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선택지를 좁히는 것이다. 그것을 상대에게 확인시켜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이상 자신은 양보하지 못하겠다. 여기서부터는 무조건 네가 양보해야만 하겠다. 아니면 끝이다.


싸움도 마찬가지다. 배수진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여기서 물러나면 진다. 지금 있는 이 자리를 벗어나면 모두가 지게 된다. 여지를 발견하면 마음에 틈이 생긴다. 여기까지는 괜찮겠거니 방심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러니까 여기서 나 하나 쯤, 우리 몇 쯤 뒤로 물러나도 괜찮지 않을까. 옆으로 피하는 것도 상관없지 않을까. 그러면 죽는다. 원래 제식훈련이라는 자체가 명령대로 따르지 않으면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기 위해 시작된 것이었다. 구타와 욕설, 가혹행위, 심지어 즉결처분까지 전장에서는 지휘관의 재량으로 허용된다.


문재인이 정말 잘하고 있다 여기는 부분이다. 벌써 여러 차례에 걸쳐서 북한에 강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말 뿐이 아니었다. 행동까지 바로 뒤따르고 있었다. 결코 북한의 핵무장을 용인하지 않겠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것을 절대 보고만 있지 않겠다. 만일 북한이 끝까지 핵무기를 보유하고 그것으로 정치외교군사적 이익을 취하려 한다면 마땅히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 그리고 그 증거로써 보여준 것이 미사일 발사와 폭격훈련, 그리고 이번 미군의 B-1B 폭격기의 비행이었다. 이미 북한은 한국 정부가 관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이후 벌어지는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 있다.


사실 이게 더 무서운 것이다. 설사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고 그로 인해 전면전이 벌어지더라도 그 책임은 어디까지나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은 북한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결과 수많은 민간인 피해가 발생해도 그 모든 원인은 북한에게 있지 미국과 한국에 있지 않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같은 비상상황에 대한 모든 의지와 각오를 가지고 있다. 내가 문재인이라면 진짜 북한을 선제폭격하여 전쟁을 시작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좌고우면하지 않는다.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결정할 수 있다. 여기서 더이상 선을 넘는다면 북한의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더 큰 현실적 위협과 피해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 가장 피해가 적고 이익이 극대화될 때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면 반드시 해야만 한다.


모르긴 몰라도 북한이 무척 겁먹고 있을 것이다. 역대 이런 정부가 없었다. 박정희 때는 군사력에서 밀리는 것도 있어서 말만 그랬지 진짜 강경하게 행동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었다. 북한과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이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유지되어 온 것도 정부에는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 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전쟁이라는 행위가 가지는 두려움이다. 전쟁으로 인한 결과에 대한 현실적 공포다. 휴전선에서 사소한 분쟁만 일어나도 사재기에 주가폭락에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만다. 하지만 그것도 상황이 어느 정도일 때 우려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국경을 맞대고 대륙간탄도탄에 핵무기까지 싣고 있는 적성국가가 존재하고 있다. 최악의 평화가 최선의 전쟁보다 낫다지만 반드시 지켜야 하는 국익이 있는 것이다. 다행히 문재인 정부는 오히려 북한에 유화적인 유권자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북한에 강경한 유권자들은 의심을 품은 채 그 반대편에 포진해 있는 중이다. 다시 말하지만 설사 그 결과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고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게 되더라도 그 원인제공을 한 것은 오로지 북한이다. 그런 공감대가 마련되어 있다.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오히려 더 좁아졌다. 대한민국은 어쩌면 북한에게 방패역할이기도 했었다. 대한민국을 인질로 잡으면 동맹국인 미국은 마음대로 북한을 공격하지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에 북한과의 전쟁을 두려워하고 같은 민족으로서 반드시 화합하고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온건한 이들이 다수 존재하는 이상 대한민국이 먼저 나서서 북한에 대한 미국의 공격을 막아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더이상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대로라면 더 큰 이익과 안전을 위해서 작은 피해는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너희들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마저 나서서 강하게 압박하는데 북한이 할 수 있는 선택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 중국과 러시아에 기대려 해도 그들 역시 기본적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해야 한다는 대전제에는 동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믿고 있단 방패가 치워지고 오히려 발가벗겨진 채 서늘한 칼날이 자신을 겨두고 있는 것을 보았다.


뉴욕타임즈가 제대로 보았다. 협상가다. 미국에 가서는 트럼프에게 그야말로 비굴하다 해도 좋을 정도로 비위를 맞추며 그가 한국정부의 판단과 대응에 대해 동의하고 지지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바로 그런 트럼프의 지지를 바탕으로 타협하지 않는 강경함으로 북한의 선택지를 좁힌다. 문재인 정부 자신의 선택지를 좁힘으로써 거꾸로 북한으로 하여금 좁아진 자신의 선택지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한다. 이래도 버틸 것인가. 문제라면 김정은이 여기서 물러서게 된다면 그의 리더십에 큰 타격이 가해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만은 김정은 입장에서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이런 때 핫라인이 있었으면 김정은의 체면도 살려주면서 퇴로까지 열어줄 수 있었을지 모르련만.


설사 공습을 하고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사실 크게 두려워 할 것은 없다. 북한이 우리를 알 듯 우리도 북한을 안다. 북한의 포대가 어디에 있고 미사일기지는 어디에 있으며 공군비행장은 어디에 있는지 미국과 더불어 그동안 축적해 온 정보의 결과 훤히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중이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발사도 국정원이 딴짓 않으니 오히렬 미리 예측해서 대통령에 보고하고 있었다. 보고를 바탕으로 불과 미사일발사 6분만에 미사일발사로 대응하고 있었다. 만일 진짜 행동에 나서게 되면 미국과 한국의 가용한 모든 전력이 이들 전략적 목표를 말 그대로 불바다로 만들 것이다. 길면 사흘 짧으면 하루면 북한은 문명 이전의 사회로 돌아가게 될지 모른다. 단지 그 과정에서의 혹시 모를 피해가 문제인데 그마저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어쩔 수 없다. 얼마나 빨리 최소한의 피해로 상황을 끝내는가. 그리고 이후 상황은 누가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나 역시 여전히 북한과의 문제는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오로지 대화와 교류를 통해 관계개선과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온건파 가운데 하나다. 의심나면 과거의 글들을 읽어봐도 좋다. 하지만 그럼에도 넘어서는 안되는 선이라는 것이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정부가, 사회가, 국민이 안녕과 번영을 위해 허용해서는 안되는 선이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존립과 정체성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압박은 계속된다. 북한이 더이상 견딜 수 없을 때까지 대한민국 정부의 압박은 미국을 등에 업고 계속될 것이다. 남은 선택은 둘이다. 전쟁이냐? 평화냐? 멸망이냐? 체제유지냐? 시한은 그리 많지 않다. 카운트는 시작되었다. 더이상 미친 짓도 못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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