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밀복검, 소리장도는 비단 개인과 개인 사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집단과 집단, 국가와 국가 사이에도 중요하게, 오히려 미덕으로 장려되어야 할 태도다.

 

미운 아이일수록 떡 하나를 더 준다. 상대가 원수라면 더 웃어주어야 하고, 증오스러운 적이라면 더 기꺼이 품을 내어 주어야 한다. 당장 오늘 저녁 죽여야 하는 적이라면 더욱 당장 지갑을 열어 성대하게 식사도 대접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미워하는 마음을 들키지 않을 수 있다. 적대하는 태도 또한 감츨 수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최대한 저항없이 아무런 방해없이 자신의 의도하는대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미워하는 감정을 알아차리면 상대도 나를 미워하게 된다. 내가 적대하는 것을 알게 되면 상대도 나를 적대하게 된다. 내가 등뒤로 칼을 숨기고 있는 것을 안다면 상대도 역시 등뒤에 칼을 감추려 하게 된다. 그리고 심지어 내가 칼을 꺼내기 전에 먼저 휘두르려 할 지도 모른다. 예방전쟁이란 것이다. 하도 죽이겠다 죽이겠다 설치니 그냥 내가 살기 위해 먼저 죽이고 본다. 역사상 그런 예가 수도 없이 많았다. 죽지 않기 위해 먼저 꺼내 휘두른 칼에 오히려 강자가 죽고 실세가 무너지며 상황이 뒤바뀌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죽이려 한다면 행동에 옮기기 직전까지 죽이려는 의도를 철저히 감출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오히려 친절한 웃음으로, 여유로운 태도로, 아끼지 않고 베푸는 행동으로, 그리고 한 순간에 상대가 알아차릴 사이도 없이 바로 급소부터 쳐야 하는 것이다. 머리를 자르고 나면 손발은 허둥대기만 할 뿐이다.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전쟁할 의도가 없다. 절대 평화를 원한다. 그러면서 전쟁을 준비한다. 진짜 전쟁을 하려 한다면 철저히 평화로써 자신의 의도를 감춘 뒤 한 순간에 전력을 쏟아부어 상대의 의지와 역량을 꺾어야 하는 것이다. 2차세계대전 초기 소련이 독일의 공격에 어이없이 무너진 이유였다. 이전까지 불가침협정을 맺고 폴란드를 나눠가지며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 왔기에 독일의 공격에 소련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대부분 주력을 잃은채 지리멸렬해야 했었다. 그럼에도 한 번에 목줄을 끊지 못한 결과 독일은 소련의 역공을 받고 그대로 패망하고 말았었다.

 

반대로 태평양전쟁 직전 미국은 계속해서 중국을 침략하고 동남아를 공격하는 일본을 외교적으로 압박하면서도 정작 전쟁준비에는 소홀하고 있었다. 입에는 꿀을 물고 등뒤에는 칼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는 칼을 물었으면서 등뒤로는 꿀을 숨기는 정반대의 행동을 했던 것이었다. 그 결과가 하마트면 태평양의 주도권을 잃을 뻔한 진주만 기습이었고, 미드웨이에저의 위험한 해전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미국이 일본의 무전을 해독하지 못했다면 자칫 미드웨이 해전은 미국의 지리멸렬한 패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그것이 전쟁이란 것이다. 내가 진짜 전쟁을 일으키려 해도 실제 전쟁을 일으키기 전까지는 그 의도를 철저히 감춘 채 자신은 그저 평화롭게 우호적인 관계만을 유지하려 할 뿐임을 상대에게 주지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전차를 개발하면서도 그것을 트랙터라 속이고, 전투기를 만들면서도 정찰기라 우기는 것이 그런 한 예일 것이다. 지금 만드는 것은 전함이 아닌 순양함이다. 구축함 이상의 배수량과 무장을 가지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구축함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전쟁을 하러 군대가 진격을 시작했는데 단지 훈련을 하려는 것일 뿐이다. 전쟁을 하기도 전에 전쟁을 할 것이라 예고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얼마나 멍청한 짓인가. 미리 대비할 틈을 주고, 심지어 선제공격할 명분까지 내어준다.

 

윤석열의 선제타격론이 우스운 이유다. 진짜 선제공격을 하려는 의도라면 그 진의를 먼저 노출시켜서는 안된다. 감추고 감추고 또 감추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나 내보여야 한다. 그러면서 그 동안에는 철저히 웃음으로 자신을 가리며 등뒤로 준비를 갖춰야 한다. 민주정부와 수구정부의 차이다. 민주정부야 말로 앞으로는 평화를 외치면서 뒤로는 더욱 철저하게 군비를 갖춰 온 주체들이었다. 반면 수구정부는 입으로는 전쟁을 말하면서도 군사력을 사유화하는데만 급급했었다. 진짜 전쟁할 의도가 없기에 전쟁준비에는 소홀하면서 끊임없이 전쟁을 외치며 위기감만 고조시킨다. 하긴 그래서 20대 남성들이 윤석열을 지지하는 것이기도 할 터다. 어차피 수구정권은 전쟁을 일으킬 깜냥도 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아니 이재명 정부가 수구정부보다 어쩌면 북한에 더 위협적일 수 있다 여기는 이유다. 이들은 실제 필요하다면 군사적인 선제공격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 이들이다. 그만한 명분과 정당성을 충분히 가지고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주체들이다. 평화를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공존을 외쳐왔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에 하나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그 책임은 온전히 북한에 있는 것이다. 반면 수구정권은 오히려 그런 의도들을 사전에 노출시킴으로써 불필요한 견제와 제어를 받기 십상이다. 이승만이 그랬었다. 북진통일은 외치다가 오히려 미국의 군사지원이 끊기고 심지어 미군 자체가 철수하는 상황을 맞아야 했었다. 그 직전까지 북한은 철저히 통일만을 외치고 있었다. 준비없는 전쟁주장이 얼마나 의미없고 위험하기까지 한 것인가는 이승만의 예가 잘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전쟁을 하려 하는가? 그러면 웃으라. 침략하려면 더욱 웃어야 하고, 공격하려면 더욱 몸을 낮춰야 하는 것이다. 오히려 지갑을 열어 내 것을 내누는 비굴함을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입으로만 떠드는 전쟁은 오히려 더 위험하고 치명적이다.

 

무엇이 안보인가? 무엇이 국방인가? 평화까지 가지도 않는다. 그래서 군사적으로 승리하려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 기본이 안 되어 있다. 그게 저쪽 수준이기도 하다. 한심하지도 않다. 그냥 역겨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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