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채무논란과 개돼지론, 근대국민국가의 황혼에서
그동안 민주당에서, 그리고 이제는 집권했으니 정부와 여당에서 국민 개인에게 직접 이익이 돌아가는 정책을 주장하거나 혹은 실행하려 하면 반드시 따라붙는 비판이 있었다. 포퓰리즘이다. 한 마디로 책임있는 정부이고 정당이고 정치인이라면 국민에게 직접 이익이 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 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해 정부와 정당, 혹은 정치인 개인이 국민 개인에게 직접 이익이 되도록 행동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바로 국민에 대한 정치권과 언론, 지식인, 무엇보다 국민 자신의 인식을 보여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나라 경제가 발전하고 부강해져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근대 국민국가의 함정이다. 근대의 국민국가란 국민을 위한 국가가 아니다. 국가를 위한 국민이어야 하는 것이다. 원래 국민국가라는 자체가 근세 유럽에서 열강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었다. 다른 열강들과의 경쟁에서 더 많은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국민이라는 개념이 발명되었던 것이었다. 바로 어제까지 누가 왕이 되고 어디의 영토가 되었든 상관없이 달라는대로 세금만 내면 되었던 백성들이 자신이 속한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자발적으로 충성도 바치고 희생도 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근대의 국민교육이라는 것도 따라서 결국 국가가 필요로 하는 국민을 길러내기 위한 도구로써 시작된 것이었다. 국민 개인에게 국가를 주입하고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학습시킨다.
따라서 그런 국민국가에서 국민이란 단지 국가의 부국강병을 위한 수단이자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국민의 보람이란 오로지 국가의 강성함에 있는 것이다. 국민 개인의 행복이란 것 역시 자신이 속한 국가가 더 크고 더 강하고 더 부유해진 것을 확인했을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그렇게 되도록 헌신하고 희생해야 하며, 오로지 그것만을 만족과 보람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참국민이고 그렇지 못하면 비국민이다. 진짜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평소 잘 보지도 않던 종목인데 올림픽에서 금메달 땄다고 온 나라가 들썩이고 국민들은 흥분해서 눈물까지 흘린다. 경기에서 이기면 내가 이긴 것 같고, 경기에서 지면 내가 진 것 같다. 경기에서의 순위가 곧 자신의 순위인 것 같다. 심지어 그렇게 되기 위해 개인들은 스스로 노력하며 그렇지 못한 타인을 질책하며 격려한다. 하긴 그나마 스포츠야 말로 국가주의를 가장 건전하게 발산할 수 있는 대상일 것이다. 차라리 총칼 들고 전쟁하기보다 스포츠를 통해서 이기든 지든 자신의 투쟁심을 드러내고 해소시킨다.
이른바 개돼지론인 것이다. 국민이란 단지 개돼지다. 국민이란 단지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목적이 아니다. 수단이고 도구다. 국가채무와 관련한 논란의 배후다.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저항감의 정체다. 어째서 국가가 국민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가. 희생이랄 것도 없는 국가가 빚을 내가며 국민 개인의 소득과 소비를 책임져 줘야 하는 이유에 대한 의문이다. 오히려 국가를 위해 국민이 빚을 내면 되는 것이다. 그동안 해 온 대로 카드빚을 내고, 은행대출을 받고, 그렇게 끊임없이 빚을 내가며 국가경제를 위해 내수를 지탱하는 것이야 말로 국민이 해야 할 역할인 것이다. 기업의 자금줄을 위해서라도 건설경기를 살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아파트 가격도 올라야 하고, 오른 아파트를 사려 하면 개인이 더 많은 빚을 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야 국가의 경제가 산다. 국가가 산다. 그런데 감히 국민을 위해 국가가 빚을 져가며 소득을 올려주고 소비를 늘려주겠다 말한다. 과연 논리적으로 성립이 되는 것인가.
그래서 정작 정책의 수혜를 받아 소득이 오른 노동자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다. 전체 5분위 가운데 2, 3, 4분위의 소득이 올랐고, 더구나 그 가운데는 소득수준이 떨어진 만큼 오른 사람들도 적지 않았었다. 고용률도 오히려 전보다 더 나아진 상황이다. 하지만 그런 노동자들에게조차 죄책감을 강요한다. 그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있다. 소득이 줄어든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소득이 줄어든 사람들을 위한 정부의 재정지원마저 비판한다. 정부의 재정 역시 국민의 세금이다. 차라리 소득이 늘어난 사람들의 임금이 오르지 않았다면 들어가지 않았을 세금이다. 그러므로 당신들 책임이다. 당신들이 토해내야 한다. 당신들이 거부해야 한다. 정당한 자신의 노동의 댓가일 터임에도.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그만한 임금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소득주도성장, 그 가운데서도 최저임금인상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된 논리다.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과연 그만한 임금을 받을 자격이 되는가. 그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은가. 그쪽이 자신의 자격이나 실력에 걸맞는 수준일 것이다. 그런데 너무 많은 돈을 받고 있다. 너무 많은 돈을 받는 나머지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 나라경제도 피해를 보고 있다. 다만 가끔 솔직해질 때도 있다. 아마 한국경제의 기사였을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으로 기업의 순이익이 줄어들었다. 기업의 순이익이 나라경제이고, 국가재정의 흑자가 곧 나라의 경쟁력이다. 그에 비하면 국민 개인이 받는 임금이나 소득따위 무엇이 중요한가.
