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아예 폭삭 망해버리면 어쩔 수 없이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아무것도 없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면 막막한 만큼 각오도 새로 다지게 된다. 그러나 어설프게 망하면 그나마 남은 것에 기대는 마음만 더 커질 뿐이다. 더구나 머릿수도 여럿이면 남은 것들에 대한 욕심에 다른 생각은 할 수도 없다. 내가 먼저 먹지 않으면 다른 놈이 먹게 될 것이다.

열리우리당이 그래서 망했다. 이후 민주당이 그래서 안에서부터 지리멸렬했었다. 망하긴 망했는데 아직 호남이 남아 있었다. 호남이라면 민주당 깃발만 꽂아도 당선시켜 줄 터였다. 호남이나 호남출신이 많은 수도권 지역구에 민주당 이름으오 출마하면 어찌되었든 내 배지만큼은 지킬 수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호남에 엉덩이를 들이밀어 보겠다고 열린우리당을 깼던 것이었고, 민주당의 이름을 쓰게 된 뒤로는 그 얼마 안되는 당선확실한 지역구를 나눠가지겠다고 그리 싸워댔던 것이었다.

국민의당 분당도 결국 그 연장이라 할 수 있었다. 호남민 차지하고 있으면 민주당은 곧 망할 테고, 그러면 자기들이 다시 제1 야당으로서 야당세가 강한 지역구에 깃발을 꽂을 수 있다. 문제라면 그나마 호남마저 잃게 생긴 민주당이 드물게 필사의 각오로 선거에 임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여전히 그런 와중에도 계파질하는 인간들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 안심할 수 있는 선거구가 거의 없다시피 했던 당시의 절박함은 그런 구분마저 잠시 잊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당시 문재인 전대표가 있었다. 비로소 민주당은 당을 하나로 만들 리더십을 필요로 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내가 자유한국당의 내분이 오래 갈 것이라 예상하는 이유다. 여전히 20%가 넘는 지지를 받고 있다. 아직 자유한국당에 우호적인 유권자도 상당하다. 몇몇 곳은 그래도 보수의 이름으로 출마하면 당선가능성이 있다. 개혁도 좋고 혁신도 좋지만 그것들은 내가 가져야겠다. 우리가 가져야겠다. 그것만 가지고 있으면 배지는 지켜질 것이고 국회 한 구석에 자기 지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긴 완전히 폭망했는데도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하고 헛발질중인 바른미래당도 있다. 결사의 각오로 지금의 암울한 상황을 바꿔야겠지만 아예 희망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다 보니 손을 놓아 버린 것이다. 위기상황에 더 크게 역할을 했어야 할 리더들마저 손놓고 도망가 버렸다. 이제 이 당은 끝이다. 미래가 없다.

아무튼 그나마 절박한 상황에 당시 문재인 대통령처럼 구심점 역할을 해 줄 인물이라도 있으면 조금 사정이 나으련만, 그마저도 남은 지분 싸눔에 경쟁자로 여겨질테니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누가 대구와 경북을 먹는가. 누가 그나마 자유한국당에 우호적인 가능성 있는 지역구를 가져갈 것인가. 같은 보수라는 연대의식도, 같은 자유한국당이라는 동질감도 더이상 남아 있지 않다. 저 놈들이 죽어야 내가 산다. 저 놈들을 죽여야지만 내 몫이 늘어난다. 그동안 수많은 야권지지자들을 답답하게 만들던 민주당의 모습 그대로다. 전에는 그래도 보는 눈은 의식하더만 이제는 그런 것도 없이 그냥 아무렇게나 들이받고 본다. 다급한데 그런 다급함이 아니다. 당연히 반대편도 이대로 가만히 죽어 줄 수는 없으니 갈등은 깊어만 간다.

그렇다고 이런 혼란스런 상황을 수습할 인물이 자유한국당 안에 있는가. 자유한국당에 우호적인 인사들 가운데는 있는가. 오죽하면 탄핵당하고 유죄판결까지 받은 박근혜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 김성태에게는 짐이 너무 무겁다. 자유한국당의 누구에게도 지금의 짐은 너무 무겁기만 하다. 나는 좋더. 자유한국당은 마땅히 망해야 할 악 그 자체다.

오래전 기억을 떠올린다. 그래도 당권을 장악하고 대선후보가 되기까지 정동영은 나름대로 거물다운 수완을 보여주고 있었다. 손학규와 정세균도 크게 무리없이 복잡한 내부를 결속시키고 있었다. 그래서 더 내부싸움이 불거진 것도 있다. 당시 민주당에는 있었고 자유한국당에는 엊ㅅ는 것이다. 쌤통이다. 꼬셔 죽겠다. 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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