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치인의 선의따위 믿지 않는다. 정치인에게 중요한 것은 이성이나 양심이 아닌 오로지 욕망이라 믿는 편이다. 이른바 권력의지란 것이다. 내가 권력을 가지려는 이유, 내가 권력을 가져야 하는 이유, 그를 위해 내가 치를 수 있는 대가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처음 정치인 문재인에 대해 어떤 신뢰도 기대도 가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 사람이 가진 정치인으로서의 욕망을 전혀 모르겠다. 그런데 하필 경쟁상대들이 박근혜와 안철수였으니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문재인이 저딴 인간들만 못하겠는가. 딱 2012년까지 내가 문재인이란 인간에 대해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지금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아예 알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문재인이란 정치인에게 과연 인간으로서의 욕망이란 것이 존재하기는 한 것인가. 유시민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오히려 시간이 지나고 더 적극 동의하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문재인에게는 흔히 사람들에게 찾아볼 수 있는 어둠이란 게 없다. 사실 사람에게 어둠이 없으면 평면이 되어 버리기 쉬운데 오히려 어둠이 아닌 밝음으로 입체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운 것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문재인 만은 욕망이 아닌 선의로 이해해도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앞서 '편'이란 표현을 썼던 것이다.

 

노무현은 오히려 정치인으로서 보다 격렬하게 욕망을 드러냈던 인물이었을 것이다. 정치인으로서 그가 이루고자 했던 바들, 그를 위해 자신이 치러야 하는 대가들에 대해 너무나 선명하게 모든 것을 드러내고 밝히고 있었다. 그래서 빛이 너무 강해서 어둠이 아닌 것들마저 어둠으로 느껴진다. 그에 비하면 문재인은 담담히 자신의 목적보다 주어진 역사적 사명과 책무에만 충실하려는 것은 아닌가. 그는 어쩌면 이 시대란 요구를 비추는 거울 같은 인물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담담하게 크게 요동치는 법 없이 그냥 일상처럼 지지할 수 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대한민국 정치사에 문재인과 같은 인물이 다시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선명한 권력의지 없이 권력의 정점에 선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매우 드문 경우일 테니까. 자신의 의지가 아닌 시대의 요구로 거대한 사명과 책무를 짊어진다는 것은 신화나 전설에나 나오는 이야기다. 그만큼 간절했다는 것이고, 그런 바람을 거부하지 못한 선의가 자기 안에 그런 시대를 담아내게 되었다. 그래서 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심지어 지지자들조차도. 똥파리들이 설치는 진짜 이유일 터다. 딱 자기들 수준에서 정치인을 이해한다. 문재인을 위해서 남경필을 지지한다? 잘하면 민주당을 지지해서 정의당에 표를 주겠다는 말까지 나오겠다.

 

이낙연에 대한 불만들을 곱씹다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떠올리고 만다. 항상 민주당을 불편하게 욕하며 지켜보기만 하던 내가 당적은 버렸어도 민주당의 행보를 최대한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민주당에 대한 신뢰로까지 이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민주당의 정치인으로서의 욕망이 문재인 대통령의 선의에 닿아 있는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없이는 민주당도 민주당 정치인들도 없는 것이다. 과연 그 절망과도 같은 벽을 이낙연이든 이재명이든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이낙연의 조급함을 이해 못할 것도 아니란 이유다. 새삼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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