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에서 기사를 보자마자 먼저 블로그로 달려와 전에 쓴 글부터 찾아보았다. 다행이다. 나 역시 피해자 A씨보다 정봉주 전의원의 주장에 기울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피해자 A씨에 대해 단정적으로 쓰는 것만은 피하고 있었다. 타인을 비판할 때는 사실관계가 명확해진 뒤에 한다. 정봉주 전의원에 대해서도 무죄추정이지만 피해자 A씨에 대해서도 무죄추정이어야 한다. 다만 프레시안의 성급하고 어설픈 보도는 분명 문제였었다.


특히 성범죄에서 무고죄라는 것이 가지는 해악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을 것이다. 입으로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정봉주 전의원 역시 혐의사실이 완전히 입증되기 전에는 아직은 무죄로 간주해야만 한다. 문제는 정봉주 전의원이 무죄라면 정봉주 전의원이 성추행을 했다고 제보한 피해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무고죄라는 게 죄가 없는데도 죄가 있다고 고발했을 때 거짓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친 행위를 처벌하는 법규정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가해자로 몰린 정봉주 전의원이 무죄라면 당연히 피해자라며 나선 A씨는 무고죄로 유죄가 되어야 한다. 아직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은데도 오히려 확신을 가지고 피해자 A씨를 인신공격하는 정의로운 글들이 인터넷에 넘쳐나게 된 이유였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정봉주 전의원은 무죄이므로 따라서 피해자 A씨는 유죄가 되어야 한다.


안희정 전지사와 관련해서 성폭행사실을 고발한 김지은씨에 대한 2차피해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안희정 전지사가 어쩌면 무고할 수 있다. 안희정 전지사가 무고하다면 고발자 김지은씨가 안희정 전지사를 무고한 것이다. 그러므로 피해자 김지은씨는 안희정 전지사를 무고한 혐의자가 된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경우 안희정 전지사에 대해서와 달리 김지은씨에 대해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배우 오달수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오달수가 무고할 수도 있겠다. 그러므로 오달수씨의 성폭행과 성추행을 고발한 당사자들에게 다른 의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말했던 것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을 함부로 비판해서 안되며 그렇다고 더욱 피해자라 주장하는 이들에 대해 단정짓고 비난해서도 안된다.


어쩌면 이번 사건이야 말로 어째서 성범죄에서 무고죄의 수사방침을 다시 손봐야 하는 근거가 될지도 모르겠다. 가해자에 대한 무죄추정이 자칫 피해자에 대한 유죄추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더구나 문제는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수사과정에서 가해자와 마주하고 사실을 재구성하는 과정조차도 견디기 힘든 고통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피해자로 조사받는 것만도 고소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괴로운데 더구나 무고죄의 피의자가 되어 죄인취급을 받으며 수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당장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 A씨가 거꾸로 가해자로 지목한 정봉주 전의원으로부터 무고죄로 역고소당한 상황이라 가정해 보자. 정봉주 전의원의 편에서 A씨를 인격적으로 비난한 다수의 대중이 수사관이다. 어떻게 되겠는가.


하여튼 그래서 말은 느릴수록 좋다. 아무리 머릿속에 확신이 있어도 명백한 사실확인이 전제되지 않으면 말도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가해사실이 명확히 드러난 경우에조차 말을 아끼고 있었다. 정작 이 글에서도 정봉주 전의원이 실제 성추행을 했는가 여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다.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이니까. 다만 드러난 사실에서 피해자 A씨가 정봉주 전의원을 무고하고 음해했다고 단정지을 수 없는 근거가 확인되었다. 다시 원점이다. 이번에는 정봉주 전의원이 더 의심스럽지만 그렇다고 피해자 A씨의 주장이 온전히 사실인가. 역시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아무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에게도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면 무고라 여겨지는 이들에게도 똑같이 무죄추정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들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몰아간다 비판하면서 정작 여성들에 대해서는 무고죄 확신범으로 여기고 사회적으로 격리하려는 시도마저 하고 있다. 내가 무고하면 상대도 무고할 수 있다. 이런 때 쓰라는 것이 역지사지다. 교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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