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알릴레오 알라뷰 유시민의 선거연대론과 정치인 유시민의 한계

가난뱅이 2020. 3. 11. 00:21

한 가지 전제해야 하는 것이, 유시민 이사장에게 선거에 대해 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당연히 선거에 대해 들어서도 안된다. 해박한 지식과 깊고 유연한 사유, 그를 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미려한 말솜씨와 글솜씨, 무엇보다 사안을 꿰뚫는 탁월한 직관과 통찰력으로 유명한 지식인 아이돌 유시민이지만, 그러나 선거라는 현실만 만나면 한심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답답한 모습을 곧잘 보여주고는 한다. 결국에 정치를 그만두고 작가로서 어용지식인을 선언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도 선거에서 지다 보니 더이상 대중이 자신을 원하지 않음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자기의 선거 뿐만이 아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도 유시민 이사장이 직전 내놓았던 분석과 예측들은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거의 틀린 바 있었다. 물론 유시민 이사장 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 언론과 전문가들이 잘못된 분석과 예측을 내놓고 있기는 했었다. 그렇더라도 유시민 아닌가. 그래도 다른 기자들이나 전문가들과는 남다른 혜안과 통찰력을 보여 줄 것을 모두는 기대했었다. 하긴 한 편으로 보면 유시민 이사장의 잘못된 분석과 예측이 더욱 지지자들의 위기감을 자극해서 결집케 한 측면도 있기는 하다. 진짜 투표하지 않으면 지겠다는 절박함에 너도나도 다투어 투표장에 가서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고 있었다. 심지어 정의당과 국민의당 지지자들마저 마음은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새누리당의 과반승리만큼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정치인으로서 유시민의 가장 큰 단점을 꼽으라면 정도를 넘어선 지나친 이상론과 낙관론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잘 될 것이라서 낙관론이 아니다. 어쩌면 너무 똑똑해서 세상을 자기 머릿속에 가두어 버리는, 마치 하나의 수학공식처럼 모든 과정과 결과가 예상가능한 합리의 구조 안에 존재한다 믿는 낭만적인 자기확신의 결과인 것이다. 설사 부정적인 결론이라도 합리적인 추론 안에서 충분히 예상가능한 범위 안이라면 정당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구조 안에서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한다면 결과를 다르게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민주당이 통 큰 양보를 하면 정의당도 어쩔 수 없이 민주당을 도울 것이고, 더구나 선거법 개정의 명분을 자기희생적으로 지킴으로써 중도층의 호감을 산다면 선거에서 비례정당을 따로 만드는 이상의 승리도 거둘 수 있을 것이란 주장과 같은 것들이다.

 

유시민 이사장보다 훨씬 많은 선거를 치르고, 심지어 그 가운데 대다수를 이겨왔던 것이 바로 민주당의 주요정치인들이란 것이다. 유시민 이사장이 진 것보다 더 많은 선거를 이기고 지금껏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온 이들도 상당수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정치인들이 유시민 이사장의 그것과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리고 있었던 것인가. 어째서 얼핏 듣기에 너무나 아름다워 보이는 민주당과 정의당의 선거연대가 아닌 자칫 민주당의 위성정당이라는 오해를 살 지도 모르는 비례연합정당을 위해 당원투표를 하겠다며 사실상 참여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인가.

 

한 마디로 정의당을 믿을 수 없다. 정의당 뿐만 아니라 민주당이 비례후보 불출마를 선언하면 갈 곳을 잃은 민주당 지지표를 얻으려 기회만 노리는 다른 자칭 진보개혁진영의 정당들 역시 연대의 대상으로서 도저히 믿을 수 없다. 내가 감정적으로 내지르는 심상정이 감히 탄핵을 입에 담았다더라 하는 저차원적인 수준이 아니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이라고 참여정부 시절을 기억하지 못할까? 그동안 반보수, 진보개혁진영의 연대를 위해서 진보정당들과 협상하고 연대하며 보고 듣고 겪어온 것들이 없었을까? 저놈들도 믿을 수 없다. 마냥 양보만 해서는 자칫 저놈들에게 더 크게 뒤통수를 맞게 될 지 모른다. 그래서 패스트트랙 정국에서도 함부로 정의당에 양보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오히려 그로 인해 정의당이 오판하게 되면 국정운영이 더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차라리 정의당이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한다 했다면 오히려 민주당이 참여를 결정하기가 어려웠을지 모른다고까지 여기는 이유인 것이다. 이인영 원내대표의 말은 분명 진심이었을 것이다. 민생당과 정의당과 함께 하는 것은 똥물에 뒹구는 것과 같다. 어쩌면 정의당과 민생당이 듣고 일찌감치 손털고 물러나라고 그런 발언들을 일부러 언론에 흘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기 때문에 정의당과의 연대 없이 민주당 혼자만의 힘으로 선거에서 승리하고 국정의 주도권을 가져오고야 말겠다. 정의당을 비롯한 다른 자징 진보개혁정당들은 알아서 살아남거나 아니면 뒈지거나.

