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의 천하관은 '대동'이라는 한 마디에 모두 담겨있을 것이다. 마침내 분별이 없어진다. 구분이 없어지고 하나가 된다. 얼핏 공산주의와도 닮아 있다. 민족도 나라도 신분도 가난하고 부유한 것도 없이 모두가 하나가 된다. 있어야 할 곳에 있고 없어야 할 것은 없어진다. 그야말로 동아시아의 이상사회다.


천하는 공물이며 공의에 의해 다스려져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언로를 열어야 하고 뭇선비들이 자유롭게 국정에 대해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 그것은 차라리 사대부들에게 권리라기보다는 책임에 가까웠다. 물러나서는 밭을 갈며 학문을 닦고 기회가 주어지면 조정에 나아가 천하에 자신의 뜻을 펼친다. 사대부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치의 주체다.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사대부들이 엄격하게 자신을 갈고닦아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면 마침내 임금을 바르게 이끌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할 것이다.


처음 미국의 대통령제에 대해 들었을 때 조선의 유학자 가운데 오히려 대동의 실천이라며 반기는 이가 적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하긴 벌써 수백년도 전부터 조선을 건국한 주역 가운데 하나인 정도전에 의해 재상총재제라는 세습군주정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과도적 대안이 구상되기도 했을 것이다. 재상총재란 과거를 통해 등용된 인재 가운데 학식과 덕망을 두루 갖추고 뭇사대부와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한몸에 받는 대단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조야의 천거와 국왕의 발탁에 의해 그같은 인재가 재상총재가 되어서 군주의 단점을 보완하고 바른 정치를 펼쳐 나라를 올바로 이끈다. 그 재상총재를 왕 없이, 그리고 사대부와 백성들 자신의 힘으로 뽑아 국정을 맡기는 것이 대통령제라 이해하면 크게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어차피 전국시대 사람인 맹자조차 왕으로서 자기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일개 필부와 같다면서 역성혁명을 긍정하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었다. 그저 힘으로 왕조를 무너뜨리고 자기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수준이 아니라 왕조를 바꾸는 것마저 천하의 대의 안에 있음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라란 왕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다. 천하란 왕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 뿐만 아니라 사대부에게도 나라를 다스리는 책임이 지워진다. 심지어 청대에 이르면 천하흥망필부유책이라 하여 그저 피지배민에 불과했던 백성들에게도 나라의 장래와 운명에 대한 책임을 지우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왕이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며 과연 누가 나라의 주인인가. 그래서 나타난 것이 사대부였고, 마침내는 백성이었다. 아니 성리학의 이상은 모든 백성을 끝내는 사대부로 만드는 것이었다. 모두가 유가의 가르침을 알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이상적인 나라였다. 그리고 그같은 성리학의 이상을 가장 잘 능동적으로 실천하려 했던 나라가 바로 조선이었다.


어째서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한국의 국민들은 유별날 정도로 극성스런 모습을 보이는가. 오히려 서구의 선진민주주의국가에서보다 더 능동적이고 더 적극적이며 더 집요한 모습을 보인다. 어째서? 유럽에서 시민사회가 출현한 것은 18세기였다. 그리고 그 동기는 권력과 강제로부터의 자유였다. 국가와 사회를 개인으로부터 유리시킨다. 동아시아의 경우는 전제정치의 영향이 아주 최근까지 남아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똑같이 유교를 국교로 삼아 나라를 다스렸지만 그 근본이나 방식에서 조선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중국의 황제는 불가침의 존재였다. 그래서 천자였다. 하늘의 아들이었으며 하늘 대신이었다. 살아있는 신이었다. 감히 불경할 수 없었고 도전할 수도 없었다. 청대에 이르러서는 아예 사대부들이 국정에 대해 말하는 자체가 금기시되고 있었다. 중국의 유교는 그래서 충과 효가 전부였다. 하지만 조선의 경우 사대부들은 마땅히 왕의 앞에서도 목숨을 걸고 직간을 할 수 있어야 했으며 그래서 귀양을 가고 심지어 사약을 받아도 문중의 명예로 여기는 전통마저 있었다. 그 사대부가 지금의 시민으로 이어진 것이다.


