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사과해야 할 것이 있다. 얼마전 무기계약직이 되기까지 내가 전혀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어째서 젊은이들이 인국공 사태에 그토록 분노하고 있었는가. 그래봐야 보안직이다. 직렬도 달라서 정규직이라지만 승진할 일도 급여가 오를 일도 없을 것이다. 사무직 전환? 말도 안된다. 다만 보안직과 관련한 사무업무가 있으면 관리자로서 그를 관리하는 직책이 새로 생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 20대 30대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다. 그때까지 보안원으로 버텨낼 수나 있을까?

 

어찌되었든 공기업 무기계약직이 되고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복권 사는 걸 그만두는 것이었다. 미래가 불안했다. 언제 일을 그만두게 될 지 몰랐었다. 실제 그렇게 작년 갑작스레 실직을 하고 지금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당장 2년 뒤 3년 뒤를 기약하지 못한다. 어지간한 기업 정규직으로 입사해도 과연 내가 40대 50대가 되었을 때 여전히 남아 승진도 하고 가족도 부양하고 있을지 자신하지 못한다. 그에 비하면 그래도 인국공도 공기업이니 보안원들은 고용이 보장된 것이 아닌가. 그 일의 난이도와 상관없이 그들은 미래를 보장받은 것이다.

 

청년들이 바라는 것은 자기가 대단한 부자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아니다. 대단한 신분이 되어 떵떵거리고 사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저 중산층만 되었으면. 먹고 사는 걱정 없이 결혼하고 자식 낳아 가족을 이루고 문제없이 살 수 있었으면. 그런데 안된다. 이태백이니 사오정이니 하는 말들을 현실로 느끼며 살아온 세대인 것이다. 과연 지금 정규직으로 입사했다고 내 미래까지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인가. 꾸준히 월급만 받아 모으면 걱정없이 가족은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비트코인에 몰리고 주식에 매달리는 것일 게다. 부동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 게다. 노동을 통한 임금소득이 자신의 가치상승으로 인한 자산소득을 따라가지 못한 지 오래일 테니.

 

그래서 불만인 것이다.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하는데, 가족도 이루고 부양도 해야 하는데 그런 미래를 마치 기성세대가 틀어막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언제 어떻게 내 미래가 바뀔 지 모르니 복권을 사야 했던 내 마음처럼 저들 역시 다른 희망과 목표를 가져야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공무원을 꿈꾸고 그래서 공기업을 희망한다. 대기업이 아니면 아예 취업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일자리가 없는 게 아니다. 30대까지 고용률이 바닥을 기다가 30대 넘어가면 급격히 실업률이 바닥을 치는 진짜 이유인 것이다. 진짜 자기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직업이라 생각지 않는다. 과연 지금 이 일을 해서 내게 미래가 있을 것인가.

 

진정 청년들이 바라는 부분일 것이다. 중산층이라도 되고 싶다. 그저 열심히 성실히만 살다 보면 중산층의 삶이라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인국공이 문제가 아니라 인국공이란 공기업이 가진 엄격함이 문제인 것이다. 자기가 먼저 그만두기 전까지 한 번 공기업에 무기계약직으로 들어가면 내 의사와 상관없이 잘릴 일이란 거의 없다. 그런 자체만으로 벌써 내 나이에도 느껴지는 안도감이란 것이 장난이 아니란 것이다. 10년 뒤를 기약할 수 있다. 오늘의 지출과 소비에도 10년 뒤까지 자신의 삶을 계량할 수 있다.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최저임금도 기왕 올리려 했으면 화끈하게 올렸으면 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기왕 하는 것 확실하게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내가 실감할 수 있게. 내가 체감할 수 있게. 그러니까 지금처럼 열심히만 살면 내게도 희망이 있다. 공무원이 아니라도. 공기업이나 대기업이 아니라도. LH사태에 청년들이 결정적으로 돌아선 이유였다. 공기업 다니는 새끼들은 이런 식으로 부당하게 이익을 챙기고 있었구나.

 

말하자면 기회다.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기회의 평등이다. 그것은 그저 내가 열심히 성실하게 능력껏 살기만 하면 아무일없이 중산층의 삶은 살 수 있을 것이란 약속이다. 진정 민주당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젠더이슈는 지엽말단이다. 나이드신 어머니와 막걸리 한 잔을 하다가 문득 머릿속을 스쳤다. 대단치도 않은데 내가 이토록 여유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어째서 인국공이었던 것일까? 한 마디로 자기가 먼저 그만두기 전에는 지켜질 일자리와 급여에 대한 약속이 그렇게 젊은 세대들에게는 소중했던 것이다.

 

이소영 같은 잘 나가는 성공한 젊은 층은 이해할 수 없는 정서일 것이다. 아마 정치사회운동으로 날을 지샌 대부분 586들도 이해못할 사고일 것이다. 그러나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어째서 지난 4년 동안 매주 사던 복권을 더이상 사지 않게 되었는가? 60세까지는 정년이 보장되었다. 일도 힘들고 최저임금이나 고작 받는 정도지만 정년을 맞은 뒤에도 다시 기간제로 일할 수 있을 지 모른다는 희망이 있다. 굳이 복권이나 비트코인에 매달리지 않아도 내게 미래의 불안따위 없다. 지금이라면 그동안 굳이 기피해 온 결혼도 출산도 육아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실제 코로나 전 태국 여자와 결혼하고 자식까지 낳은 선배가 있었다. 이제는 자기 가족을 가져도 충분히 부양이 가능하다. 부인이 친정에 얼마를 가져다 준 들 그래봐야 내 자식의 어미이고 외가 아니던가.

 

진정 민주당이 고민해야 할 지점일 것이다. 젠더이슈는 그야말로 지엽말단이다. 그마저도 결국은 현실의 불안의 연장에 있는 것이다. 10년 뒤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인가. 당장 5년 뒤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인가. 기성세대는 모른다. 나처럼 직점 몸으로 일하며 돈을 버는 것이 아닌 입과 손가락만 놀려 돈을 버는 놈들은 이해하지 못할 세계인 것이다. 나의 가장 큰 긍지이자 자부심이다. 나는 일을 해서 내 노력과 실력으로 돈을 번다. 내가 얻은 답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민주당에 실망해 등을 돌렸다.

 

문재인 대통령도 다시 살펴야 할 것이다. 진정 젊은 남성들이, 국민들이 바라는 정책이란 무엇인가. 문재인 대통령 자신의 머릿속이 아닌 현실에서 직접 청년들이 느끼는 삶의 현장인 것이다. 그래서 사과한다. 공기업 정규직이란 이런 의미구나. 공기업 무기계약직이란 이런 의미였구나. 몰랐던 건 오히려 나 자신이었다. 잘릴 걱정이 없다. 정년까지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하며 정해진 임금을 받을 수 있다. 이 얼마나 대단한 혜택이고 특권인가. 비로소 안 것이다. 현실은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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