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2007년 대선에서 많은 야권지지자들이 정동영에 대한 지지를 포기했던 이유와 비슷할 것이다. 대통령 노무현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민주주의를 바라왔고 민주화 정부를 지지해왔던 어찌되었거나 같은 편이었고 같은 동지들이었던 것이다. 설사 반대하고 비판하더라도 그런 전제에서 했어야 했다. 최소한 같은 당이고 같은 정치적 목표를 공유하고 있던 사이였다면. 그런데 대선을 앞두고 정동영이 보인 행보는 어떠했던가. 그동안 열린우리당에서 했던 일들과 별개로 그것은 실망감을 넘어 배신감마저 느끼게 했다. 고작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의 그릇이 이런 정도인가.


2017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컸었다. 정치적 자산이 넘쳐난다 여겼었다. 설마 박원순과 이재명의 그릇이 이것밖에 안되나 실망도 했지만 그래도 안희정이라는 또다른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생각에 다름 대선까지 마음이 든든해지고 있었다. 혹시라도 이변이 일어나서 안희정이 되더라도 그리 나쁘지는 않겠다 느긋해하고 있기도 했었다. 최소한 경선도 같은 친노이고 성향도 비슷한 만큼 상당히 신사적으로 온건하게 진짜 제대로 경선다운 경선이 치러지겠구나. 같은 당의 동지로써, 함께 싸울 동지로써 최대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그런 가운데 보다 치열하게 정책을 가지고 경쟁하는 경선을 보게 되겠구나. 하지만 아니었다. 문재인은 안희정에게 용납해서는 안되는 적이었고 악이었다.


박영선의 문재인 캠프에 대한 폄하는 그 극단을 보여주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민주당의 집권을 바라고 모여든 사람이었다. 부적절한 인사도 섞였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은 민주당을 통한 정권교체를 바라고 그 주체로써 문재인을 선택한 이들이었다. 만에 하나 안희정이 경선에서 승리하고 후보가 된다면 함께 정권교체를 위해 뛰어줄지 모르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오물이라 폄하한다. 그런 사람들을 잡탕이라 몰아붙인다. 그런 건 본선에서 반드시 떨어뜨리고 승리해야 하는 상대당 후보에게나 할 수 있는 발언이다. 그조차도 정작 유권자들이 보기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모욕적인 표현들이다. 그런데 같은 당의, 어쩌면 동지이자 선배라 할 수 있는 문재인에게 그런 표현들을 쓴다. 안희정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나중에라도 제어하지 못했다는 것은 전적으로 안희정 자신의 잘못이다. 어찌되었거나 안희정 자신의 이름을 건 대선후보경선캠프 아니던가. 그것도 하지 못할 정도였는가.


호남은 민주당의 뿌리다. 광주는 80년대 민주화진영 전체에 있어 정신적 뿌리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새누리당에 몸담았던 과거 민주화인사들마저 차마 광주까지는 폄하하지 못한다. 광주까지 폄하한 순간 자신의 과거를 통째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런 호남과 자기당의 대통령후보가 될 수도 있는 경쟁후보를 분리한다. 의도적으로 발언을 편집하고 발췌해서 악의적으로 부풀린 다음 마치 고자질하듯 호남의 감정에 호소하여 그를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으로부터 분리하려 시도한다. 혹시라도 문재인이 대통령후보가 되더라도 호남의 지지를 받지 못하도록. 호남과 광주를 이용한 것도 괘씸한데 그 대상이 자기당 유력 대선후보이자 경쟁자라는 점이 더 기막히다. 김두관과 박지원이 경선 과정에서 퍼뜨린 호남홀대라는 프레임으로 인해 정작 당이 이후 선거에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는가. 그러고도 같은 당의 동지라 말할 수 있는가. 경선에서 안희정을 굳이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어디까지나 같은 편이라 여기며 느긋해하던 많은 지지자의 뒤통수를 치는 행위였다. 설마 안희정은 같은 목표를 공유한 같은 편이 아니었던 것인가.


하필 그런 말을 하는 당사자가 대연정을 주장하던 안희정이라는 것이다. 차라리 이재명처럼 마음에 안드는 놈들은 다 배제하고 정치하자 나서는 경우라면 그러려니 한다. 그래서 이재명에 대해서는 기대도 하지 않고 따라서 어떤 말을 해도 크게 실망하는 일도 없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가 저지른 국정농단이 전국민적인 분노를 사는 와중에도 그에 협력했던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에도 관용과 포용으로 연정을 하겠노라 말했던 안희정이 문재인에 대해서는 어떤 관용도 포용도 없을 것이라 선언하고 있다.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안희정을 같은 편이라 여기고 마음놓고 있던 나같은 사람에게는 그것이 차라리 배신감으로 분노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긴 나 혼자 멋대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같은 당에 몸담았다고 모두가 같은 정치적 목표를 공유하는 정치적 동지관계이리라 기대하는 것은 너무 성급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안희정이다.


안희정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었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미디어를 통해 보인 모습들에 자신도 모르게 많은 기대를 가지게 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배신감도 분노도 더 컸던 것이리라. 평소 안희정이 무슨 말을 하든 그래도 적당히 비판하고 넘어가던 것을 지나 이렇게 같은 글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쓰며 감정을 드러내는 이유다. 이놈은 안되겠다. 이 인간은 도저히 어떻게 해도 안되겠다. 한 사람을 마음에서 도려내는 과정은 이렇게 힘들고 때로 아프기까지 하다. 노무현을 포기했을 때도 그랬었다. 한때 많은 기대를 하고 지지했던 만큼 등돌릴 때 많은 혼란과 아픔이 있었다.


안희정이 문재인을 향해 했던 노골적인 네거티브는 문재인만이 아닌 문재인을 지지하지만 역시 안희정도 같은 편이라 동지라 여겼던 잠재적 지지자들에 대한 네거티브이기도 했던 것이었다. 언젠가 함께 같은 길을 가게 될 사이라 막연하게 여겼던 사람들에게 냉엄하고 참혹한 현실을 일깨워주는 행위였던 것이다. 장차 언제가 되었든 안희정이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나오게 되면, 아니 그만한 준비가 갖추어지면 경선에서부터 안희정의 편에서 함께 힘을 실어주게 되었을 지지자들에게 우리는 더이상 같은 편이 아니다. 절대 동지가 될 수 없다. 어째야겠는가 받아들일 밖에. 마음이 쓰리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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