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하는 말이지만 바보가 되는 쪽이 미친 놈이 되는 것보다 백만 배 정도 낫다. 국회에서 어느 정도 주도권을 가진 상황이라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다당제 아래에서 120석으로 원내 1당임에도 야당이 단합하면 소수정당으로 전락해버리는 아주 곤란한 상황에 놓여 있는 중이다. 그나마 국민적인 높은 지지가 청와대와 여당의 뒤를 받쳐주고 있는데 그마저 사라지만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게 되어 버린다.


물론 김정은과 북한 지배층의 미친 짓으로 말미암아 고통받아야 할 북한주민의 처지를 생각하면 그저 딱하기만 하다. 혹시라도 그로 인해 굶주리지는 않을까. 병에 걸려도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어 목숨을 잃는 경우가 나오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냉정히 말해서 한 다리 건너 남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불과 수 십 년 전까지 같은 민족으로서 정체성을 지켜왔던 우리의 동포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고려인이나 조선족, 자이니치와 같이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는 남의 국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을 책임질 일차적 책임은 우리 정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정부에 있으며, 우리 정부에게도 역시 자국 국민을 우선적으로 책임져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이다. 북한 주민은 그러고 난 다음에 가능한 범위에서 도움을 주어도 주면 된다. 그래서 도움이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그것은 말한 것처럼 정부로서 당연한 의무이고 책임이어야 한다.


먼저 흔들리고 있는 국민의 지지를 다잡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흔들릴 수 있는 여지를 최소화해야 한다. 오로지 지배층의 미친 짓으로 인해 무고하게 고통받아야 하는 북한 주민의 인권을 -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생명권을 지키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의를 베푸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국민의 감정이 보기에 그것은 북한에 대한민국의 재산과 물자가 흘러가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북한이 핵실험으로 대한민국의 안위를 위협하고 있는데 북한에 국민의 세금 가운데 일부가 어찌되었거나 국제기구를 통해 흘러들어간다는 사실을 다수 국민의 감정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긴 그에 대한 여론조사도 있었다. 압도적이었다. 인도적인 지원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이 60%를 넘었다. 그런데도 그런 국민의 여론을 거스르면서까지 북한에 인도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북핵문제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국민의 지지가 떠나면 여당과 청와대에 미래는 없다.


대통령의 선의는 인정한다. 청와대가 나름 어렵게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우려하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청와대생활을 경험해봤기에 문재인 대통령도 알고 있을 것이다. 개인의 선이 반드시 집단의 선과 일치하지 않으며, 개인의 선의가 반드시 선한 결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박성진만 해도 너무 시간을 끌었다. 너무나 많은, 지지자들마저 고개를 젓게 만드는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었다. 그래도 자진사퇴라는 모양새를 취하도록 배려하고 싶었겠지만 당장 박성진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박성진을 그대로 임명강행하면 여론 가운데 일부는 정부로부터 등돌리게 될 것이다. 당장 여당부터 박성진에 대해 등을 돌리고 있었다. 때로는 잔인하게, 야비할 정도로 냉정하고 교활할 정도로 단호하게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있다. 박성진이 그렇고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그렇다. 아무리 문재인 정부가 옳아도 국민적 지지를 잃는 순간 문재인 정부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그런 결과를 문재인 대통령 자신도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다.


바보가 되는 것은 쉽다. 그러면서도 어렵다. 그래서 가치부전이란 말이 나오는 것이다. 차라리 미치기가 더 쉽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해야만 하고, 그 결과를 뻔히 예상하더라도 모른 척 대세에 자신을 맞출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대세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힘을 받아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그때 그 흐름을 바꿀 수 있느냐 없느냐는 얼마나 흐름에 자신을 맞추며 힘을 축적했느냐 달려 있다 보면 된다. 바로 그 기회를 노리기 위해 바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억누르고, 해야만 하는 것들을 숨기며 대중과 웃는 얼굴로 마주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못하면 끝이다. 그러면 역시나 나 또한 문재인 정부를 포기할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하고 무력한 정부에게 더이상 기대를 걸기에는 나의 일상부터 너무 고단하고 분주한 때문이다.


냉정해져야 한다. 독해져야 한다. 가혹해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한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위치에 지워진 숙명이자 저주다. 더이상 자기 좋은대로 좋은 사람으로만 살아갈 수 없는 형극의 길인 것이다. 매 걸음마다 시린 칼날이 밟히고 지나온 길은 피와 눈물로 얼룩진다. 그만한 각오가 없다면 대통령을 해서는 안된다. 무엇을 우선해야 하고 무엇을 가장 두려워해야 하며 무엇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하는가. 물론 대통령이 더 잘 알고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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