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기생충'이나 '오징어게임'이나 그 주제의식은 본질적으로 같다. 과연 지금 당신이 불우한 현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싸우고 있는 대상은 누구인가? 그런 불우한 현실을 만든 당사자들인가, 아니면 크게 다르지 않은 처지의 또다른 약자들인가. 그리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야 말로 김기택이고 성기훈이란 사실을. 아니 어쩌면 자신은 국문광일수도, 조상우일수도 있다. 박사장네 집에서, 그리고 오일남과 세계의 거부들이 만든 무대 위에서 서로를 밟고 올라서기 위해 발버둥치는 군상들인 것이다.

 

원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만든 것은 자본가들과 그들과 결탁한 정치가들이었다. 더 싼 값에 일자리가 급한 사람들을 고용해서 쓰면서 아무때고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비정규직을 만들고 그것을 일상화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차피 하는 일도 같은데, 아니 하는 일이 다르더라도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일해주고 급여를 받는 것은 같을 텐데, 그런 비정규직이라는 부조리한 현실을 만든 당사자들과 싸워 모순을 바꾸기보다 이미 차지한 정규직이라는 알량한 신분을 지키기에 급급하다. 나는 어차피 정규직이 될 것이므로. 정규직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노력할 것이므로. 그렇기 때문에 비정규 계약직이 감히 나의 자리를 넘보는 걸 참을 수 없다.

 

같은 사무직이라도 직렬이 다르면 승진과 급여에서 차별을 두는 경우마저 현실에는 매우 흔하다. 이른바 기술직이란 것으로 특정한 업무에만 종사하도록 채용한 경우인데 사실상 무기직이다. 다만 차이라면 승진과 그에 따른 급여의 인상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다만 일정 이상, 특히 임원으로의 승진은 매우 어렵다. 하물며 정규직이라지만 결국 무기계약직이다. 업무도, 직책도, 급여도 전혀 변동없는, 말 그대로 직무급을 적용받는 한정업무종사직원이다. 설마 아무리 보안원 근무하던 직원을 어느날 상관도 없는 총무나 기획팀에 내려꽂겠는가. 그런데 보안원이 정규직 - 아니 무기계약직이 되면 사무직으로 전환도 가능하다는 개소리를 진심으로 믿는 머저리들이 있었다. 좋은 대학 나오고, 열심히 공부해서 입사시험도 합격한 나름 능력을 인정받은 병신들이다.

 

어차피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급하면 주위에 아무나 아는 사람 추천해달라 해서 채우기도 하는 일자리인 것이다. 그런 자리들은 대부분 이직률도 높아서 어느날 눈뜨면 멀쩡히 다니던 사람이 말도 없이 안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에 당장 사람을 구해야 하는데 알량한 최저임금 받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상당히 고단한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단기간에 그리 많을 리 없다. 어차피 자기도 하지 않을 일이다. 하라 해도 오히려 자기를 업수이여긴다 화를 낼 인간들이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업무에서조차 장기간 근무하며 업무능력과 성실성, 인성 등을 판단해서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니 난리도 아니다. 정규직이 되려면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없었으므로 인정할 수 없다. 그래서 서울대에서 미화원을 대상으로 한문과 영어시험을 강요했다는 뉴스에 분노하기보다 오히려 옹호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싫으면 나가라. 서울대에서 미화원 하려면 그런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그런 의식이 특정 정치인 아들이 퇴직금으로 50억을 받았다는 뉴스에는 무덤덤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특정인들의 표창장이나 인턴증명서에는 그리 민감하던 것들이, 심지어 단지 체험활동에 지나지 않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 인턴을 채용을 위한 준비과정이라 정의하는 자신들의 상식과도 전혀 맞지 않은 판결에 대해서까지 아무런 비판없이 공정을 내세우던 인간들이 대기업 경영자들도 받지 못할 퇴직금에는 오히려 대신 변명해주기 바쁜 것이다. 아버지가 당시 청와대 실세인 민정수석이었으니 무언가 기여한 바가 있었기에 그 돈도 받았을 것이다. 최근 나오고 있는 성과금이라는 변명의 밑바탕이다. 문화재며 천연기념물이며 개발에 장애가 될 만한 부분들을 인맥을 활용해서 해결해 주었기에 그만한 돈을 받을 자격이 되었다. 따라서 공정의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래도 되는 신분에 있기 때문이다. 시험봐서 검사가 되었다.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 합격해서 검사가 된 아버지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사법고시도 합격 못한 법대 교수따위 자격이 있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정규직이 되려면 시험을 치러야 한다. 시험에서 떨어졌으면 패배자로 사는 것이 당연하다.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이유다. 하류인생들의 급여가 오르고 휴식시간이 늘어나면 그만큼 자신들이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알바나 하는 것들에게는 그에 걸맞는 급여를. 청소나 하고 보일러나 만지고 공사장에서 막노동이나 하는 인간들은 일주일에 100시간 120시간이든 일해서 필요한 돈을 벌면 되는 것이다.

