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사람을 뽑아서 쓰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사결정권자의 재량이다. 자기가 뽑고 싶은 사람 뽑아서 쓰는 것이다. 거기에 무슨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규준이 있고 원칙이 있는가. 당장 나만 해도 게임회사에서 신입사원 뽑을 때 자기소개서도 안보고 그냥 포트폴리오만 보고 면접했구만. 그래도 된다. 필요한 건 해야 할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니까.


원래 격식의 격格은 분별을 뜻한다. 다른 무언가와는 다른 그만의 특별함이다. 식式은 당연히 형식이다. 한 마디로 공자가 말한 군군신신부부자자가 바로 이것이다.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비는 아비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여기서 발전해서 삼강이 나오고 오륜이 나온다. 임금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신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아비와 자식은 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그래서 각자 자기의 신분과 위치에 따라 해야 하는 행동들을 규범화 해놓은 것이 바로 예법이라는 것이다. 조선중기 예학이 발달한 이유이기도 하다. 임금은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고. 신하 가운데 1품은 어떤 식으로 갓을 쓰고, 5품은 어떤 차림으로 거리를 거닐고, 양반의 부녀자는 어떤 장식을 해야 하며, 중인들은 어떤 식으로 말해야만 하는가. 더 복잡하고 더 많은 시간과 비용과 노력이 들어가는 예법일수록 당사자의 권위를 높여주는 것이기에 그런 식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만한 힘들고 어려운 예법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은 대단하고 특별한 존재다.


한 마디로 권위다. 지금의 신분을 감당하려 한다면 이만한 격식은 갖추어야 한다. 더 높은 지위에 오르려 한다면 그에 해당하는 자격을 갖추어야만 한다. 이를테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오랜 병폐처럼 이루어지고 있는 신고식도 그런 한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너희들이 들어온 지금 이 대학이 이만한 대가를 치러야 할 만큼 대단한 대학이라는 뜻이다. 그런 대학에 일찍 들어와 공부하고 있는 선배들은 그만큼 대단한 존재들인 것이고. 따라서 그런 만큼 더 힘들고 어려운 조건들을 통과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자신들과 같은 자격을 인정할 수 있다. 성인식도 그런 한 예다. 과연 한 사람의 어른으로써 충분히 제 몫을 다 할 수 있는가 어려운 과제를 내어 시험하고 비로소 어른으로서 자격을 주고 인정하게 된다. 이사하고 이웃에 떡을 돌리던 풍습도 그러니까 자기가 알아서 먼저 길테니까 잘 봐달라는 뇌물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충분히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다. 복종할 자세가 되어 있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더 어렵고 힘들고 위험하고 부담스러운 시험들을 만들어내고는 한다.


기업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도 그래서 기업의 규모와 사회적 위치에 따라 요구하는 세부적인 내용들이 달라지게 된다. 당연히 손꼽히는 대기업의 경우는 진짜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최고의 자격을 요구하게 된다. 반면 중소기업은 그보다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편이다. 기업이 가지는 권위의 가치다. 기업의 이름이 사회적으로 가지는 가치를 계량하는 것이다. 모두가 들어가고 싶어하는 기업인 만큼 그만큼 더 힘들고 어렵게. 그렇지 못한 기업이라면 그보다는 조금 더 수월하게. 혹은 이제 겨우 막 시작한 신생기업이나 아직 독립해서 완전히 자리를 잡기 전이라면 따라서 경우가 달라질 수 있다. 무엇보다 입사지원자에게 강요해야 할 조직의 권위가 아직 확실하게 자리잡혀 있지 않다. 보다 권위로부터 자유로운 채용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이유다.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도 무척 작았었다. 그리고 생긴지도 얼마 안됐었다. 굳이 내세워야 할 전통도 없고 굳이 인정받고 싶은 권위도 없었다. 필요한 것은 해야 할 일을 할 줄 아는 '실력'과 '경험'이다. 얼마나 주어진 일을 잘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지 자기가 누구이고 어디어 어떻게 살았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학력을 보는 것은 최소한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지적인 능력을 보기 위해서다. 자기소개서도 오히려 내용보다는 문장을 더 살피게 된다. 사실 자기소개서라고 써놓은 것 보면 대충 이 사람의 지적 수준이 어떻게 되는가 미루어짐작할 수 있다. 어떤 어휘들을 쓰고, 어떻게 문장을 구성하고, 더구나 결국 업무라는 것도 상당수가 텍스트를 만드는 작업이다. 과연 그런 생긴지도 않은 작은 회사에서 직원에게 요구해야 할 자격이란 무엇일까?


입사지원자가 지원서류에 귀걸이를 하고 점퍼 입은 사진을 붙여넣었다. 자기소개서의 내용이 12줄이랬다가 21줄이랬다가. 그런데 알고 보니 고용정보원이 막 독립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계약직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느라 어수선한 분위기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는 한국사회에서도 자유주의적인 분위기가 상당히 강했었다. 지금이야 사는 것이 어려우니 그만큼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과 타인을 억압하며 금욕을 당연시여기고 있지만 당시까지는 또 반드시 그렇지도 않았다. 마침 업무를 위해 필요한 인력이 있었고 그에 어울리는 인재가 때마침 나타났다. 그런 상황에서도 격식을 지키는 것은 지켜야 할 체계와 질서가 있는 안정되고 권위가 인정되는 큰 조직들이다. 지금은 모르겠다. 그로부터 벌써 10년 넘게 지났으니. 지금은 자리를 잡아 보다 엄격하게 치사할 정도로 꼼꼼하게 지원자들을 면접보는가는.


