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문재인은 그야말로 등떠밀리다시피 출마한 아직 야인에 지나지 않았었다.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었다. 그저 민주진영에서 나오던 이야기들을 종합한 이상의 전혀 어떤 새로운 주장도 비전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민주진영에 마땅한 대선후보가 없으니 노무현의 후광을 등에 업고 이전의 수많은 대선후보들처럼 바람을 타고 나타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인으로서 아무리 훌륭해도 과연 정치인으로서도 그만한 역량과 가치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처음 문재인이란 인물은 내게 안철수와 동급의 인물에 지나지 않았었다.

 

그런 문재인에 대한 내 평가가 결정적으로 달라지게 된 것은 다름아닌 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문재인이 출마하며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내가 동의할 수 있는 새로운 아젠다를 들고 나오면서부터였다. 그것은 그동안 김대중 이후 민주당이 추구해 온 정책적 지향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그동안 아직 누구도 구체화하여 말한 적 없는 문재인만의 것이었다. 그리고 이후 민주당의 당대표로서 민주당을 개혁하기 위해 내가 그토록 꼴보기 싫어하던 민주당의 구태들의 공격에도 흔들림없이 밀고 나가는 모습에서 그에 대한 굳은 신뢰를 가지게 되었다. 이 사람이라면 대통령이 되어서도 무언가 남들이 못하는 것들을 이루어 줄 수 있겠다. 어쩌면 노무현보다도 더 능숙하게 굳건하게 내가 바라는 개혁을 보여줄 수 있겠다. 아마 당시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을 적극지지하게 된 유권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이 사람은 믿을 수 있다. 기대해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고구마처럼 느리고 답답하다고 비전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남들의 뒤만 따라갔던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멈춰서서 지지자들과 눈을 마주하며 머뭇거리는 모습도 거의 보여 준 적 없었다. 그냥 묵묵히 자기 길을 간다.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인가는 이미 정했고 그 과정에서 사소한 장애들이 가로막고 있을 뿐이었다. 때로 그로 인해 걸음이 늦춰지기도 하고 때로 조금 멀리 돌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 방향은 처음부터 한결같았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지지가 임기가 거의 끝나가는 지금에까지도 40%를 넘나드는 진짜 이유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문재인이란 인물을 신뢰할 수 있다. 믿고 기대해 볼 수 있다. 그것은 인간적인 교감에서 나오는 인정이 아닌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는 크고 단단한 그의 뒷모습에서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감정이었다. 동정을 구하지도 연민에 기대지도 이해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대통령으로서 그 자리를 당연하게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이낙연이 문재인과 같다고? 그래서 이낙연이 차기 대선후보로서 국민들에게 어떤 새로운 아젠다를, 자기만의 목적과 지향을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있었는가? 그를 위한 자신만의 신념과 의지를 제대로 보여 준 적이 있었는가? 하다못해 문재인 대통령의 후광으로 유력 대선주자로 꼽하고 초거대여당의 대표가 된 뒤에도 오래도록 자신의 뒷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었다. 조금 느려도 이낙연만 믿고 따라가다 보면 모든 것이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이낙연만 믿고 지지하며 뒤따르다 보면 내가 원하는 것들이 모두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그런 믿음이나 기대가 없다. 그래서 이낙연더러 그저 문재인 대통령의 뒤라도 열심히 잘 따라가라 주문하는 것이다. 자기 것이 없으면 남의 것이라도 잘 따라가는 것도 기술이다.

 

이낙연에게는 미래가 없다. 내가 믿고 기대할만한 어떤 방향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믿었다. 그래도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고, 따라서 가장 잘 이어받아 완성할 최적의 인물은 이낙연일 것이다. 그래서 사실 그동안 별 걱정을 하지 않았었다. 이낙연에게는 없어도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있다. 이낙연 자신의 것이 아니더라도 문재인 대통령만 잘 따라가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재명보다는 낫지 않은가. 그런 막연한 믿음을 산산이 부숴 버린 것이 바로 '사면론'이었다. 하필 문재인 대통령과 차별화하기 위해 선택한 수단이 고작 전직대통령에 대한 사면이라는 시대를 거스르는 구태의 반복이었는가. 자칭 문빠라는 놈들이 그런 사면론조차도 대통령과 상의한 결과일 것이라 떠들어댔을 때는 어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대통령이 그따위 정치적 유불리를 위해 명백한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그놈들을 사면할 인물로 보였던 것이었을까?

 

아무튼 그래서 어이가 없는 것이다. 이낙연은 문재인과 같다. 문재인도 이낙연과 같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느리다고 힘이 없는 것이 아니다. 신중하다고 과감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다. 절대 흔들리지 않을 용기와 의지를 가지고 있었기에 굳이 성급한 임기응변에 기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옳다면 언젠가 당연하게 목표에 이르게 될 것이다. 누가 오해하든, 누가 자신에 적의를 가지든, 그래서 방해하며 막아서든 진실은 반드시 정의에 이르고 만다. 이낙연과 비교가 되는가? 아직 이낙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입장에서 가장 어이없는 주장인 것이다. 그것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라는 놈들 입에서. 이낙연따위가 문재인 대통령과 같다.

 

아직 내가 보기에 민주당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비견할만한 인물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실력이 뛰어난 인간도 있고, 남달리 정의감과 행동력이 돋보이는 인물도 있고, 인격적으로 훌륭한 인물도 있는데 그 모두를 아우르며 한 나라를 이끌 리더로써 모든 것을 맡겨도 좋을 것 같은 그런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은 조금 더 자기에 대한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불안하고 두려우니 자꾸 다른 수단에 기대려는 모습을 보인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재명과 이낙연을 딱 반씩만 섞어서 두 배로 튀겨 놓으면 괜찮겠다 여겼었는데.

 

자칭 문빠, 흔히 문파리라 불리는 놈들의 한계인 것이다. 문재인을 지지한다고 이재명에 대한 증오심만 키우다 보니 정작 문재인 대통령마저 이낙연과 비슷한 급으로 낮추고 만다. 문재인 대통령을 위한다고 남경필을 지지하고, 문재인 대통령을 위한다고 사면론을 지지하고, 심지어 그 사면론이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라는 국민의힘의 주장마저 답습한다. 대통령은 열외다. 이낙연과도 이재명과도 비교할 수 없는 대한민국 정치사에 유독 홀로 튀는 인물이란 것이다. 애써 비교하려니 그 격을 떨어뜨린다. 문빠가 맞기는 한 것인지. 웃다 죽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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