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대통령의 롤모델은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었다. 노무현 자신이 직접 링컨에 대한 전기를 쓰기도 했었다. 학교도 다닌 적 없는 남부의 시골뜨기가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미국의 대통령까지 되어 노예해방이라는 큰 업적을 이루어냈다. 노무현 자신도 정치권 전체는 물론 민주진영 내에서도 철저히 소수였기에, 그래서 몇 번이나 소수당에 소속되어 어려움을 겪어 보았기에 링컨을 통해 나라를 바르게 바꿀 수 있는 - 자신의 정치적 야망과 이상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찾았던 것인지 모르겠다. 물론 개인적으로 알거나 하는 것은 아닌지 실제 어땠는지는 모른다.


아무튼 안희정이 주장한 대연정은 그런 연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링컨은 지독한 독재자였다. 철저한 마키아벨리스트이기도 했다.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입장을 바꿨다. 자신의 신념을 배반하는 말이나 행동도 서슴지 않았었다. 노예해방을 신념으로 여기고 추구하고 있었음에도 미국의 분열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타협할 줄도 알았다. 일선지휘관들의 독단에 의해, 혹은 의회의 입법에 의해 마침내 노예해방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맞이했음에도 그것이 남북전쟁이라 이름한 미국의 분열의 위기에 안좋은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하여 비판적이고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미국을 하나로 만들 수 있다면 노예제도 용인할 수 있다. 노예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노예제를 지지하면서 연방에 잔류한 노예주들의 입장을 고려했다. 이명박과 박근혜, 그리고 그들에 협력한 당시의 여당 새누리당을 잘못했지만 그러나 개혁에 필요하므로 그들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들과 화해하고 타협하여 연대를 시도해야 한다. 노무현도 같은 맥락에서 집권 당시 대연정을 제안하고 있기도 했었다.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적과도 손을 잡는다.


그런 점에서 확실히 안희정은 노무현의 적자라 할 수 있다. 노무현이 가지고 있던 고민과 그를 위한 노무현의 방식을 충실히 물려받았다. 적과도 손잡고 원수와도 함께한다. 과거는 물론 지금의 잘못까지도 모두 끌어안고 간다. 하지만 아마 잊고 있는 모양이다. 링컨이 그렇게 대화와 양보, 관용으로 일관한 것은 아직 노예해방을 지지하는 북부의 힘이 약했을 때만이었다. 아니 아직 남부의 뛰어난 지휘관들에 의해 곳곳에서 북군이 패하고 있던 와중에도 게티스버그에서 한 번의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자 바로 미리 준비하고 있던 노예해방을 공식화하고 있기도 했었다.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을 때는 철저히 자신을 억누르고 기다리다가 기회가 오는 순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이 원래 하고자 했던 바를 전광석화처럼 이루어낸다. 그래서 링컨을 두고 철저한 마키아벨리스트라 평가하는 이들마저 있는 것이다. 이미 노예해방에 반대하는 노예주들조차 연방을 벗어나 남부로 돌아서기에는 늦은 상황에 국내외적으로 노예해방이라는 명분을 분명히함으로써 한 번의 승리를 전쟁에 쐐기를 박는 기회로 삼는다. 그래서 묻는다. 지금 민주당은 열세인가? 우세인가?


