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를 보면 장비를 평가하면서 관우와 더불어 만인적이라 일컬으며 그와 버금간다 기술하고 있다. 버금간다는 것은 비슷하지만 그보다 조금 못미친다는 뜻이다. 장수로서 장비가 보인 빼어난 용력을 평가하면서 그 기준으로 관우를 인용한다. 반대로 관우의 용력을 평가하면서 장비를 비교대상으로 삼아 그보다 낫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충용무쌍의 관우는 단 한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평가할 때 그 기준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 최소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인 사실을 담보하고 있어야 한다. 당시 삼국시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용력을 지닌 무장이라면 단연 첫손에 꼽히는 인물이 바로 만인적 관우였다. 곽가, 유엽, 온회, 여몽, 주유, 육손 등 당대의 명사들이 한결같이 관우의 용맹을 높이 평가하며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에 버금가는 것만으로도 장비는 만인지적이 될 수 있었다.


나는 과연 어느 정도의 인물인가. 나의 지적인 수준이나, 역량, 혹은 인망은 과연 누구와 비교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재갈량 사후 많은 책사와 재상들에게 비교대상은 다름아닌 제갈량이 되고 있었다. 제갈량에 버금간다. 제갈량과 비교할 수 있다. 제갈량에 못미친다. 명을 건국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유기가 그래서 자신을 제갈량과 비교하며 했던 말이 바로 전무후무의 유래가 되고 있었다. 굳이 제갈량 정도가 아니라면 자신을 비교하는 것도 크게 의미가 없다. 제갈량 역시 초야에 머물던 시절 스스로를 관중과 악의에 빗대고 있었다. 역시 역사상 최고의 재상이며 장수로 손꼽히는 이들이다.


나는 저 사람보다 낫다. 나는 저 사람에 비해 상당히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다. 내가 저 사람에 비해 나은 점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그렇다면 그 기준이 되는 '저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자신을 알려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곧 자신에 대한 평가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그 사람보다 낫다는 것이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로 여겨질 수 있어야 한다. 너도나도 한 사람을 공격한다. 너나할것없이 한 사람을 목표로 삼아 자신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 누구이겠는가. 그렇게 자신을 사람들에 알리기 위해 이용해야 하는 한 사람이라는 것은.


과연 자기가 이재명보다 낫다고 해서 대선국면에 무슨 대단한 이점이 있겠는가. 사람들이 자기가 이재명보다 훨씬 낫고 이재명과 다른 장점이 있다고 인정해준다 해서 뭐가 그렇게 크게 좋아지고 달라지겠는가. 고작 지지율 3위다. 아니 반기문과 비교해서 그보다 낫다고 해도 그 위에는 문재인이 있다. 반기문과 다른 장점을 모두가 인정해준다 해도 그보다 한참 지지율에서 앞서는 문재인을 넘어서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문재인과 비교해야 한다. 문재인을 통해 평가되어야 한다. 문재인을 통해 자신을 알리고 인정받아야만 한다. 문재인만이 기준이 될 수 있다.


필사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국민들에게는 문재인이라는 이름만이 각인된다. 그 필두에 있는 것이 바로 안철수다. 그리고 이재명. 입만 열면 문재인이다. 마치 자기란 사람은 없는 양 문재인만을 언급하며 그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까지 말하는 대상인 문재인이 그들의 중심에 놓이게 된다. 한두사람이면 모르겠는데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그러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문재인이 모두에게 대세로 인식되어 버린다. 그만큼 강하다. 그만큼 절대적이다. 그렇다고 놔두고 무시하기에는 문재인을 넘어서야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문재인을 지지하는가 반대하는가. 문재인을 선호하는가 혐오하는가.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가 아닌가. 심지어 친문과 반문으로 정계를 개편하려는 시도마저 있었다. 대한민국의 정치는 이제 문재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문재인을 좋아하거나 지지하는 사람들과 문재인을 싫어하고 그를 비토하는 사람들로 정치는 나뉘어져 있다. 이를테면 지금 대한민국 정치는 문재인시대라 해도 좋을 정도다. 문재인으로 시작해서 문재인으로 끝난다.


대선은 거의 의미없어졌다. 오히려 걱정은 민주당 경선이다. 수단이 더럽고 비열하기로만 따지면 민주당이 새누리당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더구나 그 수단이 저열하고 유치해서 뻔히 모두의 눈에 보인다는 것도 문제다. 그런데도 오히려 더 당당하게 목소리를 키울 만큼의 뻔뻔함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경선조차 문재인에 대한 판단과 평가를 묻는 경선이 되기 쉽다. 문재인만이 선거의 중심에 있고 선거의 시작이며 끝일 수 있다.


그나마 문재인이라도 언급해야 기사로 사람들에 알려진다. 하다못해 문재인에게 쌍욕이라도 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그 이름을 기억해준다. 어려운 선거다. 자기를 알리기도 버겁다. 어떻게 문재인을 통해 자신을 알리고 자신을 인정받고 그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문재인을 언급하는 순간 오히려 자신은 잊혀진다. 문재인을 거치지 않으면 다른 후보에 대한 지지여부도 말할 수 있다. 역대급 선거다. 재미있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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