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이 세상을 떠나고 근거도 불명확한 의혹이 사실처럼 논란의 중심에 있었을 때 자칭 진보들은 그리 외쳤었다.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말하라!"

"침묵한다면 그 또한 2차 가해다!"

 

바로 권위주의의 논리였다. 자유주의에서 침묵은 절대 침범할 수 없는 개인의 고유한 권리에 속한다. 속으로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그것을 일부러 끄집어내어 판단할 권리 따위 누구에게도 없다. 침묵조차 누릴 수 없다면 인간에게 자유란 무슨 의미인가. 아예 침묵을 인정하지 않고 양심을 속여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발언을 하도록 항상 요구하고 확인코자 하는 것은 북한과 같은 극단적인 권위주의 체제 말고는 없는 것이다. 하다못해 군사독재 시절에도 박정희에 대한 충성을 항상 맹세하라 대놓고 강요하지는 못했었다. 전두환 만세를 외치라고 모든 사람에게 강제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말하기 싫으면 그냥 침묵하면 된다. 그러나 자칭 여성주의와 진보는 그마저 용납지 않았다.

 

개천절 전광훈과 극우기독교, 그리고 태극기세력이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는 것을 정부에서 막아섰을 때 정의당과 자칭진보는 표현과 집회의 자유를 앞세워 그를 비판하고 있었다. 이미 이전인 작년 8월 15일 정부가 막은 광화문집회를 법원에서 허락해주고 거의 잡혀가던 코로나19가 다시금 급격히 확산되고 있었다. 신천지와는 달리 아예 작심하고 당국의 방역을 훼방놓겠다는 듯 추적조차 못하게 핸드폰까지 끄고 동선을 숨기며 사회 곳곳에 숨어들어 지금까지도 추적이 불가능한 감염원이 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자영업자는 장사를 못하고, 결혼하는 신혼부부는 하객도 제대로 초대하지 못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 누구를 위한 권리이고 누구를 위한 자유인가?

 

자유주의와 자유의지주의가 갈리는 부분이다. 귀족들과 부유한 시민들이 왕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하고 제약을 가한 이유는 당연히 자기들이 더 자유롭기 위함이었다. 시민들 역시 그래서 돈으로 자유를 사려 할 때 자신의 영주들에게 이런저런 조건을 걸어 제약을 가했던 것이었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자유를 위한 제약이 필요하다. 보편적인 자유를 위해서는 어쩌면 더 강력한 강제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자체가 모순이라며 자유는 자유일 뿐이라 주장하는 것이 바로 자유의지주의다. 그냥 각자가 알아서 자유로워진다. 권력을 가지고, 부를 가지고,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그래서 내 마음대로 하겠다. 그래서 자유의지주의가 높은 사회적 권력과 지위, 부와 만나면 권위주의를 옹호하는 논리로 발전하기도 한다. 내가 내 돈으로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내가 그만한 위치에 있고 그만한 권력이 있으니 그리 하겠다는데. 그러니까 사회적 책임과 상관없이 나에게 주어진 권리대로 내 마음대로 하겠다. 

 

민주당은 당연히 계급정당이 아니다. 당연한 것이 민주당 소속 정치인 가운데는 기업인 출신도 있고, 대형로펌출신의 변호사도 있다. 기업인이면 사용자다. 대형 로펌출신의 변호사라면 중산층은 넘어서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현직 소방관 출신도 있고, 스튜어디스 출신도 있으며, 다양한 신분과 계층과 직업을 가진 이들이 총망라되어 민주당의 구성원을 이루고 있다. 아마 지지자는 그보다 더 폭넓고 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과연 무엇을 보고 민주당으로 모여든 것인가. 지난 2016년 총선부터 유행한 말이 있다. 리버럴이라고. 아마 보수정당과 민주당을 구분짓는 결정적인 요소가 아닐까. 리버레이터가 아닌 리버럴이다. 자유의지주의가 아닌 자유주의다. 아마 보수정당에서 말하는 자유는 바로 그 리버레이터일 가능성이 높다.

 

원래 민주당의 뿌리부터 권위주의 독재에 항거하여 자유를 쟁취하고자 싸워왔던 민주화진영에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막연히 권위주의 독재를 타도하고 권위주의적인 지배를 해체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어느새 그것이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대한민국 사회를 짓누르는 권위주의적인 억압과 제약들을 타파하고 보다 시민들이 최대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하자. 다만 서로가 속한 계급과 신분과 직군에 따라 그 출발점과 지향점이 각기 다 다를 뿐이다. 그럼에도 최대한의 자유를 위해 자신들이야 말로 권위주의와 최일선에서 싸우겠다. 이해하겠는가? 어째서 민주당이 정의당과 함께 섞일 수 없는지? 아니 정의당이 어째서 그토록 민주당을 혐오하며 오히려 국민의힘에 더 친근감을 느끼는지 보다 쉽게 설명되고 있을 것이다.

 

히틀러와 스탈린이 각각 극우와 극좌로 이념적으로 대립하고 있었지만 하는 짓거리는 정작 닮아 있었던 이유 그대로라 보면 된다. 말하자면 국민의힘과 정의당이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적 차이에도 권위주의라는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면 민주당은 그들로부터 분리된 자유주의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보수적인 이들은 심지어 국민의힘 주류보다 더 보수적이기도 하고, 진보적인 이들은 정의당의 주류보다도 더 지우쳐 있기도 하면서, 그러나 그럼에도 결국 국민의힘에도 정의당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유란 바로 이것인 것이다. 바로 국민의힘과 정의당이,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하나로 묶일 수 있는 근거란 바로 이 권위주의이며 그래서 민주당은 저들로부터 배척당하는 입장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혜영이 감히 민주당을 진보로 인정할 수 없다 말할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지가 뭔데? 장혜영 나부랭이가 도대체 뭐라고? 물론 민주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다. 진보란 민주당을 이루는 여러 이념적 지향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말했듯 민주당에는 보수도 있고 진보도 있다. 그러나 진보적일 때 민주당은 때로 정의당보다 더 진보적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정의당은 자기들이 마치 진보를 정의할 수 있다는 듯 저리 함부로 말할 수 있다. 죽은 사람을 모욕하던 당시 그들의 오만한 행태를 떠올려 보라. 어디서 많이 보았던 모습 아니던가.

 

심지어 총선을 앞두고 비례후보를 정하면서도 저들은 당원의 투표가 아닌 지도부가 정한 특별한 룰로 후보를 정하고 있었다. 다른 이견조차 없었다. 당원간에 소통조차 제대로 없이 정했고 그리고 관철되었다. 진보정당이기는 한데 민주적인 정당구조를 가지고 있다 여길 수 있는가. 이제서야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어째서 정의당과 지지자들은 그토록 국민의힘을 더 가깝게 느끼고, 한겨레는 조선일보를 추종할 수밖에 없는가. 자신들이 주류다. 자신들이 진보의 기득권이다.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면 정의당 열성당원 붙잡고 딱 세 시간만 대화해 보면 바로 답이 나올 것이다. 종교적 열정이라 언젠가 말한 것이 괜한 말이 아님을 깨닫게 될 테니까. 정의당은 뭐자? 좌파의 권위주의 찌그러기다. 그냥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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