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오랜 일도 아니다. 불과 90년대까지 때만 되면 만화책들 모아서 불태우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뉴스를 통해 보도되고 있었다. 만화는 저급하고 해로운 것이니 아이들이 읽게 해서는 안된다. 누가 그랬을까? 아마 만화 좋아하는 사람이면 잊을 수 없는 이름일 것이다. YWCA다. 

 

YWCA는 약자에서도 알 수 있듯 개신교 기반의 여성단체였었다. 한국 YWCA 창설을 주도한 면면을 보면 그 성격을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김활란과 최활란, 박마리아 등은 한국 여성운동의 효시라 할 만한 인물들이다. 그런데 김활란이나 박마리아 등의 자유당정권 이후의 행보에서도 볼 수 있듯 상당히 보수적인 여성인사들이 그 중심이 되고 있었다. 친일과 친독재는 그들의 본성과 같았다. 그런 이들의 후예가 과연 얼마나 진보적이고 자유로울 수 있었겠는가.

 

YWCA의 만화 모니터링은 그 취지와 상관없이 그래서 당시 대한민국 정부의 만화에 대한 검열과 함께하고 있었다. 별 거지발싸개같은 되도 않는 이유들을 스스로 만들어 갖다대며 우수만화와 저질불량만화의 경계를 결정지었었다. 김수정 작가의 '아기공룡 둘리'도 그래서 고길동을 만년과장이라고 놀린 부분을 두고서 과장을 비하했다며 불량만화로 판정한 바 있었다. 리니지가 아마 동성애 미화로 엮였던가 그랬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아무 이유라도 갖다 붙여서 저질불량만화로 만들고는 5월이면 모여서 화형식을 거행했었다. 오죽했으면 우수만화라고 상을 준다는데 이진주나 이희재나 도저히 못받겠다 거절하려 했었는가. 이진주는 후환이 두려워서 받아서는 내던져 버렸고, 이희재는 진짜 거절했었다. 바로 이 YWCA가 한국 여성주의의 온상과 같은 곳이었다.

 

이해가 되는가? 같은 만화가가 여성주의를 이유로 다른 만화가의 창작 자체를 금지하려 하고 있다. 그 엄혹하던 시절 선배 만화가들이 필사적으로 싸워서 쟁취한 자유를 그들 스스로 여성주의를 이유로 내다 버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달동네를 말 그대로 달동네처럼 그렸다는 이유로 작품을 난도질당해야 했던 작가가 있었다. 도둑놈을 쫓더라도 어른인 도둑에게 아이가 반말을 써서는 안되고, 부모자식이든 형제자매든 성별이 다른 가족이 같은 방에서 자서도 안된다. 아, 이건 그제 국세청장 청문회에서 나온 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네.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때까지 부모님과 여동생 둘과 단칸방에서 같이 먹고 자고 했었거든? 가난하다는데 집도 넓고, 방도 여럿이고, 담도 다 쓰러져가는 블록담이 아니라 미국스런 나무담이다. 여기가 어디냐? 그래서 게기면 아예 출판 자체가 안되었다. 그런 시절을 거치며 청소년보호법의 억압을 넘어서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여성주의를 이유로 작가의 창작 자체를 금지하겠다?

 

원수연이 나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원수연도 엄연히 그 뒷세대라 할 수 있다. 아마 빨라야 80년대 말 데뷔일 것이다. 자신도 겪은 것이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바로 윗세대 선배들이 겪었던 일들을 생생하게 전해들었을 것이다. 97년 청소년보호법 제정을 직접 맞서 싸워야 했던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후배란 것들이 어느새 여성주의라는 완장을 차고서 같은 작가의 창작을 금지하겠다 설치는 꼬라지를 보고 있으니.

 

원래 뿌리가 그렇다는 것이다. 피가 그렇다. 김활란과 최활란, 박마리아, 그리고 YWCA라는 한국 여성주의의 유전자라는 것이 그렇다. 권력에 기대어 억압하고 차별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야 했던 그 비루함이 그들의 본질이란 것이다. 다르지 않다. 같은 여성이고 약자인 계약직 방송인인데 자기들과 다른 이야기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밥줄까지 영영 끊으려 하는 그 잔혹함이야 말로 그들의 본성인 것이다.

 

진짜 옛날생각 나려 한다. 요즘은 여성주의지 당시는 반공주의였었다. 달동네를 달동네처럼 그리지 못했던 이유도 북한이 보고 좋아 할까봐. 북한이 보고서 체제선전에 이용할까봐. 그래서 아무리 가난한 집도 남매의 방은 따로 있어야 했다. 집도 제법 번듯해야만 했었다. 그 뿌리가 어디 가겠는가.

 

그래서 새삼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한겨레와 경향이 조선과 손잡고 정의연을 친 이유가 김재련 같은 박근혜에 부역했던 여성주의자들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서가 아니었는가. 박근혜에게 마지막까지 충성했던 집단이 바로 이들 여성주의자들이었고 보면. 피가 어디 가지 않는다. 벌레같은 것들. 시대가 달라졌어도 그들은 여전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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