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내로남불은 인간의 본능이기도 하다. 나에게 관대하고 너에게 엄격하고. 우리에 관대하고 남에게 엄격하고. 그렇게 나와 너와, 우리와 남과, 안과 밖을 구분하며 지키고 공격하면서 인간의 집단을 유지해 온 것이었다. 보편적인 인간이란 그런 점에서 인간의 의식이 고도로 확장되면서 그 나와 우리와 안의 경계가 그만큼 넓어진 결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현실이란 나일 것이고, 우리일 것이고, 이쪽의 안쪽일 것이다. 국가보다는 지역이, 직장보다는 학연이, 인간보다는 내 가족이. 원래 그렇게 만들어져 있는 것을 어쩌란 것인가.


과연 외국인이라고 내국인보다 더 많은 범죄를 저지르는가. 외국인의 범죄라고 내국인의 그것보다 더 흉악하고 잔인하기는 한가. 사실 이 부분은 난민을 받아들이자 주장하는 진보쪽에서 과거 주한미군 범죄와 관련해서 저지른 오류와 닿아 있기도 하다. 주한미군이라고 한국인보다 더 많은 범죄를 저지르고 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한미군이기 때문에. 외국인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라면 마땅히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범죄까지도 치러야 할 비용으로 여길 수 있을 테지만 외국인의 범죄는 굳이 지지 않아도 되는 외상처럼 여겨질 수 있다. 왜 굳이 남의 나라 군대까지 받아들여서 원래는 없었을 범죄까지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인가.


난민에 대한 대중의 반발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만 문제나면 세계적으로 대중의 여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소수의 양심적인 지식인이나 정치인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구성원들에게 외국인의 존재란 불필요한 이물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도적으로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은 좋지만 그로 인해 일어날 부작용까지 감당하고 싶지는 않다. 어쩔 수 없이 인간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 범죄이고 사고라면 자기들 집단 내부에서의 것들만으로도 충분히 성가시고 부담스럽다. 그것까지 자신들이 감당하고 싶지는 않다. 


난민들을 대상화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차피 같은 구성원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이 감당해야 하는 같은 구성원 사이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과는 달라야 한다. 나와도 우리와도 달라야 한다.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다. 자신들끼리라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범죄도 사고도 불협화음도 자신들과의 사이에서는 절대 드러나서는 안된다. 그런 난민이어야 한다. 그래서 엄격하게 조건을 단다. 난민이란 이래야 한다. 이런 난민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것은 자연인으로서의 난민이 아닌 자신들이 요구하는 철저한 대상으로서의 난민이다.


어차피 교통사고로 한 해에 죽는 사람만 수 천인데 과연 실제 있을지도 모르는 광우병에 대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닌가. 교통사고는 이미 존재하는 집단의 일상이다. 사실 자동차도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처음 보급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충돌과 갈등을 빚었었다. 어차피 한국인 사이에서도 일어나는 범죄지만 거기에 난민의 범죄까지 더하고 싶지는 않다. 굳이 더해야 할 필요는 없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자신들로서는 회피하고 싶다. 반드시 그럴 것이라서가 아니라 그럴지도 모른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을 거부해야만 한다.


그래서 설득이 되지 않는 것이다. 동의를 구하기도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민들은 인간이어야 하니까. 인간으로 살아가려 할 테니까. 하지만 난민을 받아들여야 하는 다수에게 난민이란 철저한 대상으로서 조건을 충족할 수 있어야 한다. 과연 실제 난민의 범죄가 기존 구성원의 범죄보다 더 많은가. 더 흉악한가. 그러니까 논리와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집안에 값비싼 도자기를 깼어도 가족이라면 한 번 화 내면 그만이지만 손님이라면 바로 변상 이야기부터 나온다. 거기다 대고 가족이든 손님이든 같은 인간이 아니냐 하면 과연 설득이 될 수 있을까.


물론 그럼에도 난민들에 대해 인류보편적인 온정과 배려를 베풀어야 한다는 주장 자체가 아주 의미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라고 난민으로 인한 문제 자체를 아예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같은 인간으로서 치러야 할 비용으로 여기는 것이다. 인간이 사는 곳에서는 어디나 범죄와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난민도 그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일부조차 굳이 외부의 것들을 우리 안으로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그런 식으로 인류의 의식은 확장되어 온 것이지만 그럼에도 인간의 동물로서의 본능은 개체 안에 여전하다.


주장하는 바는 인정한다.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만 된다면 참 좋겠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우려하는 감정들도 아주 부정하지는 않는다. 갑자기 내가 머무는 주위에 이방의 문제들이 들어올 경우에 대한 우려와 걱정들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누가 옳다 그르다보다 그럼에도 인간이라는 한계와 가능성의 일상적인 충돌에 지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를 본다. 난민 인정이 쉬운 나라가 아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아마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얼마나 중용적으로 그러나 현실을 고려해서 현명하게 판단을 내릴 것인가.


서로 다른 의견이 충돌하며 서로 다른 가치관들이 갈등을 빚는 것은 어쩌면 건강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는 지금보다는 더 나은 답을 가능성도 생겨난다. 그런 점에서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이라면 아예 다른 주장 자체를 못하도록 입을 틀어막으려는 시도들이다. 논쟁은 좋다. 논란도 괜찮다. 하지만 아예 주장 자체를 배제하는 것은 - 더구나 그것이 다수의 이름을 빌린다면 단순한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갑작스런 난민의 유입에 대해 우리 사회는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해야만 하는가. 흔치 않은 기회다. 어떤 식으로는 사회는 그를 통해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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