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역사에서 실제 금이 화폐로써 기능했던 시기는 얼마나 될까? 실제 거래에서 금을 결제수단으로 사용했던 기간을 말하는 것이다. 아니면 은은 어떨까? 그러면 어째서 현재 세계의 나라들은 금이나 은과 같은 현물화폐가 아닌 신용화폐를 쓰게 된 것일까?


아마 은본위제를 운용했다는 근세의 중국에서도 대부분의 서민들은 은자같은 건 평생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물론 유럽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동전이 쓰였다. 아무래도 구리라면 은보다는 쉽게 구할 수 있을 테니까. 지금도 흔히 쓰는 '푼'이 은 1냥에 대한 동전의 가치를 가리킨다. 은 한 냥이 동전 100문에서 최대 400문까지 올라갔었다. 그만큼 은이 귀했다는 이야기다. 그나마도 조선에서는 구리조차 희귀해서 동전의 무게를 줄여야 했었다.


경제가 성장하면 당연히 시장거래는 활발해진다. 그만큼 더 많은 화폐를 필요하게 된다. 그런데 항상 그만큼의 금과 은을 시장에 공급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유럽의 봉건영주들이 몰락했었다. 상인들로부터 사치품을 구입하려면 금이 필요한데 정작 금이 귀해지면서 영지에서 생산된 작물로 구할 수 있는 금의 양은 갈수록 적어지기만 했었다. 신대륙으로부터 유입된 금이 아니었다면 유럽의 화폐경제는 어쩌면 그 순간 이미 절딴났다. 일본의 은광이 고갈되자 이번에는 멕시코에서 대규모 은광이 개발되며 겨우 동아시아에서 은은 결제수단으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어째서 세계경제는 주기적으로 공황을 겪어야만 했었는가. 결국 금이나 은과 같은 귀금속이 화폐로써 기능할 수 있었던 이유인 희소성으로 인해 경제상황의 변화에 따른 탄력성과 유연성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 많은 금이 필요한데 그만큼의 금을 아무데서나 채굴할 수 있을 것인가. 더 많은 은이 필요한데 원한다고 그만큼의 은이 시장에 공급될 수 있을 것인가. 시장과 화폐와의 괴리가 결국 시장을 교란시키고 끝내는 시장 자체를 붕괴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신용화폐인 것이다. 무엇보다 신용화폐인 달러가 기축통화로써 금을 대신해 통용되기 시작한 이유인 것이다. 아직까지도 금이 기축통화로 쓰이고 있었다면 과연 지금의 화폐경제는 그동안의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화폐의 정의와 유통을 국가로부터 독립하여 시장에서 개인이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에 선뜻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무려 수천년에 걸친 실험이었다. 그리고 금과 은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되었다. 금이 시장에서 실제 화폐로써 쓰인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하긴 그동안 인류가 제련해서 쓴 금의 절대량 자체가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다. 은도 역시 그동안의 비약적인 경제성장에 비하면 아주 적은 양만이 실제 생산되고 거래에 쓰이고 있었다. 하물며 경제가 성장하면 그만큼 더 많은 화폐를 필요로 할 텐데 제한된 방식의 채굴에 의존해 공급해야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심지어 갈수록 채굴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과 노력은 비약적으로 더 커지게 된다. 가상화폐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화폐는 지속적으로 가치를 유지하는 정도를 넘어 가치가 상승하도록 되어 있다. 더 비싸지도록 되어 있다. 왜 문제인가는 바로 윗글을 보면 된다.


'썰전'에서 유시민 작가가 가상화폐 개발자들이 엔지니어이지 화폐전문가는 아니었을 것이라 지적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팽창하는 풍선과 같은 것이다. 풍선은 곧 경제다. 풍선 안의 공기는 화폐다. 화폐의 양이 일정하다. 화폐의 가치가 일정하다. 그런데 풍선만 부풀고 있다.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가능하더라도 얼마나 유지될 수 있겠는가. 풍선이 부푸는 만큼 새로운 공기를 주입해서 풍선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팽창할 수 있다. 물론 경제상황이 변하면 시장에 유통되는 화폐의 양을 줄여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역시 발행권자가 책임지고 결정해야 할 부분이다. 시장은 만능이 아니다. 특히 화폐는 시장에만 맡겨놓을 수 없다.


블록체인은 상당히 쓸모있는 기술이겠구나 인정하면서도 가상화폐의 채굴방식에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이다. 더구나 소수의 거대자본이 이미 가상화폐의 채굴 자체를 대부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에서 괜히 경제상황을 바꾸겠다고 화폐의 가치를 조금만 건드려도 큰 혼란이 빚어지는 것이 실제 현실이다. 하물며 가상화폐 자체를 다수 보유한 개인들에게는 더 큰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동기부터 분명하다. 특히 많은 가상화폐 개발자들이 개발단계에서 이미 다수의 가상화폐를 자신이 미리 선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얼마나 화폐로써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난리쳐도 가상화폐에 회의적인 - 심지어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단지 투기수단 이상으로는 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화폐로서는 너무 결격사유가 많다.


하도 가상화폐를 금이나 은과 비교하는 주장들이 많기에. 화폐의 정의와 유통마저 시장에서 개인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장점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어째서 각 개인이나 기관 등에서 자유롭게 발행하던 화폐를 정부가 독점적으로 발행하고 관리하게 되었는가. 어째서 금과 은이 아닌 정부의 신용에 기반한 화폐가 지배적으로 유통되기에 이르렀는가. 화폐의 역사이기도 하다.


블록체인 기술이 실제 현실에서 쓰이게 되더라도 지금과는 다른 형태일 것이다. 기존의 가상화폐와는 다른 새로운 공인된 형태의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책임은 역시나 다시 정부에게 지워지기 쉽다. 역사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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