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어느 정도 삼국지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서부터 알았다. 나는 예형과 닮았다.

 

좆같은 걸 참을 수 없다. 씹스러운 걸 보고 넘길 수 없다. 그렇다고 스스로 어찌하는 건 감히 상상할 수 없다.

 

내가 삼국지를 읽으면서 느낀 예형이란 인물이 그랬다.

 

난세였다. 그야말로 세기말이었다. 한이라는 하나의 세계가 종말을 고하며 새로운 질서를 위한 투쟁이 시작되었다.

 

세상에 조조같은 놈이 그 가운데 가장 중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대로 두고 봐도 괜찮을 것인가?

 

그렇다고 그런 현실을 바꿀 힘따위 자기에게는 없다. 그래도 좋은가 하는 확신 또한 없다.

 

그래서 욕한다. 그래서 조롱한다. 그래서 죽으면 거기까지. 혹시라도 살아남으면 그 또한 나쁘지 않다.

 

개같고 좆같고 씹같고 버러지스러운 모든 것을 경멸하고 혐오하면서도 그런 현실을 두고봐야 하는 자신을 더 환멸한다.

 

그래서 차라리 죽을 수 있기를. 스스로 목숨을 끊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갈고 책임감도 강했으니 차라리 다른 누군가의 손에 죽을 수 있으면 낫겠다.

 

간신의 손에 죽으면 충신이다. 적도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리면 열사일 수 있다.

 

누가 자신을 죽여줄까? 조조일까? 유표일까? 아니면 환조일까?

 

그래서 예전 삼국지 관련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닉으로 예형을 선택했을 터다.

 

치세의 능신이요, 난세의 간웅이다. 그 반대다. 치세에는 능신일 수 있으되 난세에는 미아가 된다.

 

민주당에도 아마 그런 이들이 적지 않을 터다. 문재인이 중심에 있는 동안 의심없이 문재인을 따랐다. 문재인이 사라지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튼 짓거리를 저지르게 된다. 그냥 약하고 무지한 때문이다.

 

자신이 나고 살아온 곳이 바로 위의 영역이었다는 것이다. 한의 마지막 영토였다. 아마 유비조차 예형의 눈에는 그저 핏줄을 앞세운 역도이지 않았을까.

 

지식인이란 것이다. 옳은 것을 알고 바른 것을 아는데 현실이 그와 같지 않다. 어찌해야 하는가.

 

다행히 나는 일을 하고 있다. 노동을 하고 있다. 단 하나, 그러나 가장 큰 자부심이다.

 

결론은 예형은 농사를 지어야 했다. 길쌈을 해야 했다. 하다못해 잡부라도 했어야 했다.

 

뿌리가 튼튼하지 않으면 잎새와 가지가 흔들린다. 그게 예형의 한계였을 터다. 그럼에도 그를 동정한다.

 

일제강점기에도 있었다. 술만 쳐마시며 온갖 악담과 독설만 지껄이다가 뒈진 버러지들이.

 

그냥 생각났다. 충신도 열사도 아닌 또다른 선택을. 진중권이나 변희재는 상상조차 못할 것이다. 그 고뇌와 고통을.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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