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정경심 교수가 부동산투기에 손을 대서 아파트도 몇 채 가지고 있었으면 인권위가 그런 판단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주의자들의 인권이란 그같은 자기 직분에 충실한 사람들만을 위한 인권일 테니.

 

인권의 정의가 바뀌었다. 그동안 검찰수사에 대해 인권이란 측면에서 비판해 온 부분들이 있었다. 지나치게 불필요한 주변인들까지 소환해서 상관없는 별건들까지 헤집으며 사실상 협박에 가깝게 권위를 앞세운 강압수사를 하고 있다. 심지어 구속에 대해서도 피의자의 방어권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최소한으로 제약할 것을 많은 인권전문가들이 지적한 바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인권위는 주장한다. 검찰은 그래도 된다.

 

인권에 대한 아주 오랜 논리 가운데 하나다. 사람의 인권은 모두 같지 않다. 사람마다 인권은 차등을 두어야 한다. 인권을최대한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과 최소한으로만 보호되어야 하는 사람이 따로 존재한다. 그리고 더욱 여성주의자들은 같은 인간 안에서 여성이라는 차별을 두고, 여성 안에서도 노동자와 자산가, 전문직의 차별을 둔다. 물론 남성 안에서도 그렇다. 그런 점에서 끈떨어진 연 신세인 정경심 교수의 인권이야 돌아볼 필요가 있는가. 무엇보다 그렇게 몰아간 주체가 자신들이 그토록 추종하는 주류기득권 남성인 것이다.

 

국민의힘의 성추행, 성희롱, 성폭행은 범죄조차 아니다.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행위조차 아니다. 그동안 여성주의자들이 일관되게 보여 온 행보였다. 지금 인권위의 판단은 다른가.

 

뒤늦게서야 동의하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는 참사를 넘어섰다. 특히 여성주의자들에 대한 인사는... 아니 좋은 점도 있다. 기자들과 같다. 좋은 여성주의자는 죽은 여성주의자 뿐이다. 인권의 개념마저 이렇게 오염시킨다.

 

원래 여성주의 자체가 인권과는 상관없는 친일, 친독재, 친기득권의, 기득권 남성에 빌붙는 기득권 유한부인들의 취미생활에서 출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달라진 것이 없다. 새삼 확인한다. 인권이 죽었다. 빌어먹을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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