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근대 이전까지 국민이란 - 아니 국민이라는 말도 근대의 산물일 테니 백성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 백성이란 단지 감시와 통제의 대상일 뿐 나라와 지배자 자신의 운명을 믿고 맡길만한 동반자나 심지어 동지는 결코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징집이라는 자체도 근대 이후에 생겨난 개념이라 할 수 있었다. 백성을 징집해서 군대를 꾸리기보다 자신으로부터 직접 급여를 받는 용병을 더 선호했다. 내가 급여를 지급하는 한 용병은 언제나 자신의 군대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근대 이후 국민국가의 개념이 깊이 뿌리내리면서 많은 것들이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징집된 병사들이란 더이상 믿을 수 없는 감시와 통제의 대상에 불과한 백성이 아니었다. 국가와 공동운명체였고, 국가의 운명을 함께 책임져야 하는 동반자였다. 더구나 민주주의 국가에서 징집된 병사들이란 국민이었으며 국가의 주권자였다. 굳이 가두고 감시하고 통제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자신의 나라를 지키려 나설 것을 전제하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근대의 국가란 국민이 스스로 나서서 지키려 애쓰는 국가다. 그렇게 만들어야 하고 그렇게 설득해야만 한다.


구일본제국은 출발부터 강제와 억압을 통해 뿔뿔이 흩어진 각 번의 백성들을 통합하고 있었다. 이전까지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일본이라는 개념도 없었고 천황의 존재 역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사실상 독립국가의 연합체와 같은 상태였었다. 그것을 억지로 일본과 천황이라는 개념을 주입시켜 일본의 신민으로 만든 것이었다. 정작 일본 정부와 군부의 고위층이 천황의 충실한 신민인 일본인들을 믿지 못한 이유가 여기 있었다. 오로지 강제와 억압으로만, 폭력과 형벌로만 유지되는 군이란 바로 여기서 출발하고 있었다. 억지로 때려서라도 군인을 만들어야 한다. 온갖 폭행과 욕설과 모욕과 가혹행위들로 철저히 길들여 제대로 된 군인을 만들어야 한다. 제대로 된 군인이란 상급자의 명령에 맹목적으로 복종할 줄 아는 군인이다.


똑똑한 군인을 싫어했다. 많이 배우고, 또 보고 들은 것도 많은 도시출신들을 싫어했다. 그 전통은 한국군에도 고스란히 이어져서 불과 90년대까지도 한국군 지휘관 가운데는 대학출신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갖는 이들이 적지 않았었다. 똑똑해서 말만 많고 시키는대로 따르지 않는다.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 것은 오로지 높은 곳에 있는 정부의 고위관료와 군의 지휘관들이 도맡아 한다. 일선의 사병들은 그저 시키는대로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 2차세계대전 당시, 아니 그 전부터도 일본군 가운데 지휘체계가 와해될 경우 덩달아 군기는 물론 인성마저 와해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더욱 군의 사병들에 대한 - 아니 장교들에 대해서까지 억압과 폭력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쓰이게 되었다.


그런 구일본제국군을 계승한 것이 바로 해방이후 대한민국 국군이었다. 새로 창설된 대한민국 국군의 지휘부 가운데 상당수가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복무했던 이들이었다. 1948년 수립된 정부의 수뇌부와 그들의 손발이었던 경찰들 역시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의 인민들을 배신하고 일본제국주의에 빌붙었던 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처음부터 지배층과 지휘층이 조선의 일반대중과 유리되어 있었다. 감시하고 통제해야 한다. 억악하고 강제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살인과 방화, 학살, 약탈 역시 대중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수단이다. 아직도 많은 국민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조선놈들은 그저 패야 말을 듣는다고. 나라를 다스리다 보면 한두사람 쯤 죽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그것이 최근까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였다.


군이 사병들을 믿지 못하는 이유다. 군에 있어 사병들이란 스스로 나라를 지킬 의지도 용기도 없는 타자들이다. 주권자로서 나라에 대한 어떤 책임도 사명감도 가지지 못하는 외인에 불과하다. 나라를 걱정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들 뿐이다. 나라를 지키려 하는 것도 오로지 자신들 뿐이다. 자신들의 나라만이 나라다. 군사독재의 전통은 유구하도록 그렇게 군을 통해 계승되어 왔다. 사병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하기보다 아예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는다. 충분히 고민하고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기회 또한 주지 않는다. 굴리고 다그친다. 때리고 윽박지른다. 그래야 군은 제대로 돌아간다. 정치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은 단지 자신들이 결정한대로 시키는대로 따르기만 하는 대상에 불과하다.


군이라는 특성상 물론 어느 정토 억압과 통제는 필수적이다. 군의 단합을 위해서라도 일정기간 병영에 머물며 공동생활을 하도록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일과가 끝난 뒤에도 모든 일상들마저 지휘관의 통제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가. 정해진 일과가 없는 날에조차 모든 일상의 행위들을 지휘관의 명령에 의해 결정한다. 자신의 나라다. 단지 그들의 나라일 뿐이다. 한국인들에게서 보편적으로 애국심이라 하는 것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다. 관념적으로는 나라를 위하는데 실제 자기가 손해보면서 나라를 위해 무언가 하려는 의식은 부족하다. 아니 국가라고 하는 인식 자체가 왜곡되어 있는 경우가 더 많을 정도다. 국가와 자신과의 관계를 단지 정권과, 혹은 권력자와 자신과의 일대일 인정의 관계로 인식한다. 국가라는 보편적인 세계가 아닌, 국민이라는 보편적인 관계가 아닌, 특수한 인정의 관계로서 모든 것을 인식하고 판단한다. 명령에는 복종하는 대신 자신의 부당한 이익 역시 정당화한다. 나라에 해를 끼치면서도 정작 위에서 아뭇소리 없으면 그것으로도 옳다.


국가가 먼저 국민을 존중해야 한다. 군이 먼저 병사들을 존경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 스스로가 나라와 군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굳이 억지로 다그치고 몰아세우지 않더라도 스스로 나서서 나라와 군을 지키려 할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그다지 필요없는 비용이다. 병사들을 통제하기 위해 억지로 휴일까지 병영에 잡아두고 무언가를 강요하기 위한 비용이란 오히려 낭비에 가깝다. 해소되지 않은 불만과 동요가 결국 수많은 사건과 사고로 이어지며 군에 대한 인식은 물론 군의 사기와 전투력마저 떨어뜨리고 있다. 그것을 또 관리하겠다고 비용과 노력을 낭비한다. 


차라리 모병제가 나을 수 있다 여기는 이유다. 최소한 200만원 300만원 월급을 주며 부린다면 사람 중한 줄은 알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모병이 부족해서 인력난에 허덕인다면 더이상 병사들에 지불해야 할 비용을 아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은 수고와 노력과 비용을 들이면서도 오히려 다행이라 여길 것이다. 병사는 공짜가 아니다. 국민 역시 공짜가 아니다. 공짜가 아닌데 공짜로 부리려 하니 그를 위해 또 엉뚱한 비용이 소모된다.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병영내 징집된 병사들에 대한 인간적인 예우와 환경의 개선. 충분히 대가를 치루고 대우하면서 소중하게 그들을 대해야 한다. 더 많은 자유와 더 많은 재량을 허용하며 그들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을 믿지 못하는 국가가 어찌 유지될 수 있을까? 병사들을 믿지 못하면서 어찌 군이 승리를 기대할 수 있을까? 가장 크게 낭비되는 부분이다. 국민을 믿지 못한다. 병사들을 믿지 않는다. 아예 않으려 한다.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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