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주장이 옳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서는 논증이란 걸 해야 한다. 논증은 대개 논쟁을 통해 이루어진다. 다른 주장과의 치열한 토론을 통해 약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강조하며 그 타당성을 증명한다. 문제는 논쟁이라는 게 반드시 옳다고 이기는 것도 아니고, 괜히 잘못 나섰다가 몰리기라도 하면 낭패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있다. 말싸움에서 지더라도 논쟁을 통해 그 가치를 드러내면 그만큼 의미있는 과정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자신이 시작한 논쟁을 누군가 받아서 더 발전시켜 마침내 승리하면 그 또한 승리다. 그에 대한 확신이 없다. 자신이 없다.

 

어제 쓴 글의 연장이다. 어째서 자칭 진보는 정부를 향해서만 지랄하는가. 어째서 전혀 반대편에서 전혀 상반된 주장을 하는 수구언론이나 수구정치권, 지식인들과 논쟁하기보다 단지 방법론에서 차이가 있을 뿐인 민주정부를 향해서만 날을 세우는가. 당연하지 않은가. 언론의 자유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민주정부와 민주당이라면 굳이 날선 비판을 한다고 적대적으로 논쟁을 벌이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절대 질 수 없는 싸움이다. 그래서 민주정부와 민주당에서 보다 강하게 자신들의 주장에서 잘못된 점을 지적하면 전가의 보도인 언론의 자유를 앞세우면 된다. 민주정부와 민주당이 언론의 보도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며 언론을 억압하고 있다. 늘 보던 패턴이다.

 

당연하게 자신들의 주장에 반박할 수구진영과 논쟁하면 자신이 없다. 토론을 벌여서 자신들이 주장하는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전달하기에 자신들의 실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저들은 엘리트니까. 진정 주류집단일 테니까. 그에 비하면 민주당은, 그 가운데서도 친노친문은 말 그대로 떨거지들 아닌가. 운이 좋아서 대중적으로 인기 좋은 문재인과 노무현이라는 대통령에 줄 잘 서서 한 자리 했을 뿐인 자기들 이하인 것이다. 문재인이나 노무현도 대통령 되기 전에 어디서 뭐 하던 놈들인지 알 게 무언가. 그래서 만만한 정부를 시비삼는 것이다. 문제는 수구와는 아예 방향이 다르지만 민주정부와는 그래도 방향은 비슷하다는 것이다. 방법을 비판하려는데 때로 선을 넘어 버리면 아예 그 방향까지 부정하게 된다. 자기부정이 된다.

 

탈원전이 그 예다. 검찰이 수사하나 원전폐쇄는 범죄다. 대통령까지 직접 수사해야 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정의당의 공식 입장이고 한겨레와 경향의 입장이다. 다수 자칭 진보 지식인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김학의는 어떤가? 검찰이 대충 수사해서 무혐의 처분한 김학의를 검찰이 무혐의로 결론지었다도 무고한 시민으로 전제한 뒤 역시나 출국금지에 대해 청와대 차원에서 책임져야 할 중대한 범죄로 단정짓는다. 아마 자칭 진보의 머릿속에는 수의를 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을 것이다. 김학의가 저지른 범죄들을 보라. 그 범죄들이 어떻게 처벌조차 받지 않고 지나갔는지 생각해 보라.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공격해야 하니까. 국민의힘은 무섭지 않은가. 국민의힘 잘못 비판하면 고소당한다. 다시 한 분 윤석열에 그랬던 것처럼 오체투지하고 용서를 빌어야 할 지 모른다. 

 

그동안 현정부의 진보적인 정책들에 대해서 방법론적으로 비판해 온 내용들이 오히려 그 방향마저 수정하고 혹은 퇴보하게 만드는데 일조한 것이 그런 이유들인 것이다. 그래도 진보적인 정책을 펼치면 방법론적으로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방향 자체는 동의해야 하는데 그마저 반대한다. 방법론적으로 문제가 있으니 그냥 하지 말아야 한다.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아예 그런 정도도 하지 않았던 이전 정부보다도 방법론적으로 틀린 정책을 펴는 정부가 더 나쁜 것이다. 그래서 국민의힘보다 민주당이 더 나쁜 것이다. 경향일보는 차라리 솔직하다. 요즘 대놓고 수구언론짓이더만. 그런데 수구언론은 아니다. 정의당이나 한겨레 하는 꼬라지 보면 그게 바로 자칭 진보의 본모습이다.

 

비겁한 것이다. 정확히는 이제 자기들 주제를 알게 되었다 해야 할 것이다. 올해 초 잠깐 민주당과 손잡았다가 언론의 총공격을 받고 나서 더욱 확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민주당과 달리 정의당 나부랭이는 감히 언론의 눈밖에 났다가는 버티지 못한다. 그리고 한겨레는 그보다 더 일찍 깨달았을 것이다. 조선일보의 눈밖에 나면 자신들따위 그냥 가루가 되고 만다. 그래서 자기들이 진보라는 증명을 민주정부와 민주당을 통해서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구는 감히 비판할 수 없으니 민주당과의 차별성을 통해 자신들이 진보임을 드러낸다.

 

돌이켜보라. 과연 자칭 진보가 자칭 보수와 정면으로 논쟁을 붙고 주도한 적이 과연 얼마나 있었는지. 아주 오래전에는 있었다. 한겨레가 조선일보의 기사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논쟁을 하던 시절도 분명 있었다. 지금은 없다. 정의당도 감히 국민의힘에 정면으로 논평을 하거나 하지 않는다. 엘리트라서 그렇다. 어려운 일 한 번 겪어 보지 못한 룸펜들이라 감히 그런 치열함을 감당할 수 없다. 민주당이야 항상 전장의 진흙탕 속에 뒹굴고 있으니까. 아무리 곱게 자라왔어도 민주당에 몸담는 순간 그렇게 된다. 그 차이다. 그게 자칭 진보의 수준이다. 비웃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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