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 역시 문재인의 정책이나 이념에대해 전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나마 가장 가깝고 가장 낫다고 여기기에 지지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이미 문재인과 나와의 사이에는 상당한 정치적 거리가 존재한다. 그러니까 어차피 서로 다른 것 조금 더 다르거나 조금 덜 다르거나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연 그렇게 해서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가 어디이고 그것을 내가 동의할 수 있는가 아닌가.


이재명과는 또 경우가 다르다. 이재명은 무려 자기당의 지지자들을 정면으로 겨누고 공격했었다. 정당민주주의에서 정당정치인이 단지 자기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자기 당의 지지자들을 적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필 그것이 과거 정통 시절의 전력마저 떠올리게 만든다. 대통령이 되어 사회를 바꾸는 것 만큼이나 정당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이건 어떻게 해도 양보할 수 없는 절대의 원칙이다.


문재인과 안희정의 각축을 보면서 오히려 마음이 느긋해져서 뭐라도 한 마디 거들 의욕도 의지도 다 시들해져 버린 이유다. 결국에 도달할 곳은 같다. 안희정이나 문재인이나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같다. 단지 과정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조금 더 빨리 가고 조금 더 늦게 가고, 조금 더 멀리 돌아가고 조금 더 가깝게 질러가고. 물론 문재인이나 안희정 자신만이 아닌 주위에 포진한 인사들도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정치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자신을 돕는다면 그 만큼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런 만큼 어느 정도 주위의 요구가 정치에도 크든 작든 반영된다. 하지만 그런 점들까지 모두 감안하더라도 결국 근본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문재인을 지지하는 대부분의 민주당 표는 결국 안희정에게로 간다. 안희정을 지지하는 역시 많은 표들 역시 결국 다시 문재인에게로 돌아간다. 문재인의 주위에 모여든 사람 역시 문재인의 의지에 따라 안희정에게로 가서 그를 돕게 된다. 안희정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 또한 안희정의 의지에 따라 문재인을 돕게 된다. 주머니돈이 쌈짓돈이고 윗돌 빼어 아랫돌 괴는 셈이다. 그런데 누구를 더 지지하고 누구를 덜 지지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괜히 역선택하겠다 나서는 이들만 지금 헛짓하고 있는 셈이다. 문재인 싫다고 이놈 저놈 띄우나가 결국 안희정으로 돌아왔을 뿐이지 원래 출발점부터가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추구하는 목적 또한 비슷하다. 사소한 차이인데, 굳이 목숨걸고 문재인 떨어뜨리겠다고 지지할만한 정도는 아니다. 안희정이 선거전략을 잘 짰다. 민주당의 기존 지지자들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민주당의 외연을 넓혀 새로운 지지층을 만든다. 절반쯤은 사기다. 물론 결국 대통령이 되면 어쩔 수 없이 그리 할 수밖에 없는 필연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되어 특정 이념이나 정파만을 위해 정치를 했다가는 이명박근혜 꼴이 난다. 그것은 안되지 않은가.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근본적으로 크게 다른 것은 없다.


아무튼 마음이 느긋하다.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문재인이든 안희정이든. 물론 당장은 문재인을 지지한다. 하지만 안희정도 썩 나쁘지만은 않다. 그러므로 지금은 지켜본다. 선거라는 게 이렇게 마음 편한 것일 수 있으리라고는 전에는 감히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누가 이기든. 누가 후보가 되든. 그만큼 선거결과에 대한 자신의 리스크는 없다시피하다. 아주 좋다. 즐거운 나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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