 

그것이 바로 정의당의 민주당에 대한 일관된 입장이었을 테니까. 민생당의 일관된 대응이었을 테니까. 선의로 연대하려는 것이 아니다. 민주당의 약점을 잡고 민주당의 몫까지 빼앗으려 협잡이나 벌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미래통합당의 1당을, 과반의석을 막아서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후반기에 제대로 한 번 개혁을 해보고자 하는 공동의 목표가 아닌, 그런 민주당의 간절한 목표를 오히려 인질로 삼아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불순한 수작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런 놈들을 믿고 진보와 개혁을 위해 함께 연대한다? 당장 총선이 끝나고 심상정이 심재철과 손잡고 대통령을 탄핵하겠다 나설지 모르는 상황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놈들이란 것을 이인영 원내대표 역시 지난 패스트트랙 협상 과정에서 질리도록 느꼈을 터였다. 그런데 비례후보를 불출마시키며 양보한다고 정의당이 민주당의 지역구 선거를 도와줄 것인가.

 

결국은 정의당을 과연 연대의 대상으로 여길 수 있는가에서 유시민 시장과 민주당 다수 정치인들의 이해가 갈리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정의당을 이 나라 이 사회의 진보와 개혁을 위해 얼마든지 함께 할 수 있는 연대의 대상으로 여기는 유시민 이사장과 정의당 또한 미래통합당과 전혀 다르지 않은 민주당의 개혁을 위협하는 적으로 여기는 민주당 정치인들의 입장의 차이가 이렇게 서로 전혀 다른 결론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정의당을 믿을 수 없다면 어렵더라도 정의당이 반대하는 비례연합에 참여해서 미래통합당의 1당도 저지하고 민주당의 1당도 이루어내고야 말겠다.

 

물론 이미 늦었다. 정의당은 물론 민생당과 녹색당까지 참여거부를 선언하면서 유시민 이사장의 말처럼 어떻게 해도 비례연합정당은 민주당이 대부분 지분을 차지하는 위성정당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더라도 민주당은 일방적인 비례의석 양보가 아닌 비례연합이라는 형태를 통해 선거의 승리를 꾀할 수밖에 없다. 자신감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사정을 유권자들에 설명하고 용서와 이해를 구한다면 그로 인한 리스크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토록 길게 치열한 논의를 이어왔던 것이었다. 전혀 관심없이 지켜보던 중도유권자들조차 민주당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사정을 언론의 보도를 통해 낱낱이 알게 되었다. 공당으로서 선거에서 패하여 국정운영을 안정적으로 할 수 없게 되는 것보다 두려운 일은 없을 것이기에 여당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유권자들에 창피하고 미안한 선택을 해야만 한다. 탄핵이라는 비상식적인 단어마저 어느새 익숙해졌듯 비례연합이라는 개념 또한 중도유권자들에게도 익숙해지게 된다.

 

그럴 자신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또한 민주당 다수 정치인들의 현실인식이기도 하다. 오히려 정치를 너무 오래 떠난 탓에, 오히려 정치의 중심에서 그 치열함과 처절함까지 모두 온전히 겪어 보지 못했기에, 그래서 판단이 선거만 오면 지나치게 무르고 일차원적이 된다. 무엇보다 정의당과 정의당이 대표하는 진보에 대한 막연힌 호감과 부채의식이 족쇄가 된다. 냉정하게 개혁을 경쟁하는 야당이고 야당 정치인으로서 정의당과 정의당 정치인들을 대하는 민주당과 역시 너무 다른 부분이라 할 것이다. 새삼 유시민이 어째서 정치인으로서 실패했는가 돌이키게 만드는 방송이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생각해 볼만한 내용들이 많았지만 결론에 이르러서는 역시나 유시민 이사장이구나 싶었다. 더구나 거의 방송 말미에 민주당의 의총 결과까지 전해진 탓에 보는 입장에서 꽤나 민망한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렇게 열심히 방송에서 떠들었는데. 유시민 이사장이라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선거는 유시민에게 묻지 마라. 선거는 유시민에게서 듣지 마라. 다만 또 하나의 가능성을 들은 자체는 의미가 있었다. 민주당이 잘 고민해서 결정하기를. 어떤 결정을 내리는 나는 기꺼이 따른다. 단, 정의당과 민생당에 투표하라는 말만 빼놓고. 아마 민주당도 너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겨야 한다.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