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은행이라면 돈 빌려주는 곳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지만 역시 은행은 돈을 맡아두는 곳일 것이다. 현금을 쌓아 둘수도 직접 들고 다닐 수도 없을 테니 은행에 일단 맡겨두었다가 필요할 때 찾아 쓴다. 그리고 일정 기간 이상 돈을 은행에 맡겨 놓으면 알량하나마 이자도 받을 수 있다. 아예 이자를 목적으로 일정기간 정기적으로 정해진 금액을 예금하는 상품도 있을 정도다. 그러면 묻는다. 은행은 어떻게 고객이 맡긴 돈을 불려 이자까지 지급할 수 있는 것일까?

 

이자만이 아니다. 은행에 속한 임직원들의 급여며 은행지점들이 지불해야 하는 임대료나 각종 공과금등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만 해도 상당할 것이다. 그런데도 주주에게 배당까지 하고 예금주들에게는 적으나마 이자까지 지급한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물론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고객이 맡긴 저금을 종잣돈으로 빌려주거나 혹은 직접 투자해서 이익을 남기는 것 또한 은행의 일이기도 하다. 아니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쪽이 더 중요한 역할이자 기능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자본이란 곧 생산수단이며 은행은 그 자본을 공급하는 창구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필요한 자본을 보다 수월하게 확보할 수 있게 되면서 더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경제활동이 가능해진다. 은행을 포함한 금융이야 말로 자본주의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은행 뿐 아니라 대부분 금융이라고 하는 자체가 고객의 돈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구조인 것이다. 보험이든 증권이든 기본은 거의 같다. 그렇다면 결국 고객이 맡긴 - 다시 말해 언젠가 고객에게 돌려줘야 할 돈으로 사업을 하고 있으니 은행은 고객에게 빚을 진 것인가. 근본적으로 맞다. 그래서 은행이 부실화되거나 심지어 파산하게 되면 맡겨놓은 자기 돈을 찾으려 사람들이 몰려들고는 하는 것이다. 이때 돈을 돌려받기 위해 은행을 찾은 고객들은 채무자들인 것이다. 갚지 못하면 결국 빚이 된다. 하지만 어째서 은행에 대해서는 빚을 진다 하지 않고 돈을 맡겨둔다 하는 것일까. 빌려준다 하지 않고 저금한다 말하는 것일까. 한 마디로 떼어먹힐 일이 없다는 확신 같은 것이다. 은행이 건재한 이상 언제 어느때든 자기가 필요하면 다시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원래 고객이 받는 이자보다 은행이 대출로 받는 이자가 항상 더 높다.

 

국채란 역시 빚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국채의 채債는 빚 채인 것이다. 일단 빌렸으면 언젠가 돌려주어야 한다. 그래서 문제가 된다. 당장은 필요해서 돈을 빌렸지만 언젠가는 그 돈을 갚지 않으면 안된다. 당장은 빌린 돈으로 어떻게 필요한 곳에 쓸 수 있었지만 나중에 그것을 갚을 때 부담이 될 지 모른다. 하지만 그 돈을 빌리고 갚아야 하는 대상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무엇으로 빌리고 무엇으로 갚는가. 외채와 다르다. 외국에서 외화로 빌린 빚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다. 언론이 그동안 집요하게 장난쳐 온 부분이기도 하다. 보유한 외화가 부족하면 자칫 나라가 부도날지도 모른다. 이미 1997년 IMF사태로 아직까지 트라우마로 남아있을 정도로 직접 겪어 본 바 있었다. 혹시 그리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넘은 공포마저 그래서 강하다.

 

그러나 국채란 자국의 화폐로 자국의 국민을 대상으로 빌리는 빚이란 것이다. 때로 그 대상이 중앙은행이 되면 국채는 중요한 통화정책의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들이는 만큼 정부는 더 많은 화폐를 시장에 공급할 수 있다. 이때 정부가 시장에 공급하는 화폐 역시 당연히 자국의 화폐인 것이다. 그래서 경제후진국의 경우 정부의 무분별한 국채발행으로 인해 급격한 인플레이션을 겪기도 한다. 화폐의 공급이 많아지면 그만큼 화폐의 가치는 떨어지고 물가는 오르게 된다. 그래서 누구에게 빌리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중앙은행에서 빌린다면 통화정책일 것이고, 시장에서 빌린다면 재정정책일 것이다. 시장이란 곧 국민이다.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결국 발행국의 화폐로 바꾸어 국채를 사야 하기에 그 돈은 모두 국민의 자산으로부터 나오게 된다. 그러면 그 돈을 돌려주어야 할 대상은 누구이겠는가. 정부가 빚을 낸다면 누가 그 빚을 돌려받게 될 것인가.

 

국민인 것이다. 돈을 빌리는 것도, 그 돈을 갚아야 하는 것도 국민인 것이다. 빚을 지는 것도 국민에게 지는 것이고 빚을 갚는 것도 국민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결제는 자국의 화폐를 단위로 이루어진다. 기축통화고 뭐고 상관없다. 기축통화국만 자국의 화폐로 국채를 사고 파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정부가 빚을 지면 그만큼 장래에 국민 가운데 누군가 그 빚을 받아내게 된다. 그러면 그 돈은 어디로 가겠는가. 정부가 아예 빚을 갚을 능력이 안된다면 모를까 정부에 돈을 빌려준 만큼 결국 언젠가 이자까지 포함해 돌려받게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과연 정부는 지금 돈을 빌린 만큼 다시 갚을 능력이 되는가. 만일 갚을 능력이 된다면 이것은 빚이라기보다 돈을 맡겨두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투자다. 국채란 그래서 자본소득을 바라는 개인에게 있어 상당히 훌륭한 투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마치 예금처럼 보험처럼 오히려 더 큰 이익과 함께 돌려받을 자산이 되는 것이다. 누구에게? 바로 국민에게.

