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보면 리선권이 북한의 최고권력자인 줄 알겠다. 남북관계에서도 북핵문제에서도 최종결정권자인 줄 알겠다. 부장급과 계약을 맺으러 갔는데 따라온 평사원이 말 몇 마디 잘못했다고 중요한 계약을 파토낼 것인가? 아니 설사 부장급에서 실수를 했다 하더라도 계약의 중요도에 따라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말이란 고작 그런 의미다. 김정은 자신이 한 것도 아니고, 더구나 대통령에게 직접 한 것도 아니고, 단지 사석에서, 어쩌면 센스없는 농담이라 할 수도 있는 말들을 가지고 어째서 아직까지 저리 난리들인 것인가.


더 재미있는 것은 이번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두고 일본의 총리와 외무대신이 쏟아내는 말들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 반응도 없다는 것이다. 자칭 보수언론이. 자칭 보수정당이. 고작해야 사석에서 장관도 겨우 건너건너 들었을 뿐인 개인의 사담에 대해서는 저리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공식석상에서, 심지어 대사를 불러놓고, 혹은 남의 국회까지 쳐들어와서 쏟아내는 말들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하다시피 하고 있다. 일본은 그래도 되고 북한은 그러면 안된다. 일본은 공식적으로 그래도 일본과의 관계를 걱정해야 하고, 북한은 사적인 대화라도 북한과의 관계를 끝장내야 한다. 일본이 상국인가? 아니면 일본이 우리의 동맹인가? 하물며 일본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식민지와 강제징용의 역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일본이 저러는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 정치인의 절반이 자신들의 편을 들어주니까. 대한민국 언론 대부분이 자신들의 편에서 써 줄 테니까. 그러니까 다른 나라들과 상관없이 한국에는 함부로 대해도 된다. 함부로 대해도 감히 자신들을 비판하고 나설 정치인도 언론도 없을 것이다. 있어도 대중은 잘 접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상에 일본의 입장만을 옹호하며 한국을 비판하는 자칭 이성적인 네티즌들이 넘쳐나고 있다.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이해하기보다 일본의 입장에서 일본과 사이가 틀어질 것만을 걱정한다. 그러니 한국따위 일본이 아무렇게 대하든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닌 사장이 저러는 것이다. 실권을 가진 전무가, 상무가 그러고 있는 것이다. 사담이 아니라 아예 공식적으로 우리회사 사장에게 저리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참으면 대등한 거래관계가 아니다. 그래서 하청이란 것일 게다. 뭔 지랄을 하든 뭔 막말을 하든 어찌되었든 거래를 중단할 수 없으니 끝까지 참아야 한다. 일본은 그런 상대인데, 정작 핵무기까지 가졌다는 북한은 아니다. 이것이 한국 보수의 수준이다. 정치인이든, 언론이든, 지식인이든, 아니면 국민이든. 나는 국민이 위대하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정말 뭣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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