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경제가 무려 500년이 넘는 시간동안 크게 발전하지 못한 첫째 이유로 나의 경우 노비를 꼽는다. 이미 같은 시대 명과 일본에는 인신이 구속된 채 공짜로 부려지는 노예와 같은 존재는 공식적으로 사라진 뒤였다. 신분적으로는 예속되었지만 기본적인 급여 정도는 지급받고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시 말해 예속인을 부려 누리는 지배층의 사치는 곧 예속된 하층민들의 경제활동을 의미했다.


조선이 노비제를 폐지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아직 노동력이 유일한 수단이던 전근대사회에서 지배신분이 사치를 누리려 하면 반드시 그에 해당하는 노동력을 확보하고 있어야 했다. 사실 그것은 중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유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럽에서는 그래서 농노가 있었다. 엄격히 주거와 직업, 여행의 자유가 통제되는 영민들이 있었다. 얼마나 많은 노동력을 소유하고 그를 이용해 부를 만들고 일상의 사치를 유지하는가, 그것이 바로 가진 바 권력을 가늠하는 기준이었다. 전근대 일본사회에서 봉건영주가 누리는 권력을 측정하는 단위인 석고(고쿠)도 그것을 뜻했다. 고쿠란 자신이 소유한 영지에서 나오는 생산량이고, 생산량은 곧 그에 해당하는 노동력을 뜻한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 이만한 사람들이 복종하며 일하고 있다.


조선과 이들 나라들과의 차이는 단 하나다. 일정한 영지를 항구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가, 아닌가. 중세의 유럽, 혹은 근세의 동유럽의 농노들이나 일본의 농민들은 사람이 아닌 땅에 예속되었다. 오다의 소유가 아니라 오와리 영주의 소유였다. 누군가 사이토를 몰아내고 기후성을 차지한다면 마찬가지로 미노의 농민들은 새로운 지배자의 소유가 되는 것이었다. 토지를 소유하는 것이 곧 토지에 예속된 노동력을 소유하는 것이었다. 그에 비해 모든 토지를 국왕의 소유로 간주했던 조선에서 지배층의 토지소유란 매우 불안정한 한시적 권리에 불과했다. 특히 조선초기 과전법은 지배층의 토지소유를 한정시키고 있었다. 더욱 노동력을 직접 자기 개인에게 귀속시킬 필요가 있었다. 토지의 소유가 어떻게 바뀌더라도 노비는 언제나 지배층 가문의 소유여야 했다.


문제는 그런 결과 생산에 종사해야 할 노동력을 따로 불러 부리는 것을 비용으로 인식했던 다른 문화권에 비해 직접적으로 예속된 노동력을 공짜로 여기는 인식이 강해졌다는 것일 게다. 노동력은 영지에 속해 있으니 따라서 농사가 아닌 다른 일로 그들을 불러 부리려면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된다. 무엇보다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농사를 짓지 못했으니 그것부터 생산의 감소라는 비용으로 지불된다. 그에 비해 사람만을 소유한다. 사람만을 직접적으로 소유하고 부린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신분에 따른 일방적인 권력관계와 명령 뿐이다. 더이상의 어떤 대가도 지불할 필요가 없다.


노동력을 동원하면서 그에 따른 적절한 임금을 지급하고 않고의 차이는 매우 컸다. 어째서 조선은 후기까지 제대로 화폐도 유통되지 않고 상공업 역시 정체되어 있었는가. 돈을 벌고 쓰는 주체들이 그만큼 적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의 상공업이 그나마 발달한 조선후기만 해도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몰려든 유민들이 임금노동자로 편입되며 도시경제의 저변을 이루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일을 해서 임금을 받고 다시 그 임금을 생활을 위한 소비에 쓴다. 임금노동자들이 쓰는 그 돈을 바라고 새로운 노동력이 유입되며 다양한 직업이 생겨나고 물자의 유통 역시 활발해진다. 부를 축적하는 사람도 나온다. 바로 그런 변화가 이미 한참 더 전에 중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귀족의 시중을 드는 하녀나 하인들마저 임금을 받고 일하는 임금노동자였다. 온갖 허드렛일을 하는 이들마저 얼마간의 대가를 받고서 그 일을 해야만 했다. 그들이 번 돈은 바로 시장에서 쓰여졌다. 먹고 입고 자는 모든 과정에 그들이 번 돈이 쓰여지고 있었다. 그들을 위해 음식을 팔고, 혹은 옷을 팔고, 혹은 노동력을 제공하며 또다른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조선시대 양반들이 보유하고 있던 수많은 노비들은 조선경제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 생산에는 종사했다. 양반들의 땅을 경장하여 생산을 하기는 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얼마나 조선의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가. 재화를 주고받을 일 자체가 드문데 화폐를 유통하려 한다고 실제 그것을 가져다 쓸 사람은 또 얼마나 되겠는가.


도시화란 결국 임금노동자의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귀한 신분들이 많이 살아서 화려한 건물이 빼곡하다고 도시화가 잘되었다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도시화란 시장화다. 시장이란 실제 재화가 유통되는 공간이다. 자신이 노동의 대가로 받은 재화를 필요한 물품으로 바꾸어가는 공간이다. 수입이 있어야 한다. 수입이 없는데 소비란 있을 수 없다. 자급자족이란 생산을 있는 그대로 소모하는 원시경제와 같은 말이다.


아마 조선의 노비제와 경제에 대해 비판할 점이 있다면 바로 이것일 것이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서 노동력을 사용하는 법을 몰랐다. 노동력은 단지 지배층 개인의 목적을 위해 일방적으로 소비되고 있었다. 노동력이 생산으로 경제활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다분히 의도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여기서 왜 이런 글을 쓰고 있을까? 소득이 없이는 소비도 없다. 너무나 당연한 전제이며 결론인 것을.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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