당장 먹을 것도 없는 와중에도 그래서 쌀을 내어 아이들을 서당에 보내고 글줄이라도 읽게 했다. 조선말 전국에 서당의 숫자가 무려 2만 여 곳이었다. 대한제국말 근대화가 시작되자 조선의 부자들과 지식인들이 가장 먼저 앞다투어 시작했던 일이 바로 학교를 세우는 것이었다. 지금도 당시 지역유지나 부자들이 돈과 땅을 내어 세운 학교들이 제법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며 그 가운데 상당수가 폐교되기도 했지만 그 전통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 것은 알아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랭이로 일생을 마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다. 배움은 권리이기 이전에 의무다. 조선후기부터 사대부의 예법이 백성들 사이에도 깊숙이 뿌리내리게 된 것은 바로 그런 연장에 있었다. 백성이 사대부가 된다. 사대부도 마침내 백성이 된다. 몰락한 양반들도 백성들과 한데 뒤섞여 구분이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동학혁명은 그같은 세상에 대해 눈떠가기 시작한 백성과 그들에 동조한 양반들에 의해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일어난 말 그대로 혁명이었다.


유교와 민주주의는 어울리지 않는가. 유교와 민주주의는 서로 섞일 수 없는 대척점에 있는 사상인가. 그러므로 유교문화권인 동아시아 사회에 민주주의란 어울리지 않는 것인가. 그렇게 여겼었다. 실제로 그런 사례들을 보아왔었다. 일본과 대만, 싱가포르, 기타 여러 아시아 국가들을 보며 대한민국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역사적 전통이 다르다. 같은 유교지만 그 유교를 배우고 추구해 온 과정들이 다르다. 고려말 사대부들은 바론 세상을 세워보겠다며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를 세우고 있었다. 유교의 이상을 추구하겠다며 사대부가 중심이 된 새로운 이상향을 건설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언로를 열고, 사대부 스스로 국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왕과 조정은 그것을 관용으로써 받아들였다. 왕과 조정에 맞서서 사대부들이 파업하고 항의시위를 하는 것은 전혀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지금의 대자보라 할 수 있는 벽서 역시 여러차례 나붙고 있었다. 물론 현대의 민주주의와 비교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이지만 원시적이기는 해도 그 씨앗은 뿌려져 있었던 것이다. 천하는 공물이며 공의에 의해 다스려져야 한다. 왕조차 나라의 주인이 아니며 단지 나라를 다스릴 책임이 지워진 대리인에 불과했다. 조선후기 조정을 들쑤신 예송논쟁은 왕의 존재와 지위에 대한 논쟁이기도 했다.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어차피 유럽의 민주주의라는 것도 귀족에서 부르주아로, 그리고 일반 노동자에게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확산되어가는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귀족들이었고, 점차 귀족들을 위협할 정도로 실력을 갖추게 된 젠트리나 융커, 혹은 부르주아들에 의해 그 권리가 나누어지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확장되고 있었다. 하필 그 사이에 일제강점기가 있는 바람에. 많은 것들이 왜곡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이은 군사독재는 국민들로 하여금 스스로 나라의 주인이 아닌 군주에 종속된 신민으로 여기도록 만들었다. 애써 배울 필요도 없고, 나서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거나 직접 참여할 필요도 없고. 정치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꺼려하거나 때로 두려워하는 모습도 보인다. 국민들이 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원래 국민이 해야 할 일이었다.


말 그대로 전통이다. 썩어뻐진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 조선을 건국했던 사대부들처럼. 왕이 잘못하면 도끼를 들고 궁궐까지 쳐들어가 직간을 해야 했던 그 사대부들처럼. 아무일이 없어도 조정에는 먼 산골구석의 선비들까지 써서 보낸 상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나라의 위기에는 이들이 의병장이 되어 백성들을 이끌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이 무엇을 추구하고 그려왔었는가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천하는 누구의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역시 어느 특정한 개인이나 신분, 집단의 소유가 아니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 자신이고 그런 국민 자신의 의지가 모든 판단과 결정의 동기가 되고 이유가 되는 것이다. 다만 아직 한 가지 모자른 것이 있다면 최소한 나라가 망했을 때 함께 죽을 정도의 책임감일 것이다. 내가 잘못했다. 나 자신의 책임이기도 하다. 멀리서 찾을 것 없다. 우리 자신의 안에 있다. 역사의 유전자에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