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조선시대 양반의 자식이라는 것 말고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누군가 그 양반이라는 신분에 아주 작은 흠집을 낼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미 학문으로도 스승이나 주위로부터 인정받고 대과에도 급제해서 관직의 길이 열린 사람과 분명 다를 것이다. 실제 일제강점기나 지금 미국에서 더 조선인과 유색인종을 멸시하고 차별했던 것은 사회의 하층부를 이루던 이들이었다. 어차피 일본사회에서 상층부를 이루던 이들이나 미국사회를 지배하는 부유한 백인들 입장에서야 이놈이나 저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을 터다.


자기가 판사라는 사실만이 자랑거리인 이들이 있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가르침받아 왔었다. 판검사만 되어라. 사법시험 합격해서 판검사만 되어 봐라. 실제 판검사가 되고 나서도 주위에서 그렇게 떠받들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판사다. 그런데 누군가 그 판사라는 신분에 아주 작은 흠집이나 티끌을 묻히려 한다.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니 나아가 판사를 위한다는 누군가의 선언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될까? 


명예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기가 아는 명예이고 다른 하나는 주위가 알아주는 명예다. 판사로서 자신의 양심을 지키겠다. 판사로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겠다. 그보다는 주위가 자신의 양심과 존엄을 알게 하겠다.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잡는다.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등에 업는다. 그것은 판사의 자존감을 높이는 행위인 것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검찰을 독립시키려는 노무현 대통령의 선택에 대해 검찰이 배신이라고까지 여겼던 이유였었다. 처음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아마 당시 대기업 회장 하나를 구속해서 기소하는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었을 것이다. 철저히 대통령의 수족이 되어 대통령의 지향에 맞추겠다. 그런데 거절당했다. 이후 검찰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가진 악감정이란 그 연장이라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초기 굳이 논란을 무릅써가면서까지 이석렬 검사를 중심으로 검찰 내부에 정부의 목표 가운데 하나인 적폐청산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두었던 이유였다. 검찰을 버리지 않겠다. 검찰과 함께 가겠다. 그러니까 검찰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충실히 따라달라. 검찰의 논리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검찰의 양보를 바란다. 검찰이 자기가 원한 대로 일정한 양보만 해주면, 아니 그 과정에서도 검찰의 목소리를 충실히 들어주겠다. 검찰에도 문재인 대통령과 닿을 수 있는 끈이 아직 남아 있다. 이해하는가? 지금 판사들이 가지는 분노를?


차라리 김명수 대법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밥먹고 사진찍으며 친분을 과시했다면 이렇게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끈떨어진 연이 되었다. 그래도 그동안은 대통령이라는 배경을 두고 사냥개처럼 위세를 떨칠 수 있었는데 김명수 대법원장 아래서는 그마저도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그래서 더욱 양승태를 놓지 못하는 것이다. 그나마 양승태마저 잡혀들어가면 자신들이 판사라는 자부심도 자존감도 모두 쓸려가고 만다. 그래도 한때 권력의 사냥개였던 그 위세등등함을 영영 잃고 만다. 그들이 진정 바라는 것이다. 다시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들을 사냥개로 써주기를. 그저 개처럼 벌레처럼 발밑에 두고 맛있는 고기나 던져주기를. 그래야 세상이 자신들을 두려워 할 테니까. 자신들이 판사란 사실을 우러르며 부러워 할 테니까.


특히 김경수 재판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판결에 대한 판사들의 반응을 보면서 더욱 강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사법농단 관련 수사에 대해 법원이 어떤 태도를 취해 왔었는가. 심지어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그나마 양심적이라던 판사들조차 그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여 왔었는가. 아무리 그래도 판사라는 자신의 이름까지 건드리는 것은 용납지 못하겠다. 누구도 판사라고 하는 자신의 본질을 건드리는 것은 용서하지 못하겠다. 그를 위해 그들은 판사가 되었던 것일 터다. 검사가 검사가 되었던 것처럼. 그야말로 스카이캐슬의 미래버전이라고나 할까? 누가 이런 괴물들을 만들었을까?


여전히 개천에서 용이 나야 한다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사법시험을 부활시켜서 개천의 미꾸라지들도 용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용이 되었다. 스스로 용이라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그 용들이 용이 되어 무엇을 하고 있는가? 판사로서 사회의 정의와 질서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는 최소한의 자각이나 사명감도 없이 그저 판사라고 하는 자신의 명예만을 소중히 여긴다. 자기가 아는 명예가 아닌 남들이 알아주는 명예다. 그를 위해 판사라는 직위마저 수단으로 여기고 만다. 저들은 용이다. 용에게는 용에 어울리는 논리와 대우가 따라야 하는 것이다.


저들이 적폐가 된 이유다. 그러니까 너희는 대통령의 개가 되라.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력의 개가 되어 그만 못한 이들의 위에 서라. 그것을 진정 명예라 여긴다. 자신들을 버린 대통령에게 복수심까지 갖는다. 참여정부의 재판이다. 독립하랬더니 오히려 원망하며 배신감마저 느낀다. 사람취급할 필요도 없는 이유다. 사법농단과 관련해서 그동안 뉴스들을 꼼꼼히 지켜봐 온 결론이다. 판사들에게는 양심이란 없다. 사명감도 없다. 바로 이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정확히 그런 놈들만 판사로 만들었다.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우습게도. 그리고 그것을 더 그리워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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