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많이들 아는 이야기일 테지만 연극의 연기와 드라마의 연기는 전혀 다르다. 카메라로 클로즈업해주는 드라마에 비해 연극은 객석과 거리를 좁힐 방법이 없다. 드라마에서처럼 눈빛연기라도 하려 하면 객석 뒤에서는 아예 뭐하는지 보이지 않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그래서 연극의 연기는 드라마의 그것에 비해 발성이며 표정 몸짓들이 상당히 과장되다. 객석 뒤편에서도 연기자의 감정을 충실히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벌써 몇 년 째다. 특히 작년은 거의 트럼프의 미국과 김정은의 북한이 핵개발을 둘러싸고 거의 극한의 대립을 보여주고 있었다. 시도때도 없이 미사일이 날아오르고, 핵실험이 이루어지고, 그리고 그럴 때마다 미국은 무력사용까지 고려하며 강경한 대응을 이어갔다. 물론 모든 잘못은 북한에게 있다. 하지만 어찌되었거나 그런 식의 극한 대립은 한반도 정세의 불안으로 이어지고 당연히 평창 동계올림픽에도 악영향을 주었다. 당장 한반도의 긴장상황을 이유로 아예 올림픽 참가를 보이콧하려는 움직임마저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여전히 불안해하는 세계의 나라들과 시민들로 하여금 마음놓고 한국을, 평창을 찾도록 할 수 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 입장에서 이번 남북교류의 첫째 목적은 다름아닌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하나라는 것이다. 더불어 남북한 사이에 대화와 교류가 이어지면서 평화적인 분위기가 정착되고 북한의 핵문제까지 해결될 수 있으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중 문제고 지금 당장은 어떻게든 기왕에 유치한 평창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가장 큰 불안요인인 북한의 핵개발로 인한 한반도의 긴장상황을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리는 것이다. 문제는 설사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그것을 이루어낸다 할지라도 어떻게 세계에 그 사실을 알릴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일단 대화를 했다. 북한이 올림픽 참가를 통보했다. 남북한이 하나의 깃발을 들고 함께 개회식에 입장하기로 했다. 북한의 응원단과 공연단이 대한민국을 찾기로 했다. 그런데 그것으로 충분할까? 그보다 더 나은 더 확실하게 어필할만한 다른 것은 없을까? 그러고보면 평창올림픽 특별법에서 이미 단일팀 구성을 명문화하고 있었다. 일단 단일팀을 제안하고 그것이 이슈가 되어 세계의 언론에 보도되면서 보다 효과적으로 최소한 평창동계올림픽 기간동안은 남북한이 서로 평화를 위해 노력하려 한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올림픽 역사상 유례없는 단일팀을 구성할 정도로 남북한 모두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니까 잉여다. 굳이 않더라도 상관없지만 어찌되었거나 하면 좋은.


그러면 어째서 그 좋다는 단일팀 구성이 이토록 논란이 일 정도로 절차와 과정을 무시한 채 졸속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는가. 시간이 없었으니까.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할 것이라는 확실한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단일팀을 논의하는 것은 너무 앞서가는 것이다. 일단 북한이 먼저 참가의사를 밝히고 나서 그와 관련한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데 그것이 불과 이달 초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과연 어떤 종목을 가지고 어떤 식으로 단일팀을 꾸릴 것인가. 대한민국과 북한 두 당사자들만 합의하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당장 IOC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해당 국제연망의 지지도 받아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다른 나라들의 반발 역시 설득해야 한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정부가 임의로 선정했다기보다는 IOC와의 협의를 통해 여자 아이스하키로 단일화 종목을 결정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IOC의 동의가 있어야지만 대한민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확신을 가지고 단일팀을 추진할 수 있다. 다만 그런 과정들이 너무 급하게 진행된 나머지 충분히 사회적으로 동의와 공감을 이끌어낼만한 시간이 부족해지게 되었다.


아마 군대 갔다온 사람이라면 거의 아는 말일 것이다. 선조치후보고. 아니 군대가 아니더라도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시도때도 없이 듣게 되는 말이기도 하다. 사실 매우 성가시다. 말은 일단 상황이 급하면 먼저 조치부터 하고 보고는 나중에 하라고 하면서 결국 나중에 그것을 이유로 문제삼고 책임을 물으려 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작 나중을 생각해서 의견을 묻거나 하면 줏대없고 능력없는 놈으로 찍히기 쉬우니 이보다 곤란한 것이 없다. 아무튼 시간은 촉박하고 당장 무어라도 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때로 중간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 일단 먼저 결과부터 내고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은 나중으로 미룰 수도 있다. 하물며 대통령이야. 북한이 먼저 올림픽 참가의사를 밝히고 대화를 제의해 왔는데 이것저것 따지다가 겨우 찾아온 기회를 놓치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것이다.


어째서 불통인가. 그럼에도 필요하다 여겼으니까. 어째서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지 않았는가.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으니까. 어째서 그처럼 졸속으로 일들을 처리해야만 했는가. 당장 제한된 시간 안에 어떻게든 결과를 내야만 했으니까. 그러라고 대통령과 행정부에 그만한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일일이 묻고 동의를 구하지 않더라도 대통령과 행정부의 재량으로 중요한 문제들을 판단하고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라. 그것이 사익을 위한 것이라면 모를까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라는 당면한 첫째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고작 동계올림픽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 묻는다면 솔직히 대답할 말이 없다. 당장 나부터 동계올림픽따위 그다지 볼 생각이 없으니까. 하지만 국가단위에서 반드시 그렇게만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감정이 시키는대로 그저 따르면 무척 편하다. 좋은 놈은 좋은대로 싫은 놈은 싫은대로 화나는 놈은 화나는대로. 개인은 그래도 된다. 그래도 한 집단을 이끄는 리더라면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 여자 아이스하키 티켓이 벌써 동이 났다고 한다. 불과 얼마전까지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한 세계의 관심도 부쩍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주목도가 높아진 만큼 세계의 정상과 언론들 역시 평창올림픽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사실 IOC가 의도한 바이기도 할 것이다. 올림픽의 실패는 IOC에게도 큰 문제가 된다. 겨우 평창동계올림픽 개회를 앞두고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다. 반드시 단일팀 때문만은 아닐지라도 조금이라도 역할을 했다면 하지 못할 선택은 아니었던 셈이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해야 하는가. 그 전에 모든 개인을 만족시키는 정책이란 존재하는가. 부동산 가격을 잡으려면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를 기대하는 또다른 개인들의 욕망을 희생시켜야 한다. 보편적 복지에 반대하는 다수의 국민들이 존재함에도 그들을 설득하지 못한 상태로도 필요하다면 보편적 복지를 해야만 한다. 여성주의가 필요하다면 반대하는 주장이 있어도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국정을 책임진다는 것은 무척 무겁고 어렵고 무엇보다 고독한 것이다. 어떻게 해도 누군가로부터는 반드시 욕을 먹는다. 그럼에도 무릅쓰고 필요하다면 해야 하는 것이다.


비판하는 주장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아예 비판을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덕분에 북한도 괜히 대한민국 정부를 떠보려다가 실속없이 모양만 구긴 채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정부에 대한 비판은 곧 정부와 협상해야 하는 상대에게도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북한 역시 지금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다만 부당한 비판들에 대해서는 나름의 해명을 하고 싶은 것이다. 쉬운 결정들은 아니었다. 이유가 있는 결정들이었다. 쉬운 일은 없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