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학생운동이 결정적으로 국민들과 유리되며 동력을 상실하게 된 계기가 아마 96년 연세대사태였을 것이다. 사실 연세대사태는 한총련의 오판이라기보다는 경찰과 정부의 주도면밀한 전략에 의한 몰아가기에 가까웠다. 워낙 김영삼정부 내에도 이미 학생운동권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운동권전력자들이 다수 포진해 있었다. 바로 그들의 선배였으며 동지였던 이들이 정부를 위해 전략을 세운 것이었다. 정부에 저항적인 학생운동을 무력화시켜라.


1997년 IMF로 인해 구조조정의 압박을 강하게 받고 있던 김대중 정부 역시 어떻게든 정부에 반대하는 노조를 무력화시켜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하필 김대중 정부 내부에도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이른바 재야운동권이 다시 핵심적인 위치에까지 진출해 있었다. 누구보다 노조의 생리를 잘 알고 노조가 가지는 약점을 꿰뚫고 있었다. 노조를 결정적으로 무력화시키게 된 손해배상소송을 통한 경제적 압박은 바로 그들이 만들어낸 전략이었다. 정부가 지시했고 검찰이 지휘했고 기업들이 따랐다. 이전 정부에서는 없었던 가장 악랄하고 지독한 노조탄압정책이 바로 노동운동을 함께했던 민주화정부에서 비로소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군사독재정권에서도 이런 것은 없었다.


민주화정부의 가장 악랄한 점은 모든 것이 합법과 합리를 가장하여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민주화는 이루어졌고 국민이 선출한 법과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에 의해 합의로 만들어진 법은 공공의 규범으로서 강력한 강제력을 가지게 되었다. 법이 그렇다. 합법적인 정부가 합법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이 그렇다. 그러므로 그에 반대하는 것은 악이다. 죄도 아니다. 죄와 악은 전혀 별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단지 법을 어겼다는 이유만으로 악으로 간주되어 사회적으로 매장당한다. 법을 중요하게 강조하기 시작한 것도 그나마 합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한 민주화 정부 이후부터다. 폭력이 아닌 법과 합리에 의한 더욱 교묘해진 지배인 것이다. 그나마 역사의 발전이라 할 수 있다.


현행법을 어겼으니까. 정부의 방침에 반대하고 있으니까. 시민들에 불편을 끼쳤으니까. 군사독재정권에서였다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 민주화를 주도한 민주화정부에서 그리 주장하면서 어느새 정당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일단 법이니 따르라. 일단 정부가 시켰으니 따르라. 반대하면 형벌이 아닌 경제로써 압박한다. 아예 살 수 없게 만든다. 오히려 그로부터 배워 잘 써먹고 있는 것이 여당인 한나라당, 그리고 이후 새누리당이다. 그런데 단지 지금 정부가 새누리당이니 모든 것이 새누리당의 잘못인 것처럼. 과거가 아는 사람은 의도적으로 모르는 사람은 그저 몰라서 왜곡되고 있다. 원죄는 누구에게 있을까.


'송곳'서도 구고신이 말한다.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 다른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멋모르고 참여정부의 지지자들이 새누리당 욕하는데 그 대사를 쓴다. 드라마의 배경이 바로 참여정부 시절이었다. 유시민이 노유진서 반성하더라. 다 참여정부의 잘못이었다. 합법적으로 노조 자체를 일반 시민과 분리한다. 대중의 집회와 시위마저 일반 시위와 분리한다. 전문시위꾼이라는 말이 처음 쓰인 것도 바로 김대중 정부였다. 연대가 아닌 시위꾼이다. 역시 내부의 논리를 잘 아는 운동권출신 인사들이 만들어낸 말이었다. 연대는 악이다. 자기들끼리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민주화 이전의 김대중과 이후의 김대중에 대한 평가가 다른 이유다. 노무현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은 전혀 별개의 인간이다. 문재인도 그래서 사실 그렇게 크게는 기대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뭐 더이상 어떻게 더 빼먹을 게 남아있는가도 모르겠고. 워낙 김대중과 노무현을 거치며 아예 뿌리부터 말려버린 탓에 노조든 시민사회단체든 더이상 무언가를 주도하여 추진할 힘이 남아 있지 않다. 그나마 이명박과 박근혜를 거치면서 나머지 바닥까지 닥닥 긁어 아낌없이 박살낸 뒤다. 차라리 포기하면 편하다. 기대할 것도 없다.


여성운동가들이 제도권에서 여성운동을 무력화시키는 전략을 세우고, 노동운동가들이 정부의 요직에서 노동운동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찾아낸다. 학생운동에 몸담았으니 학생운동은 그들의 몫이다. 서는 곳이 달라지고 생각하는 머리도 달라졌다. 권력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일까. 원래 그런 인간들이었을까. 문득 김영삼과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축복이고 재앙이다. 마오쩌둥이 중국의 영웅인 이유다. 입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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