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룰이 공정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게임을 밸런스 잘 잡히고 시스템도 합리적인 좋은 게임이라 말하는 것일까?


내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게임이 재미있으려면 돈을 쓰거나, 아니면 시간을 들이거나, 그도 아니면 마음을 비우라. 돈을 쓰면 쓴만큼 강해진다. 시간을 들이면 들인 만큼 좋아진다. 이도 저도 아니면 마음이라도 비우면 게임이 편해진다. 


얼핏 불합리해 보이기도 한다. 고작 게임을 하는데 왜 비싼 돈을 쓰고 귀한 시간을 들여야 하는가? 돈 안 쓰고도 시간 안 들이고도 게임이 재미있을 수는 없는가? 그러면 게임이 재미없지 않은가? 아무것도 안해도 더 쉬워지고 더 잘하게 될 수 있다면 아무도 그딴 게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게임에서 성장은 보상이다. 더 높은 레벨과 더 좋은 아이템과 그로 인해 더 강해진 캐릭터와 쉬워진 게임은 자신이 게임에 들인 돈과 시간에 대한 보상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보상을 바라고 사람들은 비싼 돈과 귀한 시간을 들여가며 게임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부분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항상 그렇게 가르친다. 대부분 선생들 역시 마찬가지다. 공부만 잘하면. 시험만 잘 보면. 좋은 대학에만 들어가면.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직업을 가지면. 그러면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러면 네 마음대로 해도 된다. 벌써 학교 다닐 때부터 그렇게 학습시킨다. 공부 잘하고 시험 잘봐서 성적이 좋으면 어지간한 잘못은 그냥 눈감아준다. 대놓고 편애하며 누구보다 귀하고 특별한 존재인 양 대우해 준다. 그리고 당연히 공부 못하고 시험 못봐서 성적이 나쁘면 부모와 선생님으로부터 벌을 받게 된다. 그나마 벌이라도 받으면 관심이 남아 있는 것이다. 아예 어디서 사고를 치고 문제를 일으키든 관심조차 가지지 않으며 사람취급도 않는 경우가 현실에는 적지 않다. 그런 환경에서 아이들은 자라게 된다.


그래야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지만 주위의 수많은 유혹에도, 자기 안에서의 수많은 욕망과 충동들에도 오로지 스스로 자유를 억압하며 공부에만 열심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코 달갑지만은 않은, 오히겨 고통스럽기까지 한 그 과정들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는 그 대가여야 한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존엄이며 사회적 존재로서 가지는 모든 권리들마저 그에 대한 보상이어야 한다. 그렇게 배운다. 아니 스스로도 그렇게 여기게 된다. 아니면 지금 자신들이 하는 모든 노력들이 의미없어진다. 전혀 노력하지 않아도 자신들과 같은 것들을 누리고 가질 수 있다면 그동안 자신들이 노력한 보람을 어디서 찾아야 한다는 것인가.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벌받고 노력한 사람이 모든 것을 가진다. 그럼으로써 노력한 사람들에게 노력한 만큼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 곧 정의이고 합리인 것이다.


