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그동안 몇 번이나 반복해서 떠들어 왔지만, 원래 혐오란 이상을 전제하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모델을 만들고 거기에 대상을 끼워 맞추는 것이다. 이를테면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해서 문제고 남아도 문제다. 딱 맞아 떨어졌을 때 그는 훌륭하고 선량한 대상으로 존중받을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당연히 도려내고 잘라내고 잡아 늘려야 한다.


독일인들이 유대인을 학살하면서 내세운 명분이 그랬고, 백인들이 흑인을 차별하면서 내세운 명분도 그랬었다. 남성들이 여성을 멸시하면서 내세운 명분도 다르지 않았었다.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이나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같은 것은 깡그리 무시한 채 자기가 세운 기준으로만 오로지 상대를 판단하고 그 결과를 강요하려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정의롭지 못하다. 그런 그들을 차별하고 학대하는 것은 따라서 정의일 수 있는 것이다. 오로지 가장 정의로운 이들만이 당연하게 타인을 차별하고 멸시할 수 있다.


베지테리언에도 여러 단계와 종류가 있다. 서로 생명을 존중하는 방식도 범위도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고양이나 개와 같은 반려동물만을 다른 동물보다 우선해서 보호하려 한다. 각자 자기의 이유와 기준이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범위와 한계 안에서 추구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생명을 존중하려면 식물까지. 동물을 보호하려면 바퀴벌레나 모기까지도. 그냥 아무 주장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서로의 방식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퀴어 축제에서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과격한 표현까지 서슴지 않는 것이다. 판단은 너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한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다양성이다.


정치와 관련한 여러 논란들을 보면서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이놈이나 저놈이나 같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르지 않다. 정도의 차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여러 차이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어차피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손가락 하나만 삐져 나와도 바로 잘라 버려야 한다. 이상적인 모델을 만든다. 이상적인 정책과 정부와 정치인을 설정한다. 그리고 모든 정책과 정부와 정치인들을 그를 기준으로 재단하여 판단한다. 정치혐오증에 빠져드는 이유다. 그리고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어떤 주장들에 쉽게 휩쓸리는 이유다. 어차피 가치란 완벽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 가치판단을 배제한 직관과 본능이 가치를 대신하는 것이다. 싫다. 기분나쁘다. 거슬린다.


무지에는 두 가지가 있다. 몰라서 무지와 알려 하지 않아서 무지다. 달리 후자를 나태라 부르기도 한다. 모르면 배우면 된다. 알려 하지 않으면 가르쳐 줄 수도 없다. 무지한 자가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 정확히 나태한 자가 그것을 신념으로 착각하면 문제가 된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히틀러다. 현실에서 자신의 이상만을 강요하며 이상에 대한 좌절을 감정과 충동으로 대신하려는 대부분이 그래서 그 히틀러와 닮아 있는 것이다. 주장하는 바가 같다. 싫다. 밉다. 거슬린다. 그러니 배제하자. 그러니 쫓아내자. 그러니 혼내주자. 


재미있는 것은 정작 지지자들마저 그런 주장들에 무슨 대단한 의미라도 있는 양 달라붙어 아양을 떨어댄다는 점이다. 어차피 들을 생각도 없는 사람들에게 기껏 설명하며 그들의 기준에서 납득시키려 애쓰고 있다.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시각에서 그들을 설득하려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저들도 자신과 같을 것이다. 같은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들을 생각이 없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한 가지 자신이 내세운 이상을 기준으로 자신의 정의와 우월함을 입증하는 것이다. 사람을에게 과시하고 인정받는 것이다. 그런 욕구를 그들이 충족시켜주고 있다.


어차피 말을 해도 들을 생각이 없으면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설득해도 처음부터 들을 생각이 없는 사람이면 설득같은 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혐오다. 유대인의 현실이 어떻든, 흑인의 현재가 어떻든, 여성들의 사정이 어떻든, 나는 내 기준으로만 오로지 그들을 판단한다. 논쟁이란 의미없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 깨달은 사실이다. 불관용에 관용은 없다. 아주 뒤늦게서야 그 진짜 의미를 깨달았다. 민주주의란 어쩌면 꿈에 지나지 않을지도. 서글프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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