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3년 전이다. 3년 전 이맘 때 갑자기 실직자가 되어 구직에 나서고 있었다. 암담했었다. 이것저것 고정으로 나가는 돈이 적지 않은데 어지간해서 그만한 수입을 기대할만한 일자리가 그리 쉽게 찾아지지 않더라는 것이다. 당시 몸상태도 영 아니었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집 가까운 곳에 경력도 되지 않을 일을 찾아서 겨우 3년을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느꼈다. 최저임금인상으로 어느새 고정지출을 모두 감당하고도 저축이 가능해지는 마법같은 현실을.

 

바로 며칠 전에도 썼을 것이다. 3년 동안 열심히 운동한 결과 어지간한 젊은 친구들보다 근력이나 체력에서 우위에 있다는 자신도 생겼다. 아무리 20대라고 데드리프트 스쿼트 100kg씩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친구들은 당연히 내가 만만하게 구할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닌 더 좋은 곳을 찾아가게 마련인 것이다. 그렇게 3년 전과는 다른 자신감으로 구인사이트 뒤져보니 확실히 세상이 달라진 것을 느낀다. 급여에 대한 기대를 조금만 낮춰도 고정지출 다 감당하면서 생활도 크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임금을 보장해주는 일자리가 이렇게나 많다. 3년 전에는 비슷한 일자리가 있어도 돈이 되지 않고 체력에 자신이 없어 그냥 넘어갔던 일자리들이다.

 

가만 보면 돈 좀 있다는 놈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보는 인식이란 상당히 평면적인 경우가 많다. 가난한 사람들은 돈 좀 적게 받아도 아무 일이나 할 수 있으면 고맙게 여길 것이다. 마치 가난한 사람은 선량하고 가난한 집일수록 정이 넘친다는 편견과도 많이 닮았을 것이다. 가난한데 어떻게 선량할 수 있는가. 가난한데 어떻게 정이 넘칠 수 있는가. 그리고 가난하기 때문에 그만큼 돈도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있는 집 자식들이야 시급 6천원에 주 16시간 아르바이트하면서도 용돈이나 벌어 쓰면 그만이겠지만 없는 집 자식들은 시급 8천 원으로도 주 40시간 다 채우고도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것이다. 같은 시간을 일하고도 받는 돈이 더 많다면 그만큼 그 시간을 다른 일에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가난하면 시간도 필요없는 것일까?

 

내가 지난 3년 동안 꾸준히 운동하며 체력을 단련해 올 수 있었던 것도 근로시간 단축으로 칼퇴근 이후 자유시간이 늘어난 것이 큰 역할을 했었다. 돈을 얼마간 덜 받더라도 정해진 시간에 확실하게 쉴 수 있다면 그만큼 자신을 위해 더 많은 것들을 투자할 수 있게 된다. 돈을 더 벌고 싶으면 일을 하나 더 해도 되는 것이고, 조금 더 자신을 위해 투자하고 싶다면 그리 하면 되는 것이다. 가난한 집일수록 가족끼리 얼굴을 자주 보는 자체가 그만큼 현실이 고단하다는 의미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달 내내 일해도 먹고 살 정도가 되지 못하는데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할 시간에 좁은 집구석에서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뒹굴거리고 있어야 한다. 좋아질래야 좋아질 수가 없다. 좀 더 적은 시간만 일해도 먹고 살 만한 정도를 넘어서 어느 정도 여유까지 즐길 수 있다면 소세지에 필라이트라도 사다가 허튼 시간도 함께 보낼 수 있는 것 아닌가.

 

최저임금에 바로 영향을 받는 삶을 살고 있는 입장에서 바로 느끼는 부분인 것이다. 그런 삶을 살지 않는 놈들은 정작 그런 것을 알지 못한다. 가난한 사람들이니 임금이 적더라도 아무일이나 할 수 있으면 좋은 것이다. 어차피 여유도 없는 사람들이니 더 오랜 시간 일해서 돈이라도 더 벌 수 있으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그러니까 최저임금은 줄이고 근로시간은 늘리라. 그래서 내 몸이 3년 전 그렇게 망가졌던 것이었다. 고관절과 무릎은 굽혀지지 않고, 어깨는 굽어 제대로 기지개도 켤 수 없고, 목은 뻣뻣하고 머리는 항상 아프다. 조금만 무리해도 바로 피로가 머리를 짓눌러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하긴 지난 3년 동안의 피로가 몰려오며 요즘 내 상태가 그때 비슷해지기는 했다. 가난하니까 그런 삶도 감지덕지해야 한다. 내가 자칭진보 새끼들 싫어하는 또 하나 이유다. 더럽게 집안들이 좋다. 돈도 많고.

 

아무튼 오랜만에 또 포털에서 개소리를 보고 말았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컵라면도 못 먹게 될 것이다. 컵라면이 아니라 편의점 도시락이라도 꼬박꼬박 챙겨 먹을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집에서 직접 요리도 해서 먹을 수 있으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인간이 존엄한 존재라면 그 존엄을 지키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냥 아무거라도 먹을 수 있고 입을 수 있고 몸을 누일 공간만 있어도 사람이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바로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노동가치란 것이다. 그래서 과연 개인이 자신의 노동력으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장담하건데 가난한 사람은 아무거라도 해서 하찮고 비루한 삶이라도 연명할 수 있어야 한다 주장하는 대부분은 가난이란 것이 뭔지 모르는 놈들일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용직 노동자에게 비가 와서 공치는 날이란 벌이가 없어 아쉬우면서도 소중한 휴식의 시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직접 느껴보지 못하면 모르는 것이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과연 무엇이 바뀌었는가. 나 자신이나, 내가 일자리를 구하고자 하는 세상이나. 역시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을 그만두기 직전 스쿼트 100kg으로 5x5세트에 성공하고 데드리프트는 3x1에 성공한 것이 이렇게 자신감의 원천이 되어 준다. 이제와서 대단한 일자리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고양이놈 외롭지 않게 집을 오래 비우지 않아도 되는 정도면 나로서는 만족이다. 덕분에 오랜동안 묵혀뒀던 자격증이 쓸모가 생길 모양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아 버렸는데 다행히 갱신이 필요없다니 재발급만 받으면 된다. 역시 힘이 제법 필요한 일이기에 다행이라 여긴다.

 

도대체 사람이 일을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일을 해서 돈을 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 것인가. 그러므로 사람은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철학의 부재다. 현실과의 괴리다. 그래도 오래전에는 가난한 이들과 함께 어울리며 그들의 삶을 직접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경로가 적지 않았었다. 자칭 진보가 주장하는 약자를 위한 정책들이 어째서 그처럼 공허하게만 들리는 것인가. 지성의 소멸이다. 멸망이거나. 현실이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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