말하자면 한국식 자유의지주의란 정확히 노력과 시험을 통해 개인을 서열화하는 노력시험주의라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학교에서 보일러공을 채용하고 기업에서 미화원을 고용하는데도 정직원이면 시험을 치러야 한다 주장하는 사람들마저 있는 지경이다. 보일러공을 뽑는데 필요한 시험이 무엇인가? 미화원은 어떤 과목들을 시험보고 뽑아야 한다는 것일까? 같은 정직원이라고 대학까지 졸업한 자신들과 경쟁할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데도 시험을 치러야지만 공정하다. 왜? 그 노력을 봐야 하니까. 시험을 치르기 위한 노력을 검증해야 하니까. 그래야만 정규직이란 타이틀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그들은 고용도 불안한 비정규직으로서 자신들이 노력하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사회적 평등을 위한 정부의 많은 정책들에 대해 오히려 젊은 층에서 더 큰 반발이 터져나오는 이유인 것이다. 저들과 내가 같아져서는 안된다. 저들이 나와 같아져서는 안된다. 차라리 나보다 더 돈도 많고 실력도 있는 누군가가 특권을 누리며 권리를 독점한다면 그것은 참고 넘길 수 있다. 그 전에 기꺼이 인정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보다 못한 누군가와 나와 같아지는 것은 참을 수 없다. 들인 노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를 위해 그동안 자신과 그들이 들인 노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과 나는 달라야 한다. 다르게 대우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여성이든, 고졸이든, 지방대생이든, 혹은 외국인이거나 다른 누구이든 상관없다. 그들이 그와 같은 불리한 위치에 있는 자체가 스스로 노력하지 않은 결과이므로 그에 대해 어떤 인위를 가하려는 행위는 정의를 벗어난 행위일 수밖에 없다. 사회적 평등이란 곧 불공정이고 불합리이며 자신들의 노력을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으려는 악일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것이다.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다. 불과 얼마전 많은 젊은이들은 기성세대가 말하는 '노력'이라는 단어에 분노하고 있었다. 젊은세대가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다. 더 노력하면 그들이 말하는 모든 불만은 해결될 것이다. 노력하지 않는 이들만이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불평과 불만을 털어놓는다. 여성들은 노력하지 않는다. 고졸자도 비정규직도 지방대 출신들도 노력하지 않아 그렇게 된 것이다. 최저임금이나 받는 저임금저숙련 노동자들도 노력하지 않아서 그리 된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사람들을 위해 사회가 조금이라도 양보하거나 배려할 필요가 있을까? 아주 조금이라도 그들을 위해 자신들이 손해보고 희생해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보다는 차라리 그들이 자신들을 위해 양보하고 희생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격이 있는 내 월급은 올라야 하고 자격이 없는 그들의 월급은 오히려 깎아야 한다. 최소한의 생활조차 불가능한 임금을 받고서도 차라리 그런 자리에서라도 계속 일할 수 있는 것이 그들을 위한 것이다. 젊은 꼰대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사다리에서의 작업을 금지한 정부의 지침에 대해서도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해가며 더 적은 돈을 받으며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


저들이 그토록 사법시험과 수능 정시에 집착하는 것도 그래서다. 돈 많은 집안에서 과외까지 시켜가며 명문대 진학을 독점하는 것은 옳은 것이다. 그만한 비용과 노력을 들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반면 지방의 촌구석에서 성적도 변변치 않은 학생이 명문대학에 입악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것이다. 판사나 검사가 되어 법을 마음대로 주무르려면 그만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변호사가 되어 사회적으로 명성도 얻고 상당한 부를 쌓기 위해서는 그만한 절차를 밟아야 하는 것이다. 더 어렵고 더 힘들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선명하게 자신들의 노력을 계량해서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과정과 절차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판사가 되어 사법농단을 저지르고, 검사가 되어 온갖 비리와 불법과 결탁한다. 그마저도 옳다. 당장 그렇게 어려운 사법시험을 통과해서 판사가 되고 검사가 된 이들이 사법부와 검찰이 그동안 저질러 온 불법들에 대해 보이는 태도들을 보라. 가장 개혁적이라던 대법원장마저 결국은 팔이 안으로 굽고 있다. 그래도 되니까. 그만한 자격이 되니까. 그만한 자격을 인정받아야 할 테니까.