분명 여전히 정부와 여당은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 당장 의회내에 의석수만도 과반에 가까운데다 그동안 권력을 독점하며 여기저기 심어놓은 인맥 또한 상당하다. 지지자들 또한 당장의 이슈에 어쩔 수 없이 등돌리고는 있지만 언제든 계기만 만들어지면 다시금 과반에 가까운 지지를 보여줄 것이다. 하지만 당시 게티스버그에서 승리한 상황에서도 아직 남부에는 상당한 전력이 남아 있는 채였다. 여전히 곳곳에서 북군이 패하고 있으니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런 불확실한 상황에서 결국 게티스버그에서의 승리를 남북전쟁에 쐐기를 박는 계기로 만든 것은 무엇이었는가. 바로 승리에 대한 의지다.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하는 확신이다. 간절함이며 절박함이고 무엇보다 당위다. 우리는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 그래서 과연 무엇 때문에 민주당은 정권을 잡아야 하고 정권교체를 이루어내야 하는가. 바로 민주당 지지자들이 안희정을 강하게 비판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저들과 그토록 피터지게 싸우고 지금 다시 저들의 약세를 빌미삼아 저들을 꺾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미 기세를 타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아무리 상대가 강해도 벌써 안에서부터 썩어 허물어진 상황에서 괜히 지리멸렬한 상대의 사정까지 봐줄 필요는 없느 것이다. 진정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지금껏 저들과 목숨걸고 싸워야만 했던 이유가 있다면. 물론 민주주의 국가에서 고작 선거를 치르면서 목숨까지 걸여야 할 이유는 없을 터였다. 그만한 각오로 의회에서, 혹은 지자체에서, 혹은 거리에서 많은 정치인과 그리고 유권자들이 저들과 대치하며 싸우고 있었을 것이었다. 지금도 많은 유권자들이 거리로 나가 추위에 떨며 자신들이 바라는 정의를 관철하고자 싸우고 있을 터였다. 그 이유를 들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은 바로 그런 싸움에 희생된 이들과 아직 살아남은 이들을 위해 링컨이 준비한 그 '이유'였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남북전쟁이 끝나고 반란을 일으킨 남부에 대해 어떤 관용도 없이 군정을 실시하며 시민권까지 제한하고 있었다. 무엇을 말하는가.


가치부전도 훌륭한 계략이지만 이미 이기는 싸움이라면 손에 닿는대로 양을 몰고나가는 대범함과 교활함도 필요한 것이다. 딱히 정한 것은 아니지만 마침 손에 양이 잡히니 그냥 그대로 몰고 나와 내 것으로 삼는다. 박근혜의 실정이 자기가 의도한 것은 아닐지라도 기왕에 그로 인해 여권이, 보수진영이 지리멸렬한 틈을 노려 자기가 진정으로 바라는 바를 이루려 한다. 그래서 안희정이 이루고 싶은 개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지금 상황에조차 보수진영에 양보해야 하는 그 개혁의 정체를 묻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안희정이 대연정을 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과연 노무현이 아직 살아있어서 지금과 같은 기회를 맞았다면 안희정처럼 어설프게 대화와 타협을 시도했을까?  연대와 공존을 말하고 있었을까? 만일 노무현이 집권하고 있는 동안 지금과 같은 기회가 왔다면 노무현 역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 개혁을 있는 힘껏 가능한한 밀어붙이려 했을 것이다. 지금 문재인이 하고 있는 것처럼. 이전까지 권력의지가 없다 할 정도로 온건하고 침착하던 사람이 냉정하다 싶을 정도로 단호하게 적폐의 청산을 말하며 청산의 대상과 연대는 없다고 분명히 한다. 약할 때는 연대하고 강해지면 목을 친다. 정치에 술수는 성공할 경우에 한해 오로지 선이다. 내가 안희정의 선거전략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높은 점수를 주었던 이유였다. 하지만 결국 한계를 드러냈다.


처음부터 한계가 분명했던 전략이었다. 어차피 민주당 밖에서 민주당의 경선에 직접 참여하여 표를 줄 유권자는 그리 많지 않다. 결국 민주당 내부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민주당 밖에 이만큼 많은 자신의 지지자들이 있다. 자기가 대통령선거만 되면 이 많은 사람들이 민주당 후보인 자신에게 표를 줄 것이다. 승리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 하지만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그러면 그렇게 정권을 잡고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무엇을 위해 안희정은 정권을 잡으려는 것인가. 무엇보다 지지자들은 무엇을 위해 안희정에게 표를 주어야 하는 것인가.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 보라는 것이다. 노무현으로부터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을 다시 떠올려보라는 것이다. 노무현이 당시 어떤 마음으로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던 것일까. 정동영이 열린우리당을 탈당하고 대통합민주싱당을 만들었을 때 유시민더러 대세를 따르라 억지로 등을 떠밀었던 것일까. 노무현의 손가락만 보았지 손가락이 가리키는 큰 산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득 링컨에 대해서 읽다가 떠오르는 바가 있어 끄적여 보았다. 안희정의 정치의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 하는. 아직 젊으니 기회는 많다. 성급할 필요가 없다. 안타까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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