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안철수라는 정치인에 대해 의심을 가지기 시작한 계기는 사실 별 것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안철수라는 인물을 다시 발견했다는 '무릎팍도사' 출연분을 통해서였다.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저런 식으로 말하는 거지?

 

아마 그동안 내가 정치인에 대해 평가하는 것을 보았다면 얼추 눈치챘을 것이다. 어차피 옷차림이나 몸가짐이야 주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글쓰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판단을 빌리라고 따로 참모도 두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말하는 것 만큼은 어쩔 수 없이 길게 숨기거나 속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국에 말을 하는 것은 자신이어야 하는 것이다.

 

얼마나 세심하게 세밀하게 단어를 선택하고 적확하게 사용하여 자신의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하는가. 그만큼 듣는 상대를 배려하면서 최대한 자신의 의사를 오해없이 전달하기 위한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더 많은 다양한 풍부한 어휘와 정교한 사용이 전제되어야 한다. 박근혜가 공주라는 이유다. 아마 정치를 하기 전까지 박근혜는 말도 거의 몇 마디 하지 않으며 대부분 혼자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나경원이 제멋대로 단어의 의미를 정의하며 뻔한 거짓말과 말돌리기를 일상으로 하는 이유 역시 상대가 자신을 거스르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황교안 역시 그렇게 사려깊게 어휘를 선택하고 사용하는 타입으로는 여겨지지 않는다. 역시나 그리 말이 많은 타입은 아니다. 알아서 듣고 알아서 들어야 하는 타입이라 할 수 있다. 

 

언어란 습관이다. 그리고 그 습관은 주위와의 관계를 통해 형성된다. 누구와 어떻게 말하고 무엇을 말하는가. 그에 대해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여기고 있는가. 그래서 말하는 것으로 그 사람의 됨됨이도 알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평소 주위와의 관계에 대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한 편으로 언어란 한 사회, 혹은 한 문명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고도로 거대화되고 복잡화된 사회에서는 그만큼 정교하고 체계적인 언어라 필요하게 된다. 의미를 세분화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시키며 전혀 이해가 없는 타인과도 소통할 수 있도록 해준다.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각각 라틴어와 중국의 한자어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중해세계에서 로마는 가장 크고 강하고 가장 고도화된 문명을 가진 제국이었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중국의 여러 왕조들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진 뒤에도 그들이 이룬 고도의 문명은 남아 다른 민족 다른 문명에게 전해졌다. 굳이 대상을 표현할 어휘를 찾기도 전에 먼저 어휘가 전해지고 대상을 인식하게 되는 경우도 그 과정에서 수도 없이 일어났다. 유럽과 동아시아의 문명은 그같은 라틴어와 한자어의 토대 위에 지금까지 발전해 온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지닌 미국의 영어가 라틴어와 한자어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중이다. 차라리 영어의 표현을 빌리는 것이 자기 언어에서 새로운 표현을 만드는 것보다 빠르고 쉽다. 전달하기도 이해하기도 더 편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문명의 발달정도에 따라 영어로도 대체할 수 없는 표현들이 언어마다 존재한다.

 

얼마나 다양하고 풍부한 어휘를 사용하는가. 얼마나 정교하고 세밀하게 의미의 차이를 이해하고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는가. 얼마나 의미는 적확하게 오해없이 전달될 수 있는가. 그런데 사실 원시사회에서는 그렇게 고도로 발달한 언어체계 같은 것은 그다지 필요치 않을 때가 많다. 세계가 좁고 관계가 단순할 때는 그냥 '그것'이라 말해도 '그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대충 두엇이라 말해도, 얼추 자작하다 표현해도 그 의미를 경험을 통해 얼마든지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고도화된 사회에서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은 명확해야 하고, 둘인지 셋인지, 물은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적시되어야 한다. 선명과 분명과 또렷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다. 명징 역시 굳이 풀어서 쓰는 이상의 의미를 단어 그 자체로서 가진다. 몰라도 상관없지만 알게 되면 더 다양한 상황에서도 더 많은 구체적인 의미들을 전달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문명의 고도화이며 언어의 진화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지성의 발달이다.

