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프랑스 국왕이 파리에 갇혀 지낸 적이 있었다. 왕이 되기 위해 여기저기 영지도 떼주고 하다 보니 정작 남은 영지라는 게 프랑스 국왕에게 속한 파리 정도만 남았던 때문이었다. 중세유럽의 봉건제도에서 왕이 신하인 영주들을 방문하는 것조차 철저히 봉건계약 아래 이루어지고 있었다. 왕이 영지를 내리고 영주로 임명한 대가로 영주는 어떤 식으로 왕에게 충성해야 하는가. 왕이 전쟁을 하기 위해 영주들에게 병력을 요구할 때도, 왕이 영지를 방문하여 영주를 만날 때도 영주가 어떻게 왕의 요구에 응해야 하는가 하는 내용들이 세세하게 계약에 명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딱 여기까지가 영지의 대가로 영주가 왕에게 바쳐야 할 충성의 내용들이며 그 이상 다른 것들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의무에 없는 국왕의 방문에 대해서는, 아니 아예 국왕이 영지를 지나가는 것마저 왕은 자신의 권리로써 막을 수 있었다.

 

바로 봉건사회가 가지는 특징인 것이다. 아직 중앙집권이 강화되기 전 국왕의 힘이 영주들을 압도하지 못했을 때 정작 왕의 신하인 영주들은 정해진 의무만 다하면 나머지는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되는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영주들에게 중요한 돈줄이던 도시들에서는 시민들이 영주에게 상당한 돈을 지불하고 자치권을 사는 경우마저 있었다. 영주는 그냥 도시의 주인일 뿐 자치를 허락받은 이상 도시의 모든 것은 도시의 유력자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같은 계약의 결과로 영주가 자신의 영지인 도시 안에서 출입을 제한받는 경우마저 있었다. 그래도 되었던 이유는 충성이 아닌 세금을 대가로 그러도록 영주 자신이 허락했기 때문이었다.

 

세키가하라 당시 동군의 편에서 참전했던 시마즈 요시히로에 대해 시마즈가에 책임을 물을 수 없었던 이유도 시마즈 요시히로가 시마즈가의 병력이 아닌 자신이 개인적으로 거느린 병사들만으로 참전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세키가하라 자체가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권력의 공백이 생기자 가신들이 이시다 미쓰나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편으로 서로 나뉘어 내전을 벌인 것이었다. 명목상 당시까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쿠가와에 충성을 맹새한 가신의 입장이었었다. 조정의 신하가 아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 개인에게 복종을 약속한 영주들이었던 것이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도 그렇게 오다 노부나가 사후 분열된 가신들을 힘으로 제압하여 오다 노부나가가 이룬 패권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던 것이었다. 당연히 도쿠가와 이에야스나 토요토미 히데요시처럼 자신이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으면 힘으로 영주들을 통제할 수 있었지만 아니라면 영주들이 날뛰는 꼬라지를 그냥 보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살아있을 때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얼마나 죽이고 싶어했을까.

 

검찰총장으로 임명했으니 검찰은 네가 마음대로 해라. 몇 가지 시키는 일만 하면 검찰총장으로서 뭘 어떻게 하든 아무 신경도 쓰지 않겠다.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이 그랬었다. 명분없이 권력을 쥐다 보니 각 핵심기관들의 자발적인 충성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그만한 대가를 약속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군사독재정권 시절 정부 부처들은 어느때보다 부정부패가 심했었다. 뒷돈 없이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할 정도로 위나 아래나 아예 대놓고 돈 받아먹던 시절이었었다. 괜히 건드렸다가 검찰이나 경찰이나 행정부나 반발이라도 하게 되면 권력에 균열이 생기게 될 테니까. 그러나 민주정부 아닌가. 국민에 의해 선출되어 권력을 위임받은 정당한 정부인 것이다. 그래서 김영삼 이래 그런 부정과 비리가 많이 사라진 것이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돈 받아 쳐먹는 부패한 공무원이 아닌 바로 국민이다.

 

진짜 봉건시대에 사는 모양이다. 진모씨나, 진보 혹은 보수를 자처하는 대부분 지식인들이나, 언론이나, 그리고 심지어 검찰총장까지. 중앙집권이 봉건제와 다른 하나는 루이14세가 말한 대로 공작이든 백작이든 판서든 정승이든 왕 마음대로라는 것이다. 지역에 땅이 얼마가 있고, 몇 대 째 영향력을 행사해 왔든 왕명 하나면 다 끝나는 것이다. 왕이 임명했으면 천한 노비 출신이라도 대대로 명문인 지역유지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이고, 왕이 명령을 내리면 학자로서 이름높은 명사라도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서부터가 문민통제의 시작이다. 그리고 그런 절대적인 왕권이 국민주권으로 바뀌면서 국민에 의해 모든 공직이 임명되고 국민이 위임한 바에 따라 권한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국방부장관을 반드시 군인출신으로 임명해야 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매우 드물다. 문민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나라라면 민간인 출신의 장관과 대통령, 국회의원들에 의해 국민의 요구에 최대한 부응하는 방향으로 모든 정책이 결정된다. 검찰은 다를까? 반드시 검찰 출신이 장관이 되고, 검찰총장이 장관을 넘어서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발상은 어디서 나오는가. 검찰 조직 내에서 승진한 검찰총장이고,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이다. 누가 더 높은가?

 

그러니까 주권자인 국민을 존중한다면 국민을 대상으로 언론플레이하기 전에 국민이 선출한 권력인 대통령과 그가 임명한 장관부터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장관의 신분과 지위와 권한은 모두 국민의 주권이 인정한 바인 것이다. 시험 잘봐서 검사가 되었다고 검사 내부에서 승진하여 올라간 검찰총장과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국민의 주권으로 인정한 장관의 지휘를 검찰총장은 따라야 하는 것이다. 전문가니까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라면 재경부도 그냥 하자는대로 내버려둘까? 경찰은 어떨까? 군은? 군도 쿠데타를 일으키든 말든 하자는대로 지켜만 볼까? 검찰 역시 문민통제의 대상인 것이다. 그리고 통제의 주체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선출된 권력이어야 하는 것이다. 대신 선출된 권력은 선거를 통해 자신들의 행동에 따른 심판을 받게 된다. 그래서 잘했는가? 못했는가?

 

검찰의 독립성이 자기들 하고 싶은대로 마음대로 해도 되는 독립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언제부터 진보의 이념이 검찰국가가 되는 것이었는지 그래서 의문을 가지게 된다. 어째서 자칭 진보들이 한결같이 나서서 윤석열 검찰의 폭주를 옹호하고 지지하는 것인가. 군인만 아니면 된다. 정확히 그동안 자칭 진보진영에서 민주화세대를 끊임없이 부정해 온 이유와 맥락이 닿아 있을 것이다. 군사독재의 반댓말을 혹시나 엘리트독재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좋은 대학 나오고 그동안 활동과 실적으로 그 실력을 입증한 이상 실력있는 이들에 의한 이상사회야 말로 공익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동안 경험한 자칭진보들의 태도들로 봤을 때 전혀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란 것이 더 어이없을 뿐이다. 어차피 신포도일 뿐이니 선출된 권력보다 실력을 인정받은 엘리트권력이 가치가 있다. 재미있는 생각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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