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20대 남성, 나아가 10대까지 쉽게 보수로 쏠리는 이유?

가난뱅이 2025. 6. 26. 17:51

아마 여기서도 몇 번 언급한 것 같다. 아주 오래전 일이었다. 어느 진보논객 하나가 그런 하소연을 해 온 적이 있었다. 어째서 보수는 저토록 쉬운데 진보는 이렇게 어렵기만 한가? 보수는 그저 말 몇 마디만으로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데 진보는 긴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겨우 하고자 하는 말을 전할 수 있을 뿐이다. 당연하다. 원래 그래서 보수고 진보인 때문이다.

 

보수가 보수인 이유는 원래 하던대로 그대로 하자는 것이다. 원래 하던대로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이 원래 타고난대로 대충 적당히 고쳐가며 적응해 살아온 방식을 이야기한다. 자연계에서 인류가 생존해 온 방식의 연장에서 그동안 역사를 통해 구축해 온 그 방식들, 즉 인간의 본능과 충동과 감정에 가장 충실한 방식일 것이다.

 

오래전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길태미는 외친 바 있다. 원래 강자는 약자를 짓밟는 것이다. 강자는 약자를 병탄하고, 강자가 양자를 인탄한다. 이미 세상에는 강자와 약자가 있고, 강자라는 것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며 약자란 단지 일방적으로 당하는 위치인 것인데 그것을 문제라 잘못이라 말하는 자체가 오만이고 오류라는 것이다. 정확히 모든 포장을 걷어냈을 때 보수가 진정 주장하고 싶은 바일 것이다. 그러므로 약자로써 짓밟히는 것이 문제라면 강자가 되려 해야지 강자가 짓밟는 것을 문제삼아서 되겠는가. 그리고 그것은 또한 한 편으로 약자에게 지금 자신이 놓인 비참하고 비루한 현실을 납득할 수 있게 해주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원래 세상은 그런 것이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세상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내가 약자인 게 문제지 세상이 잘못된 것은 아닌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역사에 대해 침략자인 일본을 욕하기보다 침략을 당한 조선을 욕하면서 오히려 일본을 찬양하고 일본을 본받기를 바라는 논리도 바로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세상을 강자와 약자로 구분하고, 침략을 강자와 약자 사이의 힘의 관계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강자가 약자를 침략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약자가 되어 침략을 당한 것이 오히려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니 침략당한 약자인 조선을 동정하기보다 침략할 수 있었던 강자인 일본을 찬양하고 본받고 추종하는 것이 따라서 당연히 옳다. 여기까지 왔으면 어째서 2030 남성들 가운데 일빠를 넘어선 일뽕들이 그렇게 많은가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곽상도 아들의 50억이나 나경원과 한동훈과 심우정의 자녀와 관련한 의혹들이나 주진우의 병역면제에 대해 어째서 그들이 전혀 어떤 분노도 드러내지 않고 있는가도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어째서 2030 젊은 남성들은 그토록 사법고시 존치에 필사적이었던 것인가? 그들의 논리는 한 가지였다. 사법고시야 말로 신분상승을 위한 사다리다. 아니 기껏해야 판검사되고 변호사 되는 시험인데 어째서 그것이 신분상승으로까지 이야기되어지는 것인가? 바로 드러난 것이다. 검사 출신은 자식이 퇴직금으로 50억을 받아도 당연한 것이고, 판검사를 지냈으면 자녀의 진학이나 취업과 관련한 의혹들도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주진우는 급성간염으로 면제받았는데도 추미애 아들 휴가에는 발악들을 하던 2030 남성들이 한결같이 조용하기만 하다. 판검사면 그래도 된다. 그러니까 검사 출신인 주진우의 70억 재산이나 성인도 되기 전에 아들의 통장에 있었던 7억에는 조용하면서 김민석이 부모 재산까지 포함해 신고한 2억에만 그리 민감한 반응들을 보인 것이다. 판검사면 좋은 대학 나와서 어려운 시험에도 합격해서 자격을 증명했으니 그런 정도는 누려도 된다. 얼마나 명쾌한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나와 좋은 직업 얻었으면 그만한 대가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서 좋은 대학 못 나왔고 좋은 직업 못 가졌으면 그만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 옳다. 차라리 그들의 사고가 과거 6070 노인들과 닮아 있는 것도 그래서인 것이다. 그래서 정작 같은 2030 남성으로 묶여 있음에도 그들은 서로에 대해서도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한가, 누가 우위에 있고 누가 열위에 있는가, 그러므로 누구에게 더 기득권이 주어지고 누구는 그것을 더 감수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강약의 서열화된 사회구조는 사회를 이해하는 시각을 더욱 단순화 명료화시킨다. 더 쉽게 자신이 속한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런데 그것을 거스르려는 놈들이 있다. 그러니 4050에 대한 증오심까지 폭발하는 것이다. 