만일 이 글을 읽는 사람 가운데 취직을 앞둔 사람이 있다면 이런 부분들도 충분히 고려해야만 한다. 실용적이고 실무적인 요구가 더 강한 경우에는 오히려 지나치게 긴 자기소개서는 해가 될 수 있다. 반면 충분히 사회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그것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기업에서라면 그 이상으로 엄격하게 격식을 갖추는 것을 좋아할 수 있다. 귀걸이를 하고 점퍼를 입은 채 출퇴근하고 싶으면 그런 회사를 찾아가면 된다. 세상에 회사는 많고 각 회사마다 요구하는 인재가 다르다. 같은 회사라도 상황에 따라 요구하는 인재의 성격이 달라진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공기업이니까 반드시 이렇게 인사를 할 것이다 지레판단하거나 하면 오히려 주어진 기회마저 놓쳐버릴 수 있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무슨 일들을 할 수 있는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은 어떤 회사에서 어떤 식으로 일하고 싶은가. 그리고 그것을 평가하여 채용을 결정하는 것은 인사결정권자의 마음이다. 내가 필요한 인재를 내가 골라서 쓴다. 너무 당연해서 굳이 부연할 필요도 없다.


타진요의 복사판이다. 차이라면 타진요 당시는 노빠들도 대거 타진요에 가담했었다. 아니라 하지 마라. 타블로의 진실을 밝혀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겠다며 괜한 이명박까지 걸고 넘어지던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근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의 한정된 경험과 지식으로 만들어낸 가상의 진실에 실제의 사실들을 끼워맞추며 그 나머지를 증거라고 내세우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부분은 이렇게 의심스러우니까 해명하라. 아무리 해명해도 모든 근거은 자신의 머릿속에 있으니까 모든 의문이 해소될 때까지 자기가 만족할 수 있게 해명하라. 그러면 믿어주겠다. 그 근거라는 것도 막연하게 이렇게 하면 취직하는데 어렵지 않겠는가. 이런 식으로 하면 채용되지 않지 않겠는가. 그럴 누가 결정하는데? 


채용이 잘되었고 못되었고를 판단하는 기준은 따라서 다른 것이 아니다. 필요한 일을 시켰는데 얼마나 잘해냈는가 하는 한 가지다. 그러려고 새로 사람을 뽑아 쓰는 것 아닌가. 그러자고 서류지원받고 일일이 면접보고 포트폴리오 평가해가며 어렵게 사람을 뽑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필요하다고 뽑아서 썼는데 시킨 일도 제대로 못했다. 하기는 커녕 오히려 조직에 피해만 주었다. 아무리 정당한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서 격식을 갖추어 채용한 경우라 할지라도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낭비다. 기껏 채용하고 임금까지 지불하는데 정작 필요한 일에는 써먹지 못한다. 반면 어디서 돈받고 낙하산으로 데려왔어도 일만 잘하면 그것은 훌륭한 채용이 될 수 있다. 사람을 채용하는 것은 격식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필요한 사람을 쓰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실력은 인정하지만 채용과정이 잘못되었다. 그러니까 그것을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느냐 하는 것이다.


괜히 이명박 정부 아래서 이 문제를 파고들다 끝내 흐지부지 덮어버린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이를 빌미로 문재인을 공격할만한 꼬투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금 허술하고 엉성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그래서 결국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자격을 갖춘 인재를 뽑아 훌륭히 써먹었다. 그러니까 채용의 과정과 절차라는 것도 그렇게 필요한 인재를 뽑아쓰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과연 당시 고용정보원이 문재인의 아들을 채용한 결과 얼마의 낭비가 있었고 얼마의 비효율이 발생했는가.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안다. 그럼에도 문제삼는 것은 단지 문제삼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사실도 외면하고 진실마저 왜곡해가며 그렇게 주장해야만 하는 이유들이다. 모르면 바보고 안다면 비열한 것이다. 어느 쪽이든 한심한 것은 같다.


그래봐야 거의가 사변의 정황 뿐이다. 인사담당자가 재량으로 판단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는 것들이다. 차림이 어떻고 형식이 어떻고. 격식이나 자격은 또 어떻고. 그저 그런 격식이라도 충실히 따라야지만 취직할 희망이 보이는 찌질이들의 한심한 열폭일수도 있겠다. 세상엔 이런 사람이 있고 저런 사람이 있다. 실력만으로 채용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각자 자기 능력에 맞게 살아야지 어떻게 모두가 같아질 수 있을까? 채용과정과 내용이 달랐다면 각자의 사정이 달랐고 당시의 상황도 그만큼 달랐다.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을 적시해서 근거로 제시해야 한다. 해명하려 해도 해명할 수 없다. 사실 자체가 없으니까. 무엇을 해명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망상을 충족시켜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어디까지 해명해야 만족할 수 있을까. 우습게도.


아무튼 야권에서 다른 경선후보 지지자들이 열심히 날뛰어준 덕분에 비로소 보수언론까지 이에 가세하게 된 모양이다. 눈치가 있는 언론이나 정치인들은 이미 다 뒤로 빠졌다.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진흙탕에 발을 담그는 것도 똥물을 직접 손으로 만지는 것도 대신하는 사람이 있다면 굳이 말릴 필요가 없다. 모르는 놈들만 병신이다. 자기들만 모른다. 모른다는 사실도 모른다. 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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