 

벌써 십 수 년부터 그래서 인터넷에서 흔히 듣게 되는 말이 '학교 다닐 때 더 열심히 공부하지'란 것이었다. 가난을 호소하며 사회적 약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에 대한 냉정하고도 준엄한 꾸짖음인 것이다. 지금 너는 벌을 받는 것이다. 정당하게 벌을 받는 것이므로 반항하지 말라. 자신은 그런 위치에 올랐다. 좋은 대학 나왔고 좋은 직장도 가졌다. 승자다. 그러므로 승자로서 권리를 주장해도 된다. 심지어 건강보험이나 전기, 가스, 수도 같은 필수재조차 패배자들과 같이 쓸 수 없다 하여 민영화를 주장하기도 한다. 내가 내 능력 만큼 더 내고 더 나은 서비스를 받겠다. 늬들은 죽어라.

 

그를 위한 공정이다. 바로 '오징어게임'이다. 참가자 모두에게 주어지는 1억씩을 모은 456억을 가져가는 것은 최후의 승자 단 한 사람이다. 나머지는 죽어야 한다. 아니 죽여야 한다. 그래서 주인공 성기훈도 누군가를 죽였다. 죽도록 만들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나 '뽑기'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줄다리기'와 '구슬치기'는 내가 살기 위해 고의로 상대를 죽이기 위해 행동했던 경우였다. 심지어 구슬치기에서는 치매로 정신이 온전치 않아 보이는 일남을 대상으로 사기까지 쳤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주최자가 만든 룰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상대를 속여도, 심지어 죽여도 주어진 룰 안에서 정당하며 그러므로 상금이야 말로 오로지 자신의 권리여야 하는 것이다. 아마 조상우가 서울대 출신 엘리트로 설정된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렇게 악착같고 독했기에 조상우는 시스템 속에서 승자로 여겨질 수 있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네가 죽어야 한다. 게임을 만든 주최자인 일남이 아니다. 일남의 초대를 받아 막대한 돈을 뿌리며 관람하는 세계의 거부들도 아니다. 진행요원들조차 그들에 비하면 크게 대수로울 것 없는 룰의 일부일 뿐이다. 그러나 믿는다. 승리하면 저 돈은 내 것이다. 저들을 모두 죽여야 오로지 저 돈이 모두 내 돈이 되는 것이다. 룰이 그렇다고 말하므로 나는 옳다. 90년대부터 인터넷을 해 온 내가 요즘 꽤나 위화감을 느끼는 부분일 것이다. 법이 정의다. 법이 진리다. 법이 윤리고 도덕이다. 언제부터? 검찰이 그리 주장하고 판사가 그리 판결했다고 그것을 반드시 옳다 말할 수 있는가.

 

김기택이 문광을 박사장 집에서 내쫓았던 것처럼, 그래서 쫓겨난 문광이 살기 위해 박사장 집으로 다시 찾아온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돈인 것이다. 그러나 그 돈으로도 성기훈은 끝내 자기 어머니를 구하지 못했다. 새벽의 동생을 구하고 조상우의 어머니를 구한 것은 같은 약자였던 성기훈의 인정이었다. 더구나 그 성기훈조차 살아남는데는 주최자인 일남의 인정과 관용을 등에 업지 않으면 안되었다. 너무나 적나라하지 않은가. 승자가 되라. 승자가 되면 모든 걸 할 수 있다. 부모님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어린 시절 가르침처럼. 신랄한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