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기본적인 삶 자체는 공동체가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가장이 부양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개인은 태어난 순간 자기에게 주어진 권리로써 당당히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교육, 의료, 기초생활에 대해서 각자에게 주어진 권리에 따라 국가의 지원과 보조를 받으며 최소한의 삶의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면 노동자의 임금은? 그 이상의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위해 쓰이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면 노동자의 임금에 대한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일정 나이 이상의 중장년들이 보다 높은 임금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결국 가족의 부양이다. 노동능력이 없는 가족을 자신의 힘으로 먹여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들까지 오로지 가장의 소득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불합리한 호봉제도 같은 것도 있다. 그냥 오래 일했으니 월급이 올라간다. 과연 같은 개인이 단지 같은 일을 반복해서 하고 있을 뿐인데 그런 식으로 임금이 지속적으로 크게 오른다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오히려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해 더이상 생산에서 인간의 노동력이, 아니 심지어 서비스업에서마저 더이상 인간의 노동력에 기대지 않게 되었기에 더 중요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어차피 갈수록 인간의 노동력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고 더이상 대부분의 인간은 전처럼 많은 일자리에서 오랜 시간을 노동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정작 생산을 하더라도 상품을 소비할 소비자 자체도 줄어들게 된다.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이윤율의 하락에 의한 자본주의의 붕괴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인가? 결국 다시 마르크스다. 마르크스가 처음 '자본'을 썼을 때와는 모든 것이 너무 달라졌고 따라서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방향성은 맞는다. 더 적은 노동과 수입만으로도 개인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복지가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다. 모든 개인이 동등한 조건에서 교육을 받는다. 생명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과 최선의 의료를 보장받는다. 일을 하지 않아도 인간은 기본적인 삶 자체는 어떻게든 유지할 수 있다. 다만 그 이상의 삶을 추구할 때 아주 적은 노동과 소득만으로도 가능하도록 사회의 구조를 다시 재편한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절박한 문제다. 이런 식이라면 생산은 느는데 소비가 따라가지 못한다. 실제 지난 수십년간 세계경제를 옭죄어 온 경기침체는 소비의 위축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결국 중국을 비롯한 저개발국가의 낮은 임금으로 겨우 해결해 오던 것도 상당부분 한계에 부딪힌 지 오래다. 이제는 그마저도 없이 컴퓨터와 로봇으로 거의 대체할 수 있다. 기업의 이익만 는다고 고용없이 경제의 성장이 지속될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에 대한 신구상을 지지하게 되는 이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료소비자인 환자는 물론 공급자인 의사들을 위해서도 수가를 올리겠다 선언한 것이다. 더이상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겠다. 건강보험재정을 아끼지 않겠다. 더 적극적으로 정부가 개입해서 구성원들이 자신의 삶의 질을 위해 소비에 나설 수 있는 여력을 만들어주겠다. 집안에 환자가 있으면 소비는 커녕 있는 것도 다 팔고 빚쟁이가 되어야 한다. 그런 상황을 막는다. 국가가 개인의 삶을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가 된다. 결국 그 방향성의 끝에는 호봉제와 같은 불합리한 임금제도를 바꾸고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원칙 아래 노동자의 임금격차를 최소화하는 것일 터다. 중소기업을 위한 대책이기도 하다. 임금지급의 여력이 없는 기업들도 더 적은 임금으로 충분한 양질의 노동력을 확보한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사회주의랄까?


자본주의가 위기라는 조짐은 오래전부터 사회 각분야에서 나타나 왔었다. 겨우겨우 미국의 비태환화폐인 달러가 기축통화로써 세계경제를 멱살잡고 끌어왔지만 그마저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통해 한계를 드러냈다. 정작 넘쳐나는 곳이 갈 곳이 없다. 개인은 가난한데 자본만 풍요롭다. 그런데도 자본의 영광은 여전할 것이다. 신화인지 모르겠다. 모든 인간은 과거의 성공한 기억에 갇혀서 모든 것을 판단하려 한다.


노동이 신성한 가치이던 시대는 지났다. 인간의 노동력이 가지는 가치 자체가 이전과 전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더이상 인간의 노동력이 생산에 있어 유의미한 가치를 가지지 못하는데 과거처럼 그를 이유로 소득마저 보장되지 못한다. 기본적인 소비마저 할 수 없게 된다. 그 미국부터 최저임금 인상에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고 있다. 노동이 가치가 아니다. 인간이 가치다. 원래 노동가치설의 본질이다. 갈 길이 멀다. 벌써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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