한 마디로 세계의 충돌인 것이다. 국민이 단지 국가를 위한 수단이었던 근대국가와 국민이 아닌 시민이 주체가 되는 현대 시민사회와의 충돌인 것이다. 오히려 국가야 말로 국민을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국민을 위한 도구여야 한다. 그것이 문재인 대통령이 주장한 포용국가론의 요체다. 보수언론과 야당, 정치인, 지식인, 심지어 다수 국민들이 주장하는 근대국민국가와 정확히 대치되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미 군사독재시절부터 관성에 익숙해진 공무원들에게 지독히도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일 수 있다. 국민을 도구로 수단으로 여기다가 국민을 목적으로 여기고 정책을 펴야 한다. 국가를 위해 국민을 이용하고 동원하는 것이 아닌 국가가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국민이 빚을 내기보다 차라리 국가가 빚을 내서 국민을 대신해서 내수를 부양한다. 그냥 국민더러 알아서 빚내서 소비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금리를 인하하고, 그래서 화폐가치를 조정하고, 그래서 규제도 풀어야 하고. 특히 아파트 규제도 풀어야 하고.
솔직해져야 하는 것이다. 과연 당장 내 주머니가 텅텅 비었는데 국가의 경제규모가 얼마고 무역흑자가 얼마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고보면 내가 참여정부를 싫어했던 것도 당장 내 지갑과 통장잔고가 안타까운 지경이었기 때문이었다. 경제는 좋다는데 실감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당장 자기 사정이 어려워지니 정부부터 욕하고 보는 자영업자나 경영자들의 입장도 이해하는 편이다. 당장 내게 도움이 되어야 정부지 내게 도움도 되지 않는 정부가 무슨 소용인가. 아무리 나라가 잘살고 강해져도 내가 잘살고 편해져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오른 임금이 중요한 것이고 그로 인해 편해진 일상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현정부를 지지해야 한다. 나를 위한 국가고 나를 위한 정부고 나를 위한 정치여야 한다. 그것이 표퓰리즘인가.
물론 차이는 있다. 과연 그것이 정당한 권리인가 아니면 특별한 시혜인가. 정부의 이름으로 베풀어진 은혜인가, 아니면 원래 자신의 것이었어야 할 당연한 권리인가. 문재인 정부라서 문재인이라는 개인이나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정당으로 인해 내가 부당하게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원래 자기들의 권리가 아닌데도 문재인 개인과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집단에 의해 부당하게 이익을 보고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포퓰리즘이다. 정당한 권리라 생각하는 내게는 당연한 정책일 수밖에 없다. 실제 최저임금인상에 반대하는 노동자 가운데서도 정작 그로 인해 오른 월급은 정당한 자신의 권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다. 내가 일하는 만큼 이 정도 임금은 원래 받았어야 한다. 아니 지금도 적다. 하지만 그것을 누구도 어느 언론도 학자도 말해주지 않는다. 아직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너무나 낯선 개념인 때문이다.
그야말로 압축성장인 것이다. 경제 뿐만 아니라 사회도 역사도 수 백 년 세월을 수 십 년 사이, 아니 최근 십 수 년 사이 크게 압축해서 성장해가고 있다. 근대국민국가에서 현대시민사회로 전환되어 간다. 그 과도기다. 그리고 과도기에 어울리는 충돌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가를 위해 국민이 희생해야 하는가, 국민을 위해 국가가 희생해야 하는가. 국가를 위해 국민이 빚을 내야 하고, 혹은 국민을 위해 국가가 빚을 내야 하는가. 국가의 이익과 경쟁력이 개인의 삶보다 더 우선한 가치를 가지는가. 아는 사람은 지지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영영 이해하지 못한다.
노동을 통해 오른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그 임금으로 생활하고, 그로 인해 일자리를 잃었다면 정부가 일자리를 다시 찾을 때까지 지원한다. 충분치 못한 임금에도 나머지는 정부에서 개인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인 복지를 통해 기본적인 것들을 해결해준다. 무엇보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 걸맞는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 그것이 소득주도성장이고 포용국가일 텐데. 어렵다. 항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