 

괜히 상관없는 외국인들이 굳이 원화를 사들이면서까지 한국의 국채를 사모으려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그만큼 한국의 경제나 정부의 재정이 안정적이고 따라서 떼어먹힐 일 없는 안정적인 투자처로 여겨지는 때문이다. 돈을 빌려준다기보다 한국 정부의 신용을 믿고 한국 정부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보다는 한국 정부의 국채에 돈을 묻어두는 것이다. 기한이 다 되면 국채를 다시 돈으로 이자까지 더해서 돌려받을 수 있다. 아니 기한이 안되더라도 이자를 할인해서 다른 사람에게 팔아 이익을 남기고 자본을 회수할 수 있다. 그런 확실한 보장이 있다. 그래서 은행의 비유를 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정부에게 그만한 빚을 갚을 능력이 되는가. 된다고 여기니 외국인들도 기꺼이 돈까지 바꿔가며 너도나도 한국의 국채를 사들이려 하는 것이다.

 

굳이 원금을 갚을 필요도 없다. 국채는 그 자체로 화폐처럼 유통될 수 있다. 국채를 갚기 위해 새로 국채를 발행하고 그렇게 발행된 국채는 발행한 정부의 신용도에 비례해서 일정한 가치를 가지는 재화로서 시장에 유통된다. 결국 정부가 직접 갚아야 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자비용밖에 없다. 일본이 200%가 넘는 국가채무에도, 미국 역시 막대한 재정적자에도 여전히 문제없이 국채를 발행하며 정부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다. 일본이나 미국 정도면 그동안의 경제성장만으로 그만한 이자비용 정도는 얼마든지 부담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그 한계가 아마 240% 남짓, 한국은 그보다 조금 부족한 200%이상까지 감당할 수 있다고 IMF는 평가하고 있다. 더구나 그 사이 경제가 그만큼 성장한다면 채무비율은 줄어들게 된다. 얼마전 국가총생산의 산정기준을 바꾼 결과 국가채무비율이 30% 중반으로 떨어진 것이 그 한 예다. 그러므로 더 중요한 것이 그렇게 빌린 채무를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

 

결국 정부의 재정이란 자국의 국민을 대상으로 쓰이게 될 돈이란 것이다. 굳이 경기부양씩이나 할 필요 없이 그저 국민을 대상으로 돈을 쓰는 것만으로 시장에는 돈이 돌게 된다. 그만큼 경제는 성장하게 된다. 경제가 성장하면 당연히 세수도 늘고 채무에 대한 부담도 줄어든다. 선순환일 때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한국경제에 국가채무비율 60%가, 혹은 80%가 그렇게 심각할 정도로 큰 부담인가. 그만한 돈이 시장에 풀렸을 때의 긍정적인 효과에 비해서 심각할 정도로 큰 타격을 줄 것인가. 지난 1분기 성장률이 -0.4%를 기록했을 당시 정부지출이 거의 기여하지 못했던 점을 떠올려보라. 내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정부지출이다. 정부의 재정정책은 그 자체로 이미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다만 정도가 지나칠 경우 앞서 말한 인플레이션의 우려까지 있다. 하지만 지금은 디플레이션을 걱정할 정도로 물가까지 안정적이다.

 

자기 금고처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의 재정을 책임지는 기재부 공무원이다 보니 들어오고 나가는 돈들이 마치 자기 책임처럼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든 수입은 늘리고 지출은 줄여야 한다. 본능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채무를 늘려서는 안된다. 지출을 지금보다 더 늘려서는 안된다. 그리고 경제에 대해 무지한 언론은 그런 전문가인 기재부 공무원들이 말하는 바를 그대로 받아쓴다. 정부를 공격하기 위한 목적에서 함께 부화뇌동한다. 논란의 이유다. 국채란 무엇이고 어떤 성격의 것인가. 그것이 그렇게 한국경제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인가. 얼마나 큰 위협이 될 것인가. 하지만 그런 것 없이 마치 개인이 지는 빚처럼. 갚지 않으면 당장 망하는 개인간의 채무처럼. 단편적이다. 일차원적이다. 언론의 기사도 지면도 딱 그 수준이다. 그러니까 겁주고 협박하고 절대 안된다고. 그로부터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다.

 

말하자면 국채란 세금 대신 여유가 되는 국민들에게 돈을 빌리는, 더 정확히 정부가 마치 은행처럼 채무라는 형식으로 시장에 남아도는 돈을 유치해서 그를 정부의 목적에 맞게 당장 필요한 곳에 쓰고자 하는 정책인 것이다. 어차피 직접 시장에서 소비에 쓰이지 않을 돈을 자본으로 시장에 직접 개입함으로써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그를 통해 세수라는 수입도 늘리는 수단인 것이다. 빚이라 하니 그냥 빚인 줄 알지만 빚이라고 다 같은 빚은 아닌 것이다. 만일 확실하게 이자까지 쳐서 돌려받을 보장만 있다면 오히려 돈을 빌려주는 쪽에서 사정해가며 빌려주는 경우란 것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심지어 외국인이 국채를 많이 사들이는 것마저 문제있다 비판하는 언론은 무엇하는 곳인가.

 

외국인들이 한국의 국채를 많이 사들인다. 이미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한꺼번에 국채를 팔거나 하면 상당한 위기가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외국인들이 한국의 국채를 그토록 많이 사모으고 있는가 이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고약한 것이다. 도대체 국채란 무엇인지. 어떻게 발행하고 어떻게 쓰이는 것인지. 채무라면 어떤 식으로 상환하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알면서 그러는 것인지. 항상 답은 정해져 있지만. 썩을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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