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지향이자 경향이다. 자유주의란 모두가 자유롭게 하자는 것이다. 모든 구성원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완전한 자유가 모든 구성원을 완전히 자유롭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썰전'에서 유시민과 박형준이 토론한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자유'를 앞세운 세계의 수많은 지식인, 사상가, 정치가들의 논쟁, 혹은 투쟁 또한 그런 가운데 있다. 더 자유롭게 함으로써 인간은 자유로워지는가. 자유를 제약함으로써 더 많은 인간을 더 많이 자유롭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한다면 어디까지 허용해야만 하는 것인가. 자유로 인한 부자유까지 허용해야만 하는 것일까? 개인이 자신의 자유를 임의로 포기하는 것까지도 완전히 허용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를테면 일정한 대가를 받고 자신을 다른 사람의 노예로 팔기로 한다. 자유가 부자유를 허용하는 모순이다. 


바로 자본주의가 그렇다. 자본주의는 개인과 자유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발달은 자본을 소유한 자본가와 그렇지 못한 노동자 사이의 불평등한 수직적 관계를 만들어낸다. 과연 완전히 자유로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히 고용된 노동자들에게 자유란 존재하는가. 단지 직업을 선택할 자유만 있을 뿐 자신을 고용한 사용자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자유는 없다. 그래서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


자유와 평등은 별개가 아니다. 가장 완전한 자유는 가장 평등한 자유다. 자유주의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도 모든 구성원이 최대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회일 것이다. 모든 구성원에게 평등하게 자유가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자연적으로 다른 강제나 개입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자유가 불평등하다면 그마저 평등하게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 자유를 쟁취할수도 누릴 수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외부의 강제나 개입이 관여해야 한다. 자유주의와 국가가 만나는 지점이 이것이다.


개인이 스스로 자유로울 수 없다. 스스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다. 무조건 자유를 방치하기만 해서는 더 자유로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사회는 나뉠 수밖에 없다.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조차 자유롭게 만들어야 한다.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마저 자유로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를 위해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나서야 한다. 


그러니까 '주의'란 국가와 결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가주의 '자유'가 아니라 자유주의 '국가'인 것이다. 자유주의 국가란 구성원이 모두 평등한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국가를 뜻한다. 자유로울 수 있는 특정한 개인만을 자유롭게 내버려두는 것은 그냥 아무 국가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전제왕조에서도 특정인들은 자유로웠었다. 봉건사회에서도 보다 자유로운 소수는 존재했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일부는 최대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모든 개인이 평등한 사회적 정치적 권리를 공유할 수 있는 체제를 뜻하는 것이다. 바로 구성원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지는 정치적 사회적 책임과 의무, 권리야 말로 민주주의의 기본전제인 것이다. 모든 개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지는 자유가 곧 그들을 민주주의 시민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자연 그대로 자유롭게 방치한다고 알아서 이루어지는 것인가.


그래서 자유롭기 위해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 더 자유로운 사람으로부터 남는 자유를 덜어내고 덜 자유로운 사람들에게 모자른 만큼을 더해준다. 개인이 선택했어도 그것이 국가가 원하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자유의 가치를 벗어나면 엄하게 강제하기도 한다. 자신은 오로지 자신의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런 원칙을 어기고 자신의 자유마저 상대에게 임의로 양도해서는 안된다. 어떤 자유주의도 개인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까지 온전히 개인의 자유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것마저도 인정하라는 것이 자유주의 아닌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주장인 것이고.


당장 자본주의만 해도 대한민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던가. 언제부터인가 보이던 기업만 계속 보이고 있다. 당장 옆나라만 해도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새로운 가능성이 도전장을 내밀고 어느새 굴지의 기업 사이에서 당당히 경쟁하는 모습이 적잖이 보이고 있건만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창업과 도전은 곧 좌절로 이어질 뿐이다. 거의 무한에 가까운 재벌의 자유가 새로운 가능성의 시장진입 자체를 막고 있는 것이다. 자유로운 시장경제가 정작 시장의 자유를 빼앗고 있다. 자유로운 시장경제가 중소기업과 새로운 창업자들에게서 기회를 빼앗고 있다. 누구를 위한 자유이고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 그리고 그 자유가 궁극적으로 모두를 자유롭게 만들 것인가.


자유주의자 유시민과 자유주의자 박형준의 추구하는 지향의 결정적 차이인 것이다. 모두를 자유롭게 할 것인가. 자유로운 소수를 더 자유롭게 만들 것인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자유의 일상화인가. 아니면 소수의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특별한 자유인가. 그래서 후자를 자유지상주의라 부른다. 자유가 인간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 역사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임을 사실로써 가르쳐주고 있다.


어째서 자유주의자가 국가의 개입을 정당화하고 강조하는가. 자유가 아닌 '주의'이기 때문이다. 그 주의가 지향하는 바의 차이인 것이다. 그래서 국가는 구성원이 모두가 최대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갖는다. 모순되지 않는다. 우습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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