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란 곧 공포다. 그리고 이익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행동을 강제하는 동기다. 거스르면 불이익이 있을 것이고 따른다면 이익이 돌아올 것이다. 아니 불이익을 넘어 치명적인 위협이 있다면 그를 회피하는 것만으로도 큰 이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너무나 큰 이익이 눈앞에 있다면 그를 얻지 못하는 것만으로도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보수정당이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였던 이유였었다. 나눠 줄 수 있는 이익도 많고 제재할 수단도 넘쳐났다.

 

소속 정치인 뿐만 아니다. 언론이며 지식인 사회 역시 보수정당 대표의 말 한 마디 손짓 하나에도 상당한 곤란을 겪거나 큰 명예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심지어 자칭 진보언론마저 감히 보수정당을 정면으로 비판하지 못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후퇴한 중대재해법을 통과시킨 것은 비난해도 아예 중대재해법 자체를 반대한 보수정당은 비판하지 못한다.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돌리지 못했다고 문재인 정부를 비난해도 감히 최저임금의 인하를 주장하는 보수정당을 비판하지는 못한다. 보수정당 평의원의 한 마디에는 찍소리 못하다가 민주당 당대표 원내대표에는 협박까지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칭 진보인 것이다. 민주당이야 어떻게 해도 이익도 불이익도 없지만 보수정당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익도 불이익도 분명하다. 

 

그럴 수 있는 인물들이 그동안 보수정당의 대표를 역임하고 있었다. 대표의 존재감이 살짝 못 미쳐도 그를 대신할만한 존재가 반드시 배후에 버티고 있었다. 이를테면 이명박이라던가 박근혜라던가. 유승민조차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공천도 못받고 정치를 아예 그만둘 뻔 했었다. 이명박이든 박근혜든 당장의 실세를 거스르면 더이상 정치할 생각은 포기해야 한다. 대신 말만 잘 들으면 선거에 떨어졌어도 제법 괜찮은 자리가 주어질 수 있었다. 그만한 힘이 있었던 것이다. 수 십 년 독재에 민주당의 자산까지 흡수한 결과였다. 무엇보다 당의 기질 자체가 그런 것을 당연시여기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므로 당원과 지지자들조차 그런 당대표의 의지를 충실히 쫓고 있었다. 그런데 감히 소속 정치인이 당대표며 지도부를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주장하고 심지어 분열을 조장한다? 당대표를 대놓고 비난한다? 가능하겠는가?

 

첫째는 역시 연이은 선거의 패배로 상당부분 권력기반을 잃은 영향이 컸을 것이다. 정권만 빼앗긴 게 아니다. 지자체도 빼앗기고 국회의석도 겨우 100석을 넘기는 정도에 그치고 있었다. 나눠 줄 자리도 없고, 지역조직은 흔들리고, 거기에 돈도 사람도 더이상 전처럼 국민의힘에 몰리지 않는다. 위협이 될 만한 인사가 당 주변에 있어야 긴장하고 당대표의 눈치를 본다. 대선이 코앞에 있다고 하지만 대선은 총선과 다르다. 대선에 후보로 출마할 정도면 당대표도 눈치를 봐야 할 당내 거물인 것이다. 아니 오히려 이후 당내 권력은 새로운 대통령 후보에게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총선도 멀었지 대선을 앞두고 거물들이 날뛰지 지방선거는 상대적으로 중앙당의 역할이 크지 못하지, 그런 와중에 당대표마저 세력도 돈도 무엇도 않은 무선의 원외인사다.