 

강자가 강자로써 누리는 것이 당연하고, 약자는 약자대로 참고 받아들이는 것이 정의롭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은 낭비다. 약자에게 돌아갈 자원을 강자를 위해 더 집중해서 쓸 수 있어야 사회 전체가 성장한다. 누구의 논리였을까? 2030 남성들이 이명박을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더욱 10대까지도 너무나 쉽게 보수의 논리에 설득되고 마는 것이다. 원래 세상은 이런 것이고 당연하게 그 위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옳고 정의로운 것이다. 그 기준에서 보자면 어려운 시험 합격해서 검찰총장까지 되었던 윤석열이 검정고시 출신이 대표이고 심지어 페미정당이기도 한 민주당을 모두 죽이겠다고 친위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은 당연한 권리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봐야 별 가치없는 몇 명이 죽어나갈 뿐 진짜 가치있는 사람들은 살아남는다. 일단 페미가 아니면 옳다. 그래서 그들이 잘못되었는가?

 

그러한 생각들이 틀렸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생각들을 가지는 자체가 잘못이라 여기지는 않는다. 최소한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은 그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심지어 진보라, 혹은 리버럴로 분류되는 정치인 가운데도 적지 않은 수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오바마가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가르치려고도 설득하려고도 않는 것이다. 누구나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윤석열이나 주진우처럼. 다만 그럼에도 그런 생각들이 틀렸다 여기기에 그냥 같이 욕하고 싸우려는 것 뿐이다. 내가 그냥 보고 넘길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2030, 특히 20대와 나아가 10대 남성들까지도 보수화되어간다는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할 수 있다. 대부분 게임들이 그렇다. 그들이 즐겨 읽는 웹소설들도 거의 그런 내용들이 강자가 있으면 강자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누가 얼마나 강해지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강자가 되고 난 뒤에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게임에 이르면 더 심하다. 그런데 그 논리는 단순명쾌한데다 자신이 사는 복잡한 세상을 더 확실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것 같기까지 하다. 그런데 굳이 더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추가하지 않는다면 결론은 명확하다. 그래서 과연 그들을 쉽게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오래전 우리 윗세대들도 우리 세대의 정신머리를 고쳐먹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 4050들이 과거 6070이 바라던대로 되었는가.

 

저들이 4050을 혐오하고 여성을 혐오하는 이유도 어쩌면 너무 단순할 것이다. 사회적으로 4050은 6070에 비해 아직 기득권이라 하기에 부족하다. 여성에 대해서도 여성의 신체적인 열악함을 들추는 컨텐츠들이 여기저기서 꾸준히 생산되고 있는 중이다. 장애인을 혐오하고 외국인을 차별하고 소수자를 배제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게 보수인 것이고. 그들은 나름대로 자기들이 합리적인 중도라 생각하겠지만. 그게 문제다. 정작 당사자인 20대 남성들은 자기가 보수라 여기지 않는다. 그게 더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