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2009년 누가 봐도 정치보복을 의심할만한 노무현에 대한 강압적인 수사에 대해 한겨레와 경향은 침묵하고 있었다. 오히려 정부와 검찰에 편승해서 노무현을 난도질하는데 앞장서고 있었다. 시민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언론이지 않은가.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이념과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이른바 민주화진영의 언론이 아니었는가. 진보라고는 않겠다. 그런데 정권이 주도한 보복성 수사에 받아쓰기로만 일관하며 더 비열한 공격까지 일삼았다.


이번 KBS에서 음식평론가 황교익씨에 대해 방송출연을 금지한 것은 엄연한 방송차원의 블랙리스크였다. 단지 개인의 지지후보를 이유로 방송출연을 무기삼아 강제한 것이었다. 마땅히 그에 대한 항의차원에서 방송출연을 거부하기로 한 것은 의논할만한 행동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정작 문재인의 출연거부에 대해 다른 의도가 있어 그런 것은 아닌가 의심하는 기사를 공공연히 내놓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그로 인해 KBS의 블랙리스크는 사라지고 문재인의 방송출연거부와 그에 대한 정치적 의도만이 남는다. 경향신문이 추구하는 이 사회의 상식과 가치는 그런 것이었는가.


훨씬 오래전에는 워낙 노무현이 잘못하는 게 있어서 언론으로서 당연히 비판하는 것이라 여겼었다. 나 역시 노무현의 정책들에 대해 반감이 적지 않았으므로. 참고로 노무현 죽었을 때도 나는 노무현을 위해 눈물 한 방울 애도 한 마디 보내지 않았다. 죽었다고 살았을 때와 평가나 대우가 달라지는 것은 내 캐릭터와는 맞지 않는다. 죽었어도 싫은 인간은 싫은 거고 마음에 안들면 마음에 안드는 거다. 인간 노무현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나의 인식은 딱 그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노무현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한겨레의 보도는 정상을 훨씬 벗어난 것이었다. 그보다 한참 뒤에 놈현관장사라는 표현이 지면에 등장하면서 혐의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내가 한경의 친노에 대한 증오를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지난 새정연의 분당사태에서였다. 어떻게 봐도 명분은 문재인에게 있었다. 안철수와 비주류가 아무 명분없이 개인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당대표를 흔들고 혁신을 좌절시키려 한 정황은 너무 명확했다. 그러다가 마음대로 안되자 당을 깨고 나가 딴살림을 차리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한경의 논조는 어떠했는가. 다른 건 몰라도 정당정치의 기본을 안다면 어떻게도 안철수와 탈당파들을 비호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들이 추구하는 상식과 가치란 그래서 과연 무엇이었을까.


잘못해서 비판하는 것이라면 잘하는 것에 대해서는 칭찬해야 한다. 명분이 있고 원칙에 입각해 행동하는 것이라면 그를 응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중립이다. 그래서 더 나쁜 것이다. 안티조선을 주장하던 이들이 내세우던 논리가 무엇이던가. 정파적으로 기사를 쓰면서 정작 중립을 가장한다는 것이었다. 중립적인 언론이란 존재할 수 없으므로 차라리 자신의 정파성을 전면에 내세워 오해를 최소화할 수 있게 하라. 그러면 한경은 어떤가.


만일 한경이 진보언론이라서 민주당과 친노 - 이제는 친문을 비판하는 것이라면 역시 보수성향의 국민의당이나 민주당내 비주류에 대해서도 비슷한 입장을 보여야 한다. 오히려 친노친문보다 더 보수적인 것이 이들 민주당내 비주류들이었다. 하지만 과거 여러 사례들에서 보듯 반드시 진보적인 의제에 대해서만 친노친문과 적대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그들이 그렇게까지 친노친문을 혐오하고 배척하려는 이유는.


오마이는 솔직히 모르겠다. 거의 관심을 가지고 기사들을 훑어 본 적이 없어서. 아주 잠깐 오마이에서 살았던 적이 있지만 그때 받았던 인상이 상당히 별로였다. 전문성도 없고 기사의 깊이도 낮다. 현장성은 나름 괜찮지만 그 이상 의미를 부여할마난 기사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까만. 어쨌거나 묻고 싶은 것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정의와 가치는 무엇인가고. 증오 말고. 혐오 말고. 비토 말고. 항상 궁금했다. 기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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