 

과연 그렇게까지 고도화된 어휘와 표현들이 필요한가. 물론 필요치 않다. 말한대로 좁은 관계 안에서 관습적으로 대화할 때는 대충 의미만 통하면 알아서 이해하게 된다. 그런 때는 굳이 어휘를 고르고 걸러서 표현하는 자체가 의미없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이에서도 더 구체적이고 더 명확하게 의사를 전달하고자 한다면, 추상적인 의미들까지 더 적확하게 오해없이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많은 더 다양한 더 풍부한 어휘들이 필요하다. 그런 표현들을 찾고 혹은 만들기 위해서 개인은 끊임없이 학습하고 사유하며 궁리해야만 한다. 그래서 또한 언어란 개인의 관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지성까지도 낱낱이 보여준다. 얼마나 많이 아는가 하는 지성이 아닌 그를 위해 노력해 온 과정들인 것이다. 얼마나 일상에서도 사려깊게 대상을 구체화하여 인식하고 전달하려 노력하는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냥 거시기면 거시기다. 머시기면 머시기다. 그것이면 그것이다. 굳이 그렇게까지 어려운 단어들을 써가며 표현해야 하는가. 그러나 그런 단어들이 있기에 의미는 더 명확히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굳이 다른 단어로 대체하기 힘든 그 단어만이 가지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기호적인 선명함을 위해서 반드시 그 단어를 써야 할 필요가 있다.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러면 배우면 된다. 설마 그 글을 쓴 사람은 그 단어를 어디 인던에서 용이라도 잡고서 얻었겠는가. 그래서 있는 것이 사전이고, 굳이 사전이 아니더라도 주위에 물어 그 뜻을 알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알게 된 단어를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다면 다시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명징이라는 단어의 정확한 뜻은 몰라도 대충의 의미조차 모르는 사람이 이리 많다는 사실에 놀라고, 직조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것을 넘어 아예 그런 단어를 쓰는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에 또 놀란다. 물론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아예 알려고도 않고 그런 단어를 쓰는 자체를 비난하는 이들이 이토록 많다는 사실을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당장 나만 해도 글 하나를 쓰며 가장 자주 많이 하는 행동이 포털을 띄우고 사전을 뒤져 내가 쓰고자 하는 단어의 정의를 찾아보는 것이다. 과연 지금 내가 쓰고자 하는 이 내용에서 이 단어를 쓰는 것이 적절한가. 혹시 의미전달에 오해가 있지는 않을까. 굳이 두꺼운 사전을 일일이 뒤지지 않아도 클릭 한 번으로 대부분 단어의 뜻을 찾아볼 수 있는 시대란 것이다. 반지성주의라 불러야 할까? 모르는 것을 넘어 아예 아는 자체를 거부하고 혐오하고 증오한다.

 

사회가 퇴화되고 있는 증거일 것이다. 그보다는 한국사회의 계급화가 상당히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인지 모르겠다. 그런 고도화된 정교한 표현과 단어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었다. 필요로 하지 않는 정도를 넘어 아예 거부한다. 지금 자신들이 쓰는 언어로도 충분하다. 언어의 벽이 생긴다. 더 고도의 언어를 필요로 하고 실제 사용하고 있는 이들과 아예 그를 거부하는 이들 사이의. 너무 쉽게 소통하는 인터넷의 폐해일까. 문장만 조금 길어져도 읽기를 거부하는 쉬운 글쓰기와 읽기의 부작용일까. 설마 이런 논쟁이 벌어질 줄이야.

 

아무튼 중요한 것은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는 노력일 것이다. 당연하게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알고 싶은 충동이고 욕구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지성이다. 교육과정의 문제일까. 일방적으로 주입은 시켜도 스스로 알기 위한 노력을 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왜 알아야 하고 무엇을 위해 배워야 하는지 그것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 것인지. 내가 모르면 모르는 것이다. 모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안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인간의 지성에 대한 부정인 것이다.

 

어쨌거나 그래도 한 나라에서 엘리트라 불리우는 이들의 언어사용을 보면서도 절망은 깊어진다. 무려 전직 판사들이다. 그 어렵다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전직 검사였을 것이다. 언론인도 있다. 말하는 것이 직업이었던 이들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그들이 선택한 어휘들의 천박함은 과연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그냥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어떤 논쟁에 대한 감상일 것이다. 그런 것치고 너무 거창해졌다. 나도 평소에 흔하지는 않더라도 가끔 쓰던 단어가 명징과 직조였을 텐데. 아무튼 재미있다. 인터넷은 확실히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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