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유시민이 방송에 나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딸이 아마 특목고를 나온 것 같은데 언젠가 자기에게 그런 말을 하더란다. 특목고 다니니 너무 좋다. 이 좋은 것을 다른 학생들도 누릴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 아마 그래서 유시민 이사장의 딸이 진보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벌써 수 십 년 전 민주화세대들이 목숨걸고 하던 일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대학진학률도 그리 높지 않았던 터라 출석과 학점관리만 대충 신경써도 졸업해서 대기업입사는 그냥 맡아놓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심지어 서울대며 연고대 등 이른바 명문대 출신들조차 대학을 뒤로하고 일부러 기술까지 배워가며 스스로 공돌이 공순이가 되고 있었다. 그러다 걸리면 호적에 빨간줄 그어지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은 포기해야 하는 위험을 무릅써가며 그들은 그렇게 남들 다 꺼려하는 공장으로 달여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왜? 노동자들 역시 자신들에게 보장된 이상의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했으니까. 그를 위해서 기꺼이 자신이 위험을 무릅쓰고 희생을 감수하겠다.

 

즉 뭐냐면 당시 세대들에게 공정이란 대학진학여부와 상관없이, 더구나 지금 하는 일과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권이 지켜지도록 하는 것을 의미했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 다 부러워하는 명문대를 뒤로 하고 보장된 미래마저 포기해가며 기꺼이 자기보다 약하고 소외받는 이들을 위해 어려운 길을 가려 했던 것이었다. 자기가 아는, 심지어 대한민국의 법에조차 규정되어 있는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이들 또한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당연히 당시의 그들이었다면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데 누군가는 정규직이고 누군가는 비정규직이라면 당연히 비정규직 역시 정규직인 자신들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투쟁했을 것이었다. 특목고와 자사고를 없애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 역시 그런 의도에서 제기된 것이었다. 특목고와 자사고를 특별한 지위에 남겨두기보다 다른 일반 공교육과정을 그에 준할 수 있도록 개혁하자. 공교육강화란 정책방향은 그를 가리키는 것이다.

 

반면 최근 몇 년 간 젊은 세대들이 주장하는 공정은 이와 약간 다르다. 과외 받아서 성적 좋아도 그 또한 자기가 노력한 결과란 것이다. 입시명문고에서 입시와 관련한 최고의 교육과 관리를 받아가며 보다 좋은 성적으로 다른 학생들을 이기고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면 그 또한 자신의 실력이라 여겨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 것이 옳다. 아니 심지어 이들 입시명문고들조차 입시명문고가 되기 위해 그동안 투자하고 노력해 온 과정들이 있을 것이니 그에 대해서도 인정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그런 입시명문고에 들어가기 위해 전부터 투자하고 노력해 온 시간들에 대한 보상도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전형은 불공정한 것이다. 농어촌 출신 학생도, 당장 끼니도 잇기 어려운 처지의 학생도 저들과 대등하게 경쟁해서 이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개천의 용을 말하는 게 참 우습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 진짜 환경의 차이에도 대등하게 경쟁해서 이긴 사람이 있으면 그는 진짜 용이라 할 만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좋은 직업 가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 온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 다 참아가며 오로지 공부만 하면서 좋은 대학 들어가고 졸업하고 나서 좋은 직업 가지게 될 순간만을 바라보며 그토록 악착같이 노력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대학생과 대학진학 못한 사람들에 차이를 두어야 하고, 같은 대학생이라도 명문대생과 지방대생 사이에 차이를 두어야 한다. 졸업 이후 선택하게 될 직업에 대해서도 차이를 두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러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려고 그토록 필사적으로 악착같이 그 고통의 시간들을 견뎌왔다. 즉 특목고 다녔더니 너무 좋아서 이런 좋은 곳은 나처럼 노력한 사람들만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저들의 공정인 것이다. 왜 경쟁의 결과인데 이 좋은 특목고 자사고를 없애려 하는 것인가.

 

그러니까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같아지면 안되는 것이다. 보안원, 미화원, 시설관리원들이 자신들과 같은 정규직이란 신분을 가지게 되면 안되는 것이다. 저들은 영원히 비정규직이어야 하고 사회적으로 차별받음으로써 자신들이 노력한 보답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자신들이 그동안 그토록 노력하지 않았다면 분명 저들과 같이 되었을 것이다. 다행으로 여기며 성취감과 보람까지 느낀다. 그런데 자신들과 달리 노력을 않은 그들이 자신들과 같은 정규직으로서 상당한 대우까지 받게 되면 그 성취감과 보람이 약해지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안된다. 결국 하는 일도 어차피 같고, 급여나 대우도 상당한 차이가 날 것임에도 그 작은 개선조차도 자신들의 노력을 부정하는 것이라 용납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만일 지금 대학생들더러 사회정의를 위해 학생운동을 하라면 사용자의 편에 서서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편에 서지 않을까. 생산직 노동자들이 고통받는 것이야 말로 사무직이 되기 위해 노력한 학생들을 위한 정의실현일 것이다.

 

그래서 오보임이 확실해진 상황에서도 뉴스1 기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연봉이 5천만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연봉 오르고 정규직이 된 만큼 대우 좋아지는 것은 사실인 것이다. 자기는 이렇게 노력해서 기자씩이나 되었는데. 고작 고졸에 특수경비교육 조금 받은 놈들이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이 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그래서 한 편으로 경향일보 역시 대졸들이 의외로 많다면서 편을 들어주기도 했던 것이었다. 대학생이 많다면 그 정도 대우를 해주어도 문제가 아니다. 

 

그 연장에서 지금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태도를 이해하면 너무 쉽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돈 많으면 돈 많은대로 자유롭게 의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다. 대놓고 말은 않는데 현행 건강보험정책이나 수가체계에 대한 저들의 발언을 보면 영리병원과 건강보험체계의 붕괴를 바라고 있는 듯하다. 자기도 실력이 되면 돈 많은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돈을 받고 의사질하고 싶다. 자기가 노력해온 시간들을 생각할 때 그것이 정의다. 가난하고 불평만 많은 저 무지렁이들을 위해 스트레스받는 건 정의가 아니다.

 

의사가 아니면서 의사들을 지지하는 이른바 청년세대들의 논리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부터 인천국제공항 논란과 닮아 있다 이야기한 것이다. 지역사회에서 일할 의사들을 뽑는데 그마저도 점수로 줄세워 뽑으라. 공공분야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할 의사들을 가르치겠다는데 그 또한 점수로 줄세워서 뽑아야 한다. 수가만 올려주면 자기는 아지겠지만 누군가 내려가는 사람이 있겠지. 자기 말고 다른 의사란 이유에서 은퇴한 의사를 이야기한 것이고. 나는 내 권리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 사회의 정의와 공정에 부합한다.

 

현정부의 공정성에 대해 청년세대들이 불만을 가지는 이유인 것이다. 공정의 기준이 바뀌었다. 청년세대들에게 공정이란 줄세우는 공정이다. 현정부의 주류들에게 공정이란 그 줄을 없애는 공정이다. 반발이 없을 수 없다. 서로 보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모두 다르다. 새삼 확인하는 부분이다. 시대가 바뀌고 사람도 바뀌었다. 어찌 판단하든 자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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