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1980년대 말이었을 것이다.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노동현장에서 파업이 불길처럼 번져갈 때 한겨레였던가 파업노동자의 가족과 인터뷰한 기사를 낸 적이 있었다.


"노동자도 국민이다. 어째서 언론들은 나라경제만 걱정하고 국민인 자신들의 사정은 외면하는가."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을 것이다. 최저임금이란 그저 용돈이나 버는 아르바이트에게나 주어지는 것이다. 아니면 그저 허드렛일이나 하는 비천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하긴 후자의 경우도 문제다. 어째서 청소하고 식당일하는 사람들은 지금 오른 최저임금조차 받아서는 안되는 것일까? 그것을 과분하다 여기는 것일까?


사실 현실에서는 상당수 노동자들이 그 알량한 최저임금마저 감히 언감생심인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다. 그 가운데는 이미 결혼을 하고 자식까지 둔 가장도 있고, 자신이 버는 수입이 가계수입의 전부인 경우까지 적지 않다. 결혼을 앞두고 있다면 장차 결혼까지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걱정해야 하고, 이미 결혼한 뒤라면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기를까 근심에 아이를 가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나와는 다른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다. 그냥 나와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다수의 개인들이다. 국민들이다. 그래서 빚을 내가며, 자신의 삶과 행복을 포기해가며 그들은 그렇게 억지로 발버둥치며 현실을 버티고 있다. 그들에게 최저임금이란 다른 무엇도 아닌 단지 생존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래서 어이없는 것이다. 오르기 전 최저임금으로 한 가계가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지금 오른 최저임금으로 어떻게 한 가계가 다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누구도 제대로 관심을 가지고 살피지 않는다. 최저임금을 올리니 사용자의 수입이 준다. 사용자의 수입이 줄어드니 물가를 올려야 하고 고용을 줄여야 한다. 그것은 사용자의 입장이다. 바로 그 사용자의 입장을 위해 하루 10시간 넘게 고용되어 일하면서 적은 임금과 열악한 대우만을 일방적으로 강요당해야 했었다. 자신의 삶도 없이, 가족이나 인간관계마저 포기한 채. 그것이 과연 정상인가 하는 것이다. 차라리 최저시급이 오르더라도 합리적으로 근무시간을 줄인다면 수입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 시간에도 불이 켜진 식당들이 있다. 손님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문을 여는 가게들이 있다. 주인 혼자라면 괜찮다. 그런데 직원이 있다. 직원이 가게 안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바로 저임금에서 비롯된 비효율의 대표적인 예다. 낭비인 것이다. 어차피 노동량과 생산성은 항상 비례하지만은 않는다. 하지만 저임금으로 인한 노동의 착취가 그것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듯 보인다. 싼 임금에 노동자를 오랜 시간 부림으로써 장기간 노동으로 인한 비효율로부터 비용을 줄여준다. 그것이 경제에 도움을 준다 생각한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시간과 장소에서 필요한 만큼만 고용해서 써야 한다. 누적된 모순들이 표면화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어차피 그동안도 한계를 느끼고 끊임없이 소비가 줄어드는 가운데 물가가 오르고 고용도 따라서 줄어들고 있었다. 그래서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는 것에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노동자들만 조금 더 희생해주면. 어차피 얼마 벌지도 못하는 노동자들이 조금만 더 희생하고 양보해 주었으면. 하긴 자본주의란 곧 인간의 이기심이기도 하다. 나의 이익을 위해 네가 희생하라. 내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네가 양보하라. 결국 가장 힘없는 주변부의 약자들에게 그것은 강요가 된다. 잘리기 싫으면 더 적은 임금에 동의하라. 일하고 싶으면 더 열악한 처우에도 합의하라. 그것은 다시 국가경제라는 도덕적 명제로 이어진다. 개인은 국가경제를 지키고 살리는 전사들이어야 한다. 비열한 이기심을 숨기는 가장 확실한 도구며 수단이다. 애국심이란 것은.


아무튼 결국은 최저임금이나마 받고 살아가야 하는 다수 개인들에게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자신들만이 아닌 이미 이루었거나 장차 이루게 될 가족의 삶과 존엄, 행복과도 관계된 문제이기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미 한계에 이른 다수 가계들을 살리기 위한 아직은 너무도 미미한 조치들이기도 하다. 그래도 지금 오른 최저임금으로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을 그들은 누릴 수 있을 것인가. 사회보장마저 제대로 갖추어진 대한민국 사회에서.


직접 혜택을 입는 입장이니 바로 느끼게 된다. 소비에 주저함이 줄어들었다. 돈을 쓰는데 그래도 좀 더 당당해지고 자연스러워졌다. 그래봐야 한 달에 몇 만 원 정도다. 그동안 아끼느라 쓰지 못한 돈들이다. 그나마 혼자 사는 나에 비해 가족까지 있다면 그 몇 만 원이 무엇보다 반가운 단비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소비한 돈은 어디로, 누구에게로 돌아갈까?


하지만 당장 보이는 것이 그러니까. 원래 자영업에 겨울은 비수기다. 더구나 이렇게 날까지 추우면 나가기보다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다. 앞서 말한 모순들이 불거지고 바로잡히는 시간들도 필요하다. 언론이 옆에서 부추기기까지 한다. 언론이 가장 큰 문제다.


아직은 여력이 있다. 아직까지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 볼 수 있는 최소한의 여유가 있다. 그나마도 사라지면 이조차 시도조차 할 수 없게 될 지 모른다. 여러 문제가 걸려있다. 가계부채와 특히 인구감소의 문제가 시급하다. 너무 한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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