 

당장 다른 사람도 아닌 이준석이 국민의힘의 대표로 선출된 것부터가 국민의힘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 당권을 쥐어 줄 것인가. 누구에게 당의 미래를 맡길 것인가. 당을 틀어쥐고 이끌어갈 인사여야 했었다. 자신이 유력 대선후보이거나, 혹은 그 정도 급이 되는 유력정치인으로써 차기 대선에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했다. 아니면 다수의 정치인을 배후에 거느리며 자신의 의지를 당의 의지로 바꿀 힘 정도는 가지고 있었어야 했다. 그래야 그를 구심점으로 당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며 나아갈 수 있다. 아니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럴 가능성을 가진 인물이었어야 했다. 당의 미래를 이끌 비전과 역량을 보여주었다면 그를 당의 미래로 삼아 함께 힘을 모을 수 있다. 하지만 없었다. 이준석이 문제가 아니라 당시 당대표 선거에 나선 후보들 면면부터 그와는 전혀 거리가 먼 인물들이었다. 그래서 이준석이 선출된 것이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차라리 나이라도 젊은 이준석에게 걸어보자.

 

그 결과다. 자기 사람이 없다. 자기 세력이 없다. 그렇다고 능력이 대단히 뛰어난 것도 아니다. 아니 능력이 뛰어나도 국회의원도 한 번 못 돼 본, 중앙의 정치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애송이에 불과하다. 그렇지 않아도 당에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당대표까지 여러모로 부족한 인사다. 당원과 지지자들조차 선출은 했지만 전혀 신뢰하지도 복종하지도 않는 인사이니 그에게 뭐라 한다고 후폭풍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당이 당대표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바로 민주당 지지자들이라면 너무나 익숙한 아싸리판이 벌어지는 배경이다.

 

그동안 민주당 당대표들이 그랬었다. 아니 지금 송영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30% 밑으로 떨어졌다면 벌써 송영길을 흔들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를 넘어 안정적으로 상승세를 보이니 경선을 치르며 당지도부를 흔들던 인간들부터 벌써 조용해지기 시작한다.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배경이 있어 주니 그나마 민주당이 조용한 것이지 그마저 없을 때는 정말 가관도 아니었었다. 당대표가 소속 정치인들을 징계하기보다 오히려 끌려다니며 임기조차 마치지 못하고 내쫓기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당대표가 한 마디 하면 언론을 통해 반박하고 비판하고 조롱하고 모욕하는 것을 소신이라 일컬으며 아예 중구난방으로 찢어져 따로 놀기 일쑤였었다. 그만큼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힘을 가진 놈들이 너무 많았다. 그나마도 국민의힘은 이준석이 국회의원 배지 한 번 달아보지 못한 그저 대중적으로만 유명한 최약체의 인물이다.

 

한 마디로 만만한 것이다. 흔든다고 돌아올 불이익 같은 건 없다. 따른다고 주어질 이익 같은 것도 전혀 없다. 차라리 그보다 다른 곳에서 이익을 찾는다. 이를테면 그래도 대선후보로써 지지율이 높은 윤석열이라든지. 혹은 다른 누구라든지. 그나마 유승민이라도 대선후보로써 지지율이 높으면 어찌 기대 볼 텐데, 유승민이나 하태경이나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한겨레가 이준석을 그리 찬양했던 것일까? 국민의힘 망하라고?

 

그야말로 2015년 이전 민주당의 모습인 것이다. 더 최악인 것은 그래도 당시 민주당이 분열한 이유가 나름 거물들이 많아서 자기 잘난 맛에 나대던 결과였다면 지금의 국민의힘은 그나마 거물이라 할 만한 인물조차 없이 아예 중심이 될 만한 존재가 없기에 저리 난장판이란 사실이다. 언론조차 우쭈쭈하며 제대로 비판도 정리도 하지 않으니 상황은 더 나빠지기만 한다. 되도 않는 곳에 힘을 실어봐야 분열과 갈등만 커진다. 그리고 바로 대선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재미있어지고 있다. 윤석열도 사실 국민의힘 입장에서 별 것 아닌 조무라기일 뿐이었는데, 하필 당대표가 그마저 급이 되지 않는 무선의 애송이라 더 상황이 우스워지고 말았다. 자기 세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지자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것도 아닌, 그저 언론만 좋게 써주는 당대표가 언론을 등에 업은 윤석열에게 휘둘린다. 과연 지금처럼 중심없는 모습을 보이는 국민의힘을 국민들은 어찌 볼 것인가. 정의당이야 제 자리 찾아갈 궁리만 하고 있겠지만. 하여튼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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