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없어 보이는 말이나. 남들이 다 그렇게 말하더라. 모두가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더라. 그래서 네 생각은? 네 주장은? 네 근거와 네 논리는? 그냥 이름없이 말하는 필부필부야 그렇다 치더라도 자기 이름 걸고 말해야 하는 지식인이라면 더 말할 것다. 오죽 못났으면 자기 주장이 아닌 남의 말을 근거로 앞세우는 것인가.

 

사실 전근대 동아시아에서는 그런 것이 상식처럼 여겨졌었다. 이른바 전거란 것이다. 과거의 문헌 가운데 필요한 부분을 인용해서 자신의 주장과 논리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역사의 인물 가운데 문장력이 어쩌고 하는 내용이 있으면 거의 대부분 그렇게 과거의 문헌을 인용하여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뜻일 터다. 실제 동아시아의 고전을 해석할 때 가장 막히는 부분이 곳곳에 밑도 끝도 없이 들어가 있는 의미도 알 수 없는 글자와 단어와 문장들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능력을 보자고 과거시험의 과목에 시작이 들어가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냥 글만 아름답게 써서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고전을 인용하면서도 어색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자신의 의도와 어우러지게 하는가 실력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전제가 있었다. 아무리 많은 고전의 문헌을 인용하더라도 결국 주장하는 바는 자신의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말이어야 하고 생각이어야 한다. 그냥 인용만 잘하는 것을 오히려 당대의 지식인들은 비웃고 있었다. 그마저도 권위를 인정할만한 고전도 아닌 아는 누군가의 말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누가 그렇게 말했다더라. 어디에 그렇게 쓰여 있다더라. 그러니까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이, 주장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 것도 없이 단지 인용만 하는 것이라면 그냥 그 책을 사서 읽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웃기는 것이다. 기자라는 것들은 남의 말을 따옴표로 받아서 그대로 전달하기에 바쁘고, 지식인이라는 것은 기자가 쓴 기사를 받아서 있는 척 떠벌리느라 정신없다. 아니 아예 검사로부터 들은 말이면 그 자체로 이미 기정사실을 넘어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이다. 검사로부터 직접 전해들을 수 있다는 자체가 자랑이고, 그 이야기를 또 기자로부터 직접 전해들은 것이 자랑이다. 오죽하면 토론에 나와서 내세우는 논리라는 것이 누구와 직접 만나봤느냐는 것이다. 검사가 썼다는 공소장이 근거가 되고 있다. 자기가 직접 발로 뛰어 당사자를 만나고 물어서 들은 내용들은 거의 들어가 있지 않다. 그럴 가치조차 없다. 검사의 말이 논어고 맹자고 기자의 기사는 춘추고 사기다. 진중권이 주희고 김경록이 송자다. 그러므로 자신들이 옳다. 절대 틀릴 리 없다.

 

문제는 전근대사회에서도 저따위로 무작정 고전만 인용하여 앵무새처럼 떠들어대는 이들을 선비로 인정하지 않은 이유가 말에 책임이 없기 때문이란 것이다. 자신의 모든 주장의 책임을 고전의 저자들에게 떠넘긴다. 감히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라면 절대 함부로 여길 수 없는 대상을 빌어 책임까지 함께 떠넘기려는 것이다. 잘못되었다면 그들이 잘못인 것이지 자기의 잘못은 아니다. 따옴표를 따서 보도했지만 그들이 그런 말을 했을 뿐이니 자신의 책임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럴 거면 자기 이름까지 달고 기사를 내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기 이름을 앞세워 인터뷰도 하고 기고도 하는 이유가 무엇이란 것인가. 그런데도 틀렸을 경우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남의 이름을 빌어 윽박지르기만 열심이다. 남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으므로. 모두가 대단하게 여기는 이들이 그리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니 지금은 네가 틀린 것이다. 지식인으로서 가장 최악이 바로 이런 비겁함인 것이다.

 

남의 말을 인용했어도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하는 것이다. 남의 주장을 인용해서 자신의 주장을 폈다면 그 주장 만큼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스스로 지식인이라 여기는 이의 자세다. 과거 진중권은 그런 모습을 얼핏 보이고는 했었다. 자칭 진보라 여기는 지식인 가운데 상당수가 자신의 많은 것들을 내걸고 자기의 책임 아래 글을 쓰고 주장을 하고는 했었다. 기자란 한 때 한 사회를 대표하는 지성으로 여겨지고는 했었다. 스파이더맨과 슈퍼맨이 괜히 평상시 기자란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정의와 지성과 용기를 모두 가진 이들만이 진짜 기자가 될 수 있다. 물론 환상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그런 환상을 믿는 이들이 많다.

 

오죽하면 뭔가 주장하기 만만치 않으니 여론조사를 근거랍시고 들고 나오겠는가 하는 것이다. 윤석열이 잘하냐? 추미애가 잘하냐? 윤석열과 조숙에 대한 서울대생들의 평가가 어떠한가? 그런데 그 판단의 근거가 되는 기사는 자신들이 쓰고 있다. 자신들이 쓴 기사를 가지고 대중이 판단하면 그를 근거로 인용하는 대단한 순환논법이다. 그러면 항상 대중의 판단과 의사를 그렇게 존중해서 인용해가며 기사를 쓰고 있는가. 그럴 놈들이면 자신의 잘못된 기사에 분노하고 항의하는 대중들에 미안한 감정이라도 가져야 한다. 대중이란 단지 자신의 기사에 선동당하고 이용당해야 할 대상일 뿐 존중되어야 할 주체가 아닌 것이다. 그러면 그만한 당당함이라도 보이던가.

 

사실 나 역시 오래전 한참 비루하던 시절에 뭣만 하면 누가 뭐라 주장했다더라며 앞세우기를 즐겨하고 있었다. 지금은 거의 않는다. 일단 귀찮다. 누가 뭐라 떠들었든 상관없이 나는 내 이야기를 한다. 내가 인용한다면 내 주장을 위해 필요해서다. 오히려 퇴보하는 것 같다. 주장에는 기자로서의 자신도, 지식인으로서의 자신도 없고, 그냥 논리없는 인용만이 가득하다. 책임을 돌리면서, 그러나 권위를 빌리면서, 그 권위마저 순환에 의핸 자가생산이다. 그것이 자칭 지식인들과 기자것들이 자신들의 논리를 강화하며 권위까지 싣는 방식인 것이다.

 

이제는 차라리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도 논객이라면 미움은 받더라도 비웃음을 사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래도 지식인이라면 차라리 모두와 원수가 될 지언정 무시당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기레기라고 욕하는 것도 이제는 지쳐가는 느낌이다. 자칭 지식인이라는 것들의 헛소리에 귀기울이는 것도 이제는 지겨울 정도다. 내가 왜 그딴 놈들의 허튼 소리를 내 시간 낭비해가며 듣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언론에 대한 관심조차 이제는 아예 시들하다.

 

차라리 자기 이름을 앞세운 만큼 되도 않는 논리라 할지라도 자기 주장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이들이 더 괜찮은 기자고 지식인인 것처럼 여겨질 정도다. 최소한 그만큼 자기의 주장에 대한 책임 역시 온전히 자신이 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마저 감수하고 기사를 쓰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차라리 낫다고 여기는 이유다. 그나마 나은 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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