 져야만 했던 터였다. 바른정당의 지지율이 바닥을 기니 다시 당을 뛰쳐나가 조직과 돈과 지지자가 있는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당장 자신들을 향한 국민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당시 새누리당을 뛰처나와 따로 당을 차렸던 터였다. 그마저도 반기문이라는 유력한 대선후보가 있었기에 새누리당이 아닌 새로운 보수정당의 이름이라면 다음 대선에서 다시 여당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계산이 섰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박근혜라는 그림자를 털어버리고 새로운 중도적인 보수정당의 이미지로써 반기문에 대한 대중의 인기와 지지에 영합해서 다음 대선을 노려보겠다. 하지만 반기문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유승민이 낮은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못하자 결국 다시 절반이 떨어져나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었다. 그때부터 계속해서 나왔던 것이 보수대통합이라는 지금의 탈당명분이었던 것이고.


국민의당과 다른 부분이라면 그런 점에서 민주당의 경우 철저히 국민의당과의 합당이나 탈당파들의 복귀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에서 홍준표는 비주류다. 주류는 박근혜라는 원죄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친박들이다. 그나마 바른정당에서 복당해야 친박들과 세싸움을 할 수 있는 우군이 만들어진다. 물론 그렇다고 이미 바른정당을 나가서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간 정치인들이 얼마나 특히 박근혜와 관련해서 친박들과 차별화를 이루고 있는가 살펴볼 문제다. 어쨌거나 자유한국당은 바른정당의 옛동지들을 필요로 하고 있고, 바른정당은 내년의 지방선거와 3년 뒤의 총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유한국당이라는 따뜻한 그늘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명분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박근혜의 출당은 그들을 위한 명분이 되어 주고 있었다. 물론 국민 거의 대부분이 그 명분 뒤에 숨은 내막을 알고 있을 것이었다. 내 국회의원 자리, 나를 따르는 조직의 유지를 위해 밥그릇 지키려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간다. 과연 얼마나 많은 보수유권자들이 그들이 앞세운 보수대통합이라는 명분에 동의해 줄 것인지.


결국은 새로운 보수를 표방했던 유승민의 리더십이 한계를 드러낸 때문이었다 할 수 있다. 어찌되었거나 바른정당을 중심으로 새누리당이나 이제는 갈라선 자유한국당과는 다른 새로운 보수를 보여주겠다. 그래서 뭘 보여주었는가. 그동안 얼마나 자신들을 그들과 차별화시키고 있었는가. 대선 당시 듣기 좋으라고 떠들어대는 공약 말고 실제 바른정당의 이름을 앞세우고 그들이 보인 행보들을 떠올려보라. 얼마나 많은 다양한 분야에서 자유한국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는가. 그것을 유권자들에 인정받고 있었는가. 하태경은 이른바 통합파들의 방해와 반대를 이유로 들고 있지만 그마저도 극복하고 넘어서는 것이 바로 정치인으로서의 리더십인 것이다. 그런 방해와 반대들을 때로는 설득하고 때로는 타협하고 때로는 힘으로 찍어 누르며 바른정당이라는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 그래도 대통령이 되겠다 나왔던 거물 정치인다운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냥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이나다. 그 결과가 바른정당의 지지율인 것이고. 그래서 이제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겠다. 처음 동기야 어찌되었든 유승민과 바른정당 자강파가 주장한 새로운 보수라는 구호가 얼마나 허무하고 의미없는 것이었는가 새삼 확인하게 된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뛰처나온 자체가 아무 명분이 없었듯 돌아가는 것도 아무런 명분이 없다. 그런 명분 자체가 필요가 없다. 이익이 있어 뛰쳐나왔고 이익이 있기에 다시 돌아가려 한다. 이념이 아니었고 신념은 더욱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을 국민들이 뻔히 알고 있음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그들은 그런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것이 이리 비루한 것이다. 그렇다고 과연 남은 자강파들이 오로지 신념을 위해 끝까지 당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만일 그렇게 교섭단체마저 무너진 상황에서 당을 지켜낼 수 있다면 그나마 유승민의 리더십을 다시 평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 있다면 하태경의 말처럼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 물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그냥 한심하다. 웃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