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전쟁 도중 정권이 바뀐 경우를 가정해보자. 명백한 침략전쟁이었다. 아무 명분없이 집권자 개인의 욕심을 위해 전쟁을 일으켰고 한창 치열하게 진행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집권하기 전에 전쟁에 반대했고 화평을 주장했다는 이유만으로 정권이 바뀌자마자 바로 전쟁을 끝낸다는 것이 가능한가. 아무리 싸움을 끝내고 싶어도 정작 상대가 동의해주지 않으면 더 큰 양보를 해야 하고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단순히 국내정치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면 상관없을지 모른다. 무시해도 좋은 약소국에 대한 것이라면 조금 부담은 있겠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저 전쟁을 끝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다. 당장 전쟁만 끝내주면 무엇이든 다 해 줄 것만 같다. 그런데 정작 상대가 만만치 않다면 그렇게 마음대로 하기가 곤란해진다. 그러니까 유리한 조건에서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상황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만들거나, 아니면 상대가 동의할만한 조건을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내놓거나. 정책의 일관성이란 그런 점에서 매우 정치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이미 전정권에서 결정한 사안이다. 더구나 그 약속의 대상이 다른 나라도 아닌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이다. 그것도 우리나라에 있어 전통적인 우방이며 국제사회에서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기도 하는 나라다. 미국과의 관계단절은 곧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의미한다. 미국을 배제한 대한민국의 외교란 아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설사 정권이 바뀌고 사정이 달라졌다 할지라도 이미 결정된 것을 뒤집기 위해서는 그만한 명분이 필요하다. 최소한 사드배치의 가장 큰 명분이 되어 주었던 북한핵문제해결 정도는 선행되어야 한다. 아니라면 어쩔 수 없이 전정부가 약속한 이상 따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사드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하는 이념이나 신념의 문제가 아닌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문제다.


다만 그럼에도 대놓고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 주장하지 못한 것은 다름아닌 이웃한 경제파트너 중국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중국과의 관계도 역시 중요하다. 경제적으로는 어쩌면 중국과의 관계를 더 긴밀하게 우호적으로 가져가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중국정부를 무시한 일방적인 사드배치가 중국정부를 화나게 만들었다. 바로 앞에서 안하겠다 말해놓고는 그 다음날 기습적으로 사드배치를 발표했다. 우롱당한 것이다. 중국정부가 한국정부에 철저히 속아서 놀아났던 것이었다. 체면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도 열강으로 분류되는 미국이 일개 약소국인 한국에 철저히 농락당한 끝에 바로 앞마당까지 미국에 내주게 되었다. 경제보복까지 시작되고 있었다. 어떻게하면 중국정부를 달래고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것인가. 그 문제들이 해결되기 전까지 더이상 중국을 자극해가며 사드배치를 강행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명분쌓기라 했던 것이었다. 일단 국내법에 따른 절차를 철저히 거친다. 국내법에 따른 절차를 모두 거쳐서 합법적으로 공식적으로 설치된 사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엄연한 내정간섭이다. 더불어 사드문제의 근본적인 해결과 차후 중국이 가지고 있는 반발의 명분을 빼앗기 위해 끊임없이 북한핵문제 해결에 있어 중국의 역할을 강조한다. 작년과 올해가 왜 다른가? 북한이 핵실험까지 했던 작년의 상황과 고작 미사일 몇 번 발사한 올해의 사정이 왜 다른 것인가? 당연하다. 그 사이에 중국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 북한핵문제를 먼저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 강한 요청이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북한 핵무기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기에 북한핵문제가 해결되면 사드배치 역시 명분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한국정부를 돕지 않는다면 결국 더이상 사드배치를 미룰수만은 얺게 된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전에없이 강한 대응은 그렇게 점진적으로 강화되며 마침내 사드배치라는 강수로까지 이어지고 만다. 북한의 미사일발사를 지켜보고만 있지 않고 강하게 대응하는 사이 사드배치 역시 그 선택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사드배치가 옳아서가 아니다. 사드가 반드시 필요해서도 아니다. 정치적 외교적 선택이다. 이미 그렇게 결정된 뒤였으니. 그렇다고 약속을 물릴 수 있는 상대도 아니었으니. 그렇지만 중국을 아주 무시할 수만도 없었으니. 그런 여러 정황들이 사드배치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하게 만들고, 기회가 되었을 때 사드배치를 몰아칠 수 있게 해주었다. 옳지 않더라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반드시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었고 그래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통령은 개인이 아닌 국가기관인 것이다. 개인의 양심과 신념, 가치를 배반하더라도 현실을 당위를 다를 수밖에 없다.


어째서 이제와서 말을 바꾸고 사드배치를 지시했는가. 그토록 사드배치에 미온적이다가 이제서야 상황이 달라졌다고 배치를 강행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뒤늦게 옳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반성하라. 사과하라.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라. 뭔 개소리들인가? 대통령이란 자리가 그저 개인의 양심에 따라 자신의 의지만으로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자리였던가. 아무리 구제불능의 인간이었다 할지라도 한 나라의 국가원수였던 이상 박근혜가 했던 헛짓들까지 국가원수로서 계승해야 할 의무가 주어져 있다. 그런 상황을 만든 것이 누구였는가. 그 뒷수습을 다름아닌 현대통령 문재인이 떠맡아 책임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현실을 생각해야 한다. 어느날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신념에 반한다며 사드배치에 반대해 보라. 사드배치의 결정을 완전히 철회해 보라. 그 후폭풍을 누가 감당하겠는가. 대통령 개인이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다. 중국의 경제보복만으로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미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이 위안부 협상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원하지 않아도 그래야 한다면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한다. 고독한 자리다. 모르거나, 아니면 모른 척 하는 것이거나.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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