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연합정당 논란과 민주당의 책임, 비례연합정당의 명분과 취지는 어디로?
내가 그동안 이해찬 대표에 대해서는 비판을 자제해 왔었다. 어찌되었거나 당대표고 그만큼 경륜과 실력도 있으니 믿고 지켜봐도 괜찮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사소한 실수는 있어도 큰 문제는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 그런데 이번만은 좀 욕해야겠다. 어차피 이딴 식으로 욕이란 욕은 있는대로 쳐먹고 비례정당 만들 거였으면 차라리 대놓고 위성정당을 만드는 게 낫지 이 뭔 헛짓거리인가 하는 것이다. 최소한 그랬으면 갑질한다는 소리는 안 들었을 것 아닌가.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가운데 다수는 민주당이 아직은 진보에 한 발 걸치고 있다 여기고 있기에 지지하는 이들이 상당하다. 이념적으로 진보거나 혹은 진보에 우호적이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정의당과 같은 진보정당이 아닌 민주당을 통해 진보적인 정책들을 실현시켜 보고픈 지지자들일 것이다. 더불어 지난 선거법 개정 당시 소수정당의 원내진출을 위해 진입장벽을 낮추겠다는 취지에 동의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번 비례연합정당은 선거법의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한 미래한국당의 반칙을 저지하는 동시에 원래 취지대로 군소정당들이 원내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민주당의 이름으로 함께 열어주고자 하는 것이라며 반겼던 이들이었다. 그런데 결과가 어떤가. 차라리 위성정당을 따로 만들지 기껏 비례연합정당을 만든다 해놓고 있는대로 소수정당들만 자극하고 끝나고 말았다. 여기 어디에 미래한국당의 반칙을 저지하고 소수정당의 원내진출을 돕는다는 최초의 명분이 흔적이라도 남아있다는 것인가.
진보유권자는 물론 민주당 지지자 일부에게도 상당한 상처를 남긴 판단이고 결정이었다. 녹색당의 성소수자 비례후보를 문제삼은 것은 그럴 수 있겠거니 했었다. 아무래도 민주당 입장에서 중도층을 의식하자면 성소수자 비례후보가 부담스러울 수 있었을 테니까. 민중당 역시 주사파를 끔찍이 싫어하는 내 성향상 역시 이념논쟁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었겠다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설사 그렇더라도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한 시민사회 원로들이 참여했고 처음부터 비례연합정당을 주장해 왔던 정치개혁연합을 그런 식으로 폄훼하고 무시해서는 안되었던 것이었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다 해도 민주당 내부에서까지 반발을 불러 올 만큼 오만하고 명분없는 행동이었었다. 민주당 극성지지자들이야 좋아하겠지만 그 주변에 있는 지지자들은 어쩌겠다는 것인가. 당장 나부터 흔들린다. 저 새끼들은 진짜 믿고 지지해도 좋은 것일까?
물론 별개의 정당이다. 별개의 정당으로서 더불어민주당 역시 자기 이익을 챙길 권리와 명분이 있다. 그러나 그럴 것이면 처음부터 비례연합정당이란 형식이 아닌 독자적인 비례정당을 창당해서 내보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봐야 결국 민주당 입맛에 맞는 정당들만 골라서 사실상 민주당의 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례연합정당이란 이름으로 내놓겠다는 것 아닌가. 실제 합류한 정당들의 면면을 보니 그냥 민주당과 합당해도 괜찮겠다 싶은 정당들이 대부분이다. 설마 선거가 끝나고 그대로 비례연합정당 그대로 민주당에 흡수해야겠다는 계산에서 그런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이건 차라리 대놓고 꼼수를 부린 미래한국당보다 더 악질적인 더 저질스런 꼼수 속의 꼼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걸 괜찮은 전략이라고 양정철이 내놓았던 것은 아니겠지?
하여튼 처음부터 불안하기는 했었다. 막 한국에 들어와서 민주연구원장을 맡고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 이 인간 꽤나 맺힌 게 많구나 싶었다. 나름대로 실력도 있고 자신도 있는데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모두 억누르고 그동안 계속 해외를 떠돌아야 했었다. 비로소 기회가 주어졌으니 무언가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전형적으로 자기 재주에 취하고 공을 세우기에 급급한 인사의 모습이다. 그러니까 눈앞에 산이 보이니 산에 올라 위에서 굽어보며 공격하면 더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이란 섣부른 생각도 하게 되는 것이다. 승상이 보지 못한 것을 내가 보았다. 승상이 알지 못한 것을 내가 알고 있었다. 아니 설사 그 의도가 좋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시끄럽게 언론을 통해 보도되어서 민주당을 위해 좋을 것이 무엇이 있는가.
당장 모든 언론들이 물어뜯으려 달려드는 중이다. 기껏 출범시킨 비례연합정당은 그냥 친문 위성정당으로 치부된다. 그것도 꼼수로 모두를 속이고 다른 군소정당과 시민사회원로들마저 철저히 무시하고 오만하게 갑질한 결과 만들어진 정당이다. 가장 안좋은 형태로 가장 최악의 방식으로 비례정당을 만들고 만 것이다. 어느 놈 생각인지 일단 그놈 대가리부터 자르고 보자. 어느 놈 머릿속인지 그 뱃속부터 가르고 보자. 일처리를 어떻게 이딴 식으로 하는가. 양정철이면 양정철을 죽이고, 이해찬이면 이해찬을 죽여야 한다.
설훈의 말이 맞다. 이딴 식으로 할 것이면 처음부터 비례연합정당 같은 건 하지 말았어야 했다. 하려면 차라리 대놓고 당당히 비례정당을 만드는 쪽이 옳았다. 이래서야 정의당과 뭐가 다른가. 결과적으로 비례연합정당의 취지를 거부한 것은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그것도 더 안 좋은 더 비겁한 꼼수로. 너무 오래 해 쳐먹었다. 양정철은 너무 공백이 길었다. 생각할수록 화만 난다. 이런 꼴을 보자고 비례연합정당을 지지했던 것인가. 너무 더럽고 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