과거 누구보다 사회적 평등에 앞장섰던 젊은층들이 이제는 오히려 사회적 평등에 대해 더 강한 반감을 보이게 된 이유인 것이다. 평등해서는 안된다. 절대 모두가 평등해서는 안된다. 내가 더 많은 돈을 썼는데 나보다 캐릭터의 아이템이 더 좋다. 내가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게임을 했는데 나보다 캐릭터의 스펙이 더 높다. 정작 많은 돈을 쓰고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노력한 자신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가 너무 작아서 의미가 없다. 화가 나는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패치한다고 그동안 애써 만든 귀한 아이템이며 높은 스펙을 무력화시키면 누구나 화가 나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내가 이만큼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차라리 나보다 노력한 사람에게 더 많은 것들을 준다면 모를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나와 같은 곳까지 올리겠다 말한다. 내가 이만큼 좋은 대학에 들어간 것도 내가 노력한 시간에 대한 보상일 텐데 그를 전혀 알아주려 하지 않는다. 화가 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한 편으로 생각해 보자. 게임은 수틀리면 그냥 그만둬 버리면 된다. 당장 오늘이라도 아이템 모두 팔아버리고 게임을 접어 버리면 된다. 그런다고 뭐라 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당장 나라를 떠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해도 실제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아무리 뭣같아도 어찌되었든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태어난 이상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대부분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많은 돈을 쓰고 많은 시간을 들여 스펙이 남다른 이른바 고인물들만 남아 있으면 그런 게임이 재미있을까? 돈을 쓰고 시간을 들인 만큼 보상을 주겠다고 아예 넘볼 수 없도록 차이만 벌린다면 사람들이 계속 재미있게 게임을 즐길 수 있겠는가 말이다. 고인물만으로는 게임이 유지되지 않는다. 계속해서 새로운 유저가 들어와서 기대를 가지고 게임에 돈과 시간을 쏟아부어야지만 게임은 계속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하물며 현실의 사회라면 어떨까?


어쨌거나 오래전부터 특히 젊은층에서 주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이른바 장르소설들을 읽으면서 느낀 점들일 것이다. 심지어 그래도 명문정파에서 제자들의 배분을 정하는데도 시험을 치러 정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실력이 미치지 못하면 배분과 상관없이 무시하고 학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물론 그런 행동들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의식에 비판하면서도 그런 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또다른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실력이 되는 자는 그렇지 못한 이들을 아무렇게나 대해도 된다. 실력만 된다면 세상의 정의나 도의 같은 것 아무렇지 않게 무시해도 된다. 그렇게 모든 인간을 넘볼 수 없는 실력의 차이에 따라 나누어 계량해 판단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제 사회문제들을 대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확신을 가지게 된다. 게임이 문제가 아니다. 게임 이전에 이미 이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가르쳐 오고 있었다.


젊은 남성들이 문재인 정부에 반발하는 이유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반드시 페미니즘 정책에 대한 반감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 현실을 이해하는 방향과 기준이 전혀 다르다. 젊은 남성들에게 평등이란 노력에 따른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다. 공정이란 노력으로 인한 결과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의란 것은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하는 것이다. 더 노력한 더 실력있는 이들에게는 더 큰 보상을,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더 적은 보상과 심지어 징벌을. 여성은 그런 그들이 생각한 불평등과 불공정과 부정의 한 예에 지나지 않는다. 일관된 방향을 보인다. 그래서 저들에게 그런 차이를 더 벌리고자 하는 자유한국당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편견일까? 물론 모두는 아니다. 일반적인 경향을 말한다 해서 그것이 모두가 그렇다는 뜻은 아닌 것이다. 60대 이상의 노인 가운데서도 진보적인 이들이 있는 것처럼 20대라 해도 보다 공동체적인 관점에서 문제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다만 자주 눈에 띄는 모습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들이 정부에 반발하는 이유이며, 진보에 혐오감과 적대감을 드러내는 이유다. 평등은 옳지 않다. 평등은 악이다.


설득하는 것이 의미없다는 이유다. 이만큼 생각하는 게 다르면 설득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냥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넘어가면 된다. 다만 이런 생각들을 가지게 된 원인들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나만 잘되면 된다. 나만 잘하면 된다. 이 사회가 강요하는 것들이다. 너 혼자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 잘 봐서 잘 먹고 잘 살라. 그런 삶이 성공한 삶이다. 보수가 성공한 이유다. 아주 오랜 의도하지 않은 계획이었을 것이다. 성과가 나타났다